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이세요?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는데 상대방이 그렇게 묻습니다. 웃으며, 아닙니다, 대답합니다. 그럼 장로님이세요? 역시 웃으며, 장로도 아닌데요, 합니다. 그럼 집사님이시겠군요? 약간 난처해 하면서 재차 묻습니다. 그러면 할 수 없이, 네, 하고 대답하고 맙니다. 그러나 실은 그 물음에도 아니라고 대답해야 옳습니다. 십 년쯤 전엔가 한 교회에서 서리 집사 임명장 받았던 것이 다니까요. 하지만 그마저 아니라 대답하면 그때부턴 절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난처해 하기 때문에 그만 그렇다고 거짓 대답을 해 주는 겁니다. 집사마저 아니라 할 경우 대개는, 아 그럼 평신도? 하고 머쓱한 웃음을 띄며 성도님 또는 형제님으로 부르더군요. 제 개인적으론 형제님도 좋고 김유상씨도 좋습니다. 그런데 후자는 아무래도 세상 냄새가 너무 난다 여겨서인지 아니면 좀 무례하게 느껴서인지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는 않더군요.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과는 첫 만남에서 그런 절차가 필요 없습니다. 그들은 내가 목사인지 장로인지 집사인지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김유상입니다 하면 그 다음부턴 김 선생님 하고 부르든지, 김유상씨, 또는 김형이라 부릅니다. 더러는 제 직함을 이용해 김 국장님 하고 부르거나 사장님 하고 부르기도 합니다. 영어 사용자들은 미스터 김, 또는 바로 유상 혹은 유진 (제 영어 이름입니다) 하고 이름을 부르기도 하지요. 그런데 왜 교회, 그것도 한국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내가 목사인지 장로인지 집사인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까? 미국 교회에선 그런 것 묻지 않습니다. 한국 교인들처럼 누구 장로님, 누구 집사님 하고 부르지 않습니다. 심지어 담임목사도 이름으로만 부르는 사람들이 다수입니다.
곰곰 생각해 보니, 그 까닭은 아무래도 한국 교인들은 직무를 직위로, 하나의 권세로 여기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들의 머리 속엔 다음의 서열이 세워져 있을 겁니다. 1위: 목사, 2위: 장로, 3위: 집사, 4위: 평신도. 흥미로운 것은, 목사, 장로, 집사의 직무는 다 그 직무를 호칭으로 쓰는데, 평신도는 성도 또는 형제(자매)란 호칭을 쓴다는 점입니다. 성도 또는 형제 자매란 호칭은 직무에 상관없이 모든 믿는 자에게 두루 쓰여야 하는 호칭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무리 (성도)이고 하나님의 한 형제 자매이니까요. 그럼에도 목사와 장로와 집사에겐 성도 또는 형제 자매라 부르는 것은 큰 실수라고 거의 모든 신자들이 잘못 믿고 있으면서도 그 잘못을 알아채지도 못하거나 알면서도 바로 잡고자 하는 노력이 없는 까닭 역시, 우리의 권세욕과 내가 너보다 잘났다는 교만심에 있지 않을까요?
목사, 장로, 집사는 교회란 기구를 운영해 가는 데 있어 필요한 직무입니다. 그래서 그 세 직은 항존직이라 합니다. 이 말을 종신직과 혼동하고 있는 교회와 교인들이 많은 듯합니다. 나는 장로입니다는 말은 나는 장로 일을 맡아 보는 사람입니다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내가 장로인 것은 내가 장로 일을 맡아 보는 동안 만이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얼마 동안 그 일을 맡느냐는 기간은 개 교회가 정하기 나름입니다. 제 생각엔 그 임기는 너무 짧아도 너무 길어도 좋지 않을 겁니다. 삼 년에서 오 년 정도가 적당할 듯합니다. 임기가 끝나 그 일을 맡아 보지 않으면 나는 더 이상 장로가 아닙니다. 따라서 나는 더 이상 장로로 불려서는 안 됩니다. 그 호칭은 그 직무에 주어진 것이지 내게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前) 장로라고 쓰고 부를 수는 있겠습니다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까닭이 무언지요?
