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권능을 사모합니다. 성령충만을 주십사는 기도는 실은 여러가지 성령의 능력--예언을 한다든지 방언을 한다든지 성경을 줄줄 왼다든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는다든지 하는 가시적인 능력을 주십사는 기도일 겁니다. 성령의 은사가 여럿 있습니다만, 구제나 긍휼이나 위로 같은 은사를 구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은사들은 자신을 내세우는 데에 별 도움이 안 되기 때문 아닐까요? 한 마디로 폼이 안 나는 겁니다. 그런데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고 예언을 하고 또 방언을 줄줄 하는 은사들은 모두들 와!하고 입을 쩍 벌리게 하는, 내가 금방 뜨는 은사라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수님을 성령님을 은연 중에 그 시각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특히 예수님은 자기를 과시하려고 능력을 쓰시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 명하면 열두 영도 넘는 천군들이 자신을 구하려 하늘로부터 내려올 것임에도 그러지 아니 하시고 포박당하시고 문초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십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모른 척하십니다. 왜 그러십니까? 하나님께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여 자신이 얼마나 굉장한 신인지를 입증시키는 데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기정사실이기에 입증이 필요없습니다. 입증하려 한다면 오히려 우습습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확증시키는 데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런데도 우린 하나님의 사랑보다 능력을 더 보고 싶어 하고 사모하고 간구합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내 사랑보다 내 능력을 더 보이고 싶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