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을 주시옵소서 2

조회 수 2037 추천 수 232 2008.04.22 22:32:08
우리 기도의 단골 메뉴 중 하나는 성령 충만을 달라는 기도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의문스러운 것은 왜 번번이 그 기도를 드려야 하는지이다. 성경은 분명히 구하는 자에겐 성령을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지 아니 한가.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눅 11:11-13) 한 번 주신 성령을 우리가 잃어버리든지 아니면 성령이 바람처럼 새어 나가지 않는 이상 우리 속에 계속 계실 터인데, 왜 우리는 그토록 자주—특히 공적인 기도 때에는 반드시—성령 충만을 구하는가 말이다.

성령은 믿는 자 모두에게 이미 주어져 있다. 믿는 우리 속에 성령 하나님께서 계시기에 우리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무슨 다른 성령을 받기를 기대하는가? 성령이 여럿인가? 아니다. 한 분이시다. 우리 속에 각각 다른 성령이 계신 것도 아니요, 또 다른 성령이 있어 구하는 자에게 그때마다 더 주시는 것도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들은 틀림없이 누가 더 성령을 많이 받았는가 자랑할 것이다. 그렇다면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겠다는 말씀은 무엇이며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씀은 또 무엇인가?

어쩌면 우리는 성령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 교도들처럼 성령을 인격체인 하나님이 아니라 어떤 힘(force)이나 기운(energy)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있을 때엔 청량감을 주나 곧 사라지고 마는 탄산 음료 속에 들어 있는 이산화탄소 비슷한 것으로 여기는가? 아니면 성령을 일종의 영적 훈장 쯤으로 여기는가? 그러하기에 성령을 받겠다고 여기 저기 좇아 다니는 것 아닌가?

그것이 아니란다면, 우리는 성령 충만이 무얼 뜻하는지 알지 못 하는지도 모른다. 성령 충만은, 성령으로 우리가 가득 채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Be filled with Spirit,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권고했다. “Fill yourselves with Spirit. 성령으로 너희들을 채우라”가 아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채우시는 것이지, 우리가 우리 속에 성령을 채워 넣는 것이 아니다. 왜? 성령은 인격체이시고 주체이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우리 멋대로 주고 받고 비워 내고 채워 넣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은연중에 우리가 주체이고 성령은 객체라 생각하는 듯하다. 아니다, 우리는 성령의 전이요, 성령을 담는 그릇에 불과하다. 그릇이 무슨 권과 능이 있어 스스로를 채울 수 있을 것인가.

채우시는 이는 성령이시다. 우리는 채워져야 한다. 어떻게 채워지는가? 채워지기 위해 성령을 찾아 다녀야 하는가? 아니다. 우리는 가만히 맡기고 있으면 된다. 아니, 가만히 맡기고 있어야 한다. 그릇이 촐싹대면 제대로 채울 수가 없다. 우리가 가만히 우리를 맡기고 있으면 성령께서 우리를 채우신다. 그런데 우리 속에 아직도 우리가 시퍼렇게 살아 큰 자리 차지하고 있으면 성령께서 우리를 충만히 채우실 수가 없다. 하덕규 씨는 가시나무란 노래에서,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라고 그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 속에 우리가 너무 많아 성령께 내어 드린 자리가 너무나 적다 보니, 성령의 존재감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리라. 그러니까 계속 성령충만을 주십사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일 터인데, 그 기도가 내 속에 있는 나를 비워내어 성령께 더 많은 자리를 드리는 쪽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그 기도는 백날을 드려도 응답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 더 간절하게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바라신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지어져 가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에게 성령으로 충만해지라고 명령하셨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려면 끊임없이 우리를 비워내어야 한다. 얼마나 우리를 비우느냐에 따라 우리 속 성령의 크기는 정해진다. 따라서 성령충만을 구하는 기도는 실은 우리를 비워 주십사는 기도이다. 우리가 미련 두고 못 버리는 것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지어짐에 방해되는 것들을 다 치워 달라는 기도이다.

진정 성령충만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사도 바울처럼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겨야 한다. (빌 3:7-8) 그럴 수 있는가? 그럴 각오가 되어 있는가?  

2008. 4. 22

조재춘

2008.04.23 02:53:17
*.29.165.87

태산을 가진자는 흙 한줌에 연연하지 않는다.
부활사건이 이 땅의 어느 사건과 견줄수 있는가?
예수님의 부활이 곧 나의 부활이다.
이 부활의 감격이 곧 이 땅의 모든것을 배설물로 여길수 있는 믿음의 비밀이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8:11) 아멘!!!

날마다 부활의 소망과 감격으로 부활의 증인으로써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삶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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