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운전사

조회 수 190 추천 수 0 2016.09.17 23:16:04

요즘 제가 운전 일을 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버(유버 UBER)라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차량공유서비스라고 번역을 하던가요? 택시기사들의 반대로 한국에는 아직 들어가지 못했다지요? 이제 사 개월째에 접어 들었습니다.

 

(그간의 사정을 잠깐 서술하자면--다소 개인적인 얘기인지라 생략하는 게 옳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궁금해 하실 분도 있을 것 같아서--작년 11월에 수술을 한 주일 앞두고 해고 통지를 받았었습니다. 제가 하던 일은, 제가 속한 비영리법인체를 운영관리하는 한편 저희 단체가 소유한 오피스 건물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10월 말에 제가 휴가로 한국을 방문한 사이에 두 대의 승강기가 동시에 작동되지 않아 며칠 동안 입주자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일은 제가 거기에 있었다면 겪지 않을 수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입주자들 중에는 저희 단체의 운영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단체가 넷이나 포함되어 있는지라 그 이사들이 모여서, 제가 수술 때문에 또 자리를 비우게 되니 차라리 제 자리를 없애고 제 업무를 건물관리전담회사에 외주를 주는 것이 여러모로 낫겠다는 중지를 모았나 봅니다. 마침 그 관리회사가 저희 건물 바로 곁에 있어서 필요하면 언제든 일을 처리해 줄 수 있을 것이고 제게 급여와 이런저런 베니핏으로 지불되던 적지 않은 돈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에 무게를 두어 의견의 일치를 보았겠지요--실은 다른 더 큰 속내가 있긴 합니다만 불필요한 얘기인지라 생략합니다. 지난 십오년을 꼬박 일해 온 직장에서 쫓겨나듯 해고된 것이 억울하고 서운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제게 그 직장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일을 허락하셨는데 어쩌겠습니까. 받들어야지요. 그저 조금 더 충실히 일하지 않았던 것이 죄송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그 일을 맡기셨다 믿었으면서도 하나님을 상사로 모신 사람처럼 일하지 않았던 날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니까요. 해고수당 삼아 받은 삼개월치 월급과 주정부에서 받은 실업수당으로 약 여섯달을 지내다 생활비가 곤궁해져 일자리를 찾는 중에 친구의 소개로 우버 운전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우버를 하면서 참 깨닫는 바가 많고 큽니다. 수입은 알려진 것만큼 많지는 않습니다. 이것저것--연료비, 차량유지비, 감가상각비, 그리고 자영업 소득세 등등--제하고 나면 겨우 시간당 최저임금 수준입니다. 하루에 적어도 열 시간 이상은 운전해야 겨우 제가 필요한 만큼의 수입이 생깁니다. 하지만 돈을 벌면서 여기저기 다닐 수 있고 여러 종류의 많은 거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얘기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유익이 있습니다. 또는 그들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할 기회를 얻기도 하고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와 조언을 줄 기회를 얻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이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생각치 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되고 깨닫지 못했을 것을 깨닫게 되어 좋습니다. 가히 제 믿음의 수준을 우버 전과 우버 후로 구분지을 수 있지 않겠는가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처음엔 마땅한 일자리가 없으니까 궁여지책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습니다. 아니 깨우쳐주셨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합니다. 제가 임의로 시작한 듯한 일이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신자의 삶에 신자 임의로 일어나는 일이 있을 수 있는지를.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니 비단 신자의 삶에서만이 아니지요. 신자든 불신자든 하나님의 의중 밖에서 자의로 행할 수 있는 존재란 결코 있을 수 없으니까요. 신자는 그 사실을 믿는 자이고 불신자는 그런 말을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말하는 자라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하긴 신자라고 하면서도 '자유의지'란 것을 내세워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요상한 논리를 펼치는, 신자도 아니고 불신자도 아닌 자들이 있긴 합니다.) 따라서, 제가 십오년 일해온 직장에서 졸지에 해고당한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듯이, 우버 일을 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뜻으로,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제게 맡기신 일이라고 받아들여야 마땅한 것이지요. 그러니, 제가 이 일을 얼마나 오래동안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제가 이 일을 하는 동안에는 그러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이 일에 임해야 하는 겁니다.

