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출근길에 과속으로 딱지를 뗐습니다. 과속 티켓을 받기는 참으로 오랫만의 일입니다. 개스(기름)값이 오름박질한 후론 시간에 쫒기지 않는 한 되도록이면 규정 속도 한도 내에서 운전해 오던 터였는데, 오늘 아침엔 옆 차선으로 옮겨 들어 가기 위해 속도를 올렸다가 언덕 아래에서 지키고 있던 모터사이클 경찰에게 딱 걸리고 말았습니다.
벌금이 얼마나 될까? 교통법규교육 수강비까지 하면 꽤 될 텐데. . .딱지를 건네 주는 경찰관은 벌금 액수는 자기로선 알 수 없노라면서 속도내지 말라는 말과 함께 또 다른 먹이를 찾아 원위치로 돌아 갔습니다.
그래, 진작에 뗐어야 했어. 지금까지 눈감아 주셨던 거지. 위반한 족족 걸려 티켓을 받았다면 아마 차 한 대 값은 족히 되지 않을까? 내 형편 생각해 많이 봐 주신 거야. 오래 참아 주신 거라고. . . 예상 벌과금에 대한 애통함과 아까움을 조금이라도 덜어 보려고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적어도 벌과금만큼 또는 그 이상의 교훈을 건져 보기로 작정하곤 성찰을 시작했습니다.
왜 과속 운전을 했는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답이 “시간에 쫒겨서”였습니다. 시간에 쫓긴 까닭은 주로 밭게 출발을 하기 때문이며, 빠듯하게 출발하는 까닭은? 시간 낭비를 줄이겠다는 짧은 생각에서인 듯합니다.
다음으로 떠오른 답은, “거침없이 달리고 싶은 욕구”였습니다. 모든 억제와 억압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 맘껏 달리고 싶은 욕구, 자유에의 갈망. . .이미 오래 전에 놓여 났어야 할 욕구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걸 깨닫습니다.
또 뭐가 있을까? “과시욕”이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다른 차들을 앞서 가면서 뒤처진 운전자들에 대한 비교우월감을 즐긴 것은 아닐까? 우화 속 토끼가 거북이에 대해 느꼈던 그 감정. 제 머리 속 기억의 영상들을 빠른 속도로 되감아 봅니다. 분명 그런 감정을 느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사내가 참 못 낫기도 하지. 쪼잔하게 스리, 어떻게 그런 걸로 우월감을 채우려 했을까! 암튼, 그 우월감, 다른 말로 교만심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 하시는 것인데! 화로다!
그리고? 더 없나? 있었습니다. 법규 또는 규범 준수 의식이 강하지 않은 걸 인정합니다. 범칙, 특히 제 생각에 가볍다 여겨지는 규칙을 어기는 것을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습니다. 몇 년 전에 문득, 교통법규 준수를 하나님의 말씀 준수 훈련으로 생각하자 한 후론 많이 나아졌지만 어느샌가 다시 옛 버릇이 살아났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네 가지 답 모두 그 뿌리가 제 교만심인 듯합니다. 한 십 년 노력했으면 지금쯤은 벗어버렸을 만도 하건만 아직도 그 뿌리가 살아, 조금만 주의를 게을리 하면 다시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고 가지를 냅니다. 그래서 오늘도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의 무한한 긍휼을 구할 밖에 딴 도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2009.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