문제는 우리의 언어 예법상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기 때문에 호칭을 필요로 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자라 미국에 온 20대 후반의 2세 한국인 청년을 일 관계로 만나게 되었는데, 이 청년이 미스터 킴이나 김선생님이 아니라 유상씨 하고 부르는 바람에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형제 자매나 성도란 호칭도 손아래 사람이 손위 사람에게 부르긴 사실 어색한 호칭입니다. 그래서 편의상 직분을 호칭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장로와 집사가 은연중에 계급이나 감투처럼 여겨지게 되고 그에 따른 폐해가 적지 않습니다.
목사인지 장로인지 집사인지 물어 보는 까닭은 앞에서 짐작했듯이, 그 계급의식 때문이 분명합니다. 사실 목사도 장로이건만 장로라 집사라 부르면 큰 실례이고, 장로에게 집사라 부르면 큰 실례가 됩니다만, 집사가 아닌 사람에겐 집사라고 불러도 무방한 것이 그 증거의 하나 입니다. 집사는 장로 목사완 달리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그 호칭을 집사가 아닌 사람과 나누어 써도 그리 실례될 일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또 이젠 더 이상 목사직을 장로직을 집사직을 수행하지 않는데도 목사로 장로로 집사로 불리길 원한다는 것 또한 그 증거의 하나입니다.
이 문제의 해법을 곰곰 생각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사가 아닌데도 집사로 부르고 장로가 아닌데도 장로라 불러도 부르는 이나 불리는 이나 다들 만족한다면, 즉 직무와 상관없는 호칭의 문제라면, 삼 십대부터 사 십대까지는 집사라 부르고 오 십대부턴 장로라 부르면 어떨까? 그러면 장로 되겠다 그렇게 기를 쓰지도, 장로 되지 못했다고 마음 상해 하지도 않을 것 같은데. 하지만, 장로들이 극구 반대할 거란 생각이 떨쳐지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매우 불쾌해 하고 꽤씸타 할 것입니다. 어떻게 딴 계급장인데, 네 놈들이 날로 먹으려 들어!
어쩌다 아직도 평신도냐구요? 그게 참 그렇습니다. 감당했던 직무로 치면 집사 장로 목사를 두루 거쳤습니다만, 공교롭게도 제가 다닌 교회들이 직분자들의 전횡(?)에 치를 떠는 사람들이 만들었던 교회들이어서 직분을 주지 않았거나, 제가 다닐 시기엔 규모가 적어 직분을 부여하지 않았거나, 직분을 받기 전에 교회 지도자들의 눈 밖으로 밀려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앞으로도 쭉 그럴 것 같습니다. 이제 나이가 집사도 아니란다면 물어 본 사람이 외려 난처해질 나이인지라, 어차피 거짓말 하는 것, 다음에는 목사님이세요 하면, 네, 하고 살포시 웃을까 봅니다.
2010년 8월 11일
기억으론 운영자께서 칼을 뽑아들긴 했으나 어딜 어떻게 수술해야 할지 난처한 문제라고 댓글을 다셨고,
정순태 형제님께서, 형제 자매란 호칭이 가장 성경적이며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호칭이란 댓글 달아 주셨고,
하람맘께선, 직분 주는 타당한 이유가 있을 터이니 직분받은 자들에겐 그 받은 직분을 호칭으로 사용하는 것이 격려 차원에서라도 나을 듯하다, 직분을 받지 않았는데도 그 직분을 호칭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직분이 끝났는데도 계속 그 직분명으로 부르는 것은 더 섬겨 달라는 무례한 요구이므로 삼가해야 한다고 댓글을 달아 주셨습니다. 두 분이외에도 두 세 분의 댓글이 더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내용은 떠오르질 않는군요.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