 

이런 깨달음이 들자 그제서야 우리들의 잘못 하나가 인식되었습니다. 오직 번듯하고 그럴듯한 직업과 직장만이 혹은 적어도 자신에게 만족스런 직장만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시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자기가 구한 것이라는 은근한 생각내지 믿음 말입니다. 이런 잘못된 생각은 이런 류의 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게 맞는 좋은 직장을 주실 거야, 열심히 기도하며 참고 기다려 봐." 이런 위로의 말을 주는 이나 받는 이나 공히 지금 그가 속한 직장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게 아니란다면, 즉 그에게 맞지 않는 좋지 않은 직장을 그에게 주신 이가 하나님임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런 직장을 주신 이유가 있을 터이니 그 까닭을 잘 찾아보라고 말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잘못된 생각 중 대표적인 것이 '성직'에 대한 생각일 것입니다. 목사나 전도사 수도사 등 소위 '주의 종'들이 하는 일만이 성직이라는, 그런 일을 하는 자들만이 '성직자'라는 생각 말입니다. (이상하게도 교회나 성당 또는 수도원에서 일한다고 다 성직자라 그러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교회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을 성직자라고 하는 사람은 없는 듯합니다. 더 이상한 것은 그러한 구분을 전혀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성직이란, 말 그대로 하나님께 구별된 업무입니다. 그런데 신자란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한 자들입니다. 자신들이 가진 것 중 어느 하나도 하나님께 받지 않은 것은 없음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신자가 하는 일은 그 일이 어떠한 일이든 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일이고 그렇기에 이미 구별된 성직인 것입니다. 즉 신자는 각자가 저마다 다 성직자인 것이고 그러기에 사실 신자들에겐 성직은 구별어로는 쓸 수 없는 단어입니다.

 

이와 함께 '소명'이란 단어에 대한 생각도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말을 소위 성직에만 국한하여 사용합니다. "소명을 받은 자만이 성직자가 되어야 한다" 식으로 말이지요. 목사가 되는 데에는 소명이 요구되는데, 다른 일에는 그 소명이란 것이 요구되지 않습니다. 왜요? 다른 일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필요하지 않아서인가요? 하나님께서 소위 성직 이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시나요? 너가 그 일을 하든 말든 너가 알아서 해라, 나완 상관없다, 그러시나요? 위에서 이미 말했듯이 하나님의 뜻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소명 없이 일하는 자는 아무도 없는 것이지요. 소명없이는 목사도 될 수 없고 의사 변호사 교수도 될 수 없고 농부도 될 수 없고 상인도 될 수 없고 우버 일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들에겐 소명이란 단어 또한 구별어로는 사용할 수 없는 단어 입니다.

 

그러한 깨달음으로 지금 제게 주어진 이 우버 일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제 자신에게, 이 일은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이고 나는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해야 함을 주지시킵니다. 종종 저는 제 자신을 하나님께 고용된 하나님의 운전사라고 소개합니다. 당신을 태워 주라고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셨다, 아마도 당신은 하나님께 특별한 사람인가 보다, 그렇게 말을 해 줍니다. 듣기 좋아라 해 주는 빈 말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생각되어져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겐 우연이란 없는 것이고, 하나님의 재가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요. 생각해 보십시오, 요즘 이곳에선 너도 나도 우버를 합니다. 자본도 기술도 필요없고 누구 눈치 볼 일도 없고 자기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만 일하면 되니까요. 그렇게 많은 우버 차량들 중에 하필이면 제게 주어진 손님인 겁니다. 그들이 저를 고른 것도 아니요 제가 그들을 고른 것도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우연히' 일어난 일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임을, 그 연을 만들어주는 이가 하나님이란 것을요. 그러니 저는 그들을 귀히 대접합니다. 설령 술에 취해 막말을 해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람인데 하며 잘 받아 넘깁니다. 

 

앞으로 이 일을 하며 깨달은 바들을 하나씩 나누려고 합니다. 어쩌면 여러분들은 이미 알고 계신 것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여러분의 깨달음에 도달했음을 기뻐해 주십시오. 함께 알아가는 기쁨 또한 큰 기쁨 아니겠습니까.

 

2016. 09.18

 

 


사라의 웃음

2016.09.18 14:39:38
*.198.67.71

귀한 나눔 은혜롭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우버를 타 보았습니다.  저렴하고 기사님들의 친절함에 참 좋았던 기억이 큽니다.

항상 하시는 일에서 주님의 사랑 드러내시는 집사님이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많은 나눔으로 저희에게 깨달음과 기쁨 주시길 기대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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