그동안 의사의 처방대로 강력 소염제를 열심히 일주일째 복용해 왔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이 되도록 오히려 혹이 있다는 목 부위가 더 뻐근해지는 느낌이어서 의아해 하고 있었지요. 오늘이 조직검사한 지 일주일 되는 날이라 주치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단순한 염증이었다는군요 라는 대답을 기대하면서.
암이 발견되었다는군요. 수술로 제거하고 갑상선 약을 복용하시면 됩니다. 아니, 남은 평생 동안 약을 먹어야 한다고요? 내가 건망증이 심해서 약먹는 걸 잊어버릴 텐데. 습관이 들 겁니다. 수술은 어떻게 하나요? 목을 조금 째고 할 겁니다. 한 며칠 목이 뻐근하겠지만 곧 나아질 거예요. 시급한 건 아니죠? 뭐, 지금껏 별 문제가 없으니까 시급한 것은 아니나, 암인 것을 알고서 달고 다닐 건 없잖아요?
주치의나 나나 제 삼자 얘기를 하듯 대수롭지 않게 말을 주고 받다가, 외과 의사와 수술 날자 잡고 수술 받으라는 그의 말에 그렇게 하겠노라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성가시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수술을 받는 것도, 또 며칠이라도 사무실에 나오지 못하게 됨에 따라 일이 밀리고 막히는 것도, 아내가 걱정할 일도, 그리고 앞으로 여생을 약에 의존해 살아야 할 일도.
오래 전부터 내 삶을 정리하고 살리라 작정했으면서도 아직 유서 한 장 써두지 못하고, 살아온 지난 날들의 온갖 잡동사니들 아직도 여기 저기 쑤셔 넣고 있는데, 이젠 정말 버릴 것 과감하게 버리고 일러 둘 말 일러 두고 용서 빌 것 용서 빌고 또 용서할 것 용서하고 아직 사랑 못준 또는 덜 준 사람들에게 사랑 듬뿍 주기를 시작해야겠습니다. 아직 사지 멀쩡하고 움직일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을 때 말입니다. 갑상선 암이기 다행이지 이보다 더한 병이었으면 얼마나 후회가 크겠습니까. 아직도 제게 그럴 수 있는 기회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절 이렇게 잘 대해 주시는 걸 보면, 제게 혹시 쓸만한 구석이 있는 게 아닐까는 생각이 이따끔 들기도 합니다. 참 얄팍하지요? 쓸만한 구석이라곤 전혀 없음에도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하면서, 틈만 나면 제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려 드니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는 이 원초적 죄로부터 언제면 벗어날 수 있을런지요?
무엇 하나 당신의 허락없이 계산되어짐 없이 이루어지는 일이 없는 고로, 제 목 속에 자리잡은 이 암덩어리는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따라서 당신을 위해) 의도적으로 두신 거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제 목표는 갑상선 암이 있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제게 바라는 그 모습에 더 가까이 가는 일입니다. 제게 주어진 갑상선 암을 어떤 이유로든 무용지물로 만들지 않도록 함께 기도 부탁드립니다.
3.28.2006
저를 생각하면서 치유의 광선으로 오신 예수님만 바라 볼 때에 반드시 치유케 해주실 줄 믿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일간 찾아 뵙지요.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