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에 <기쁨의 날들> 자매님이 올린 글을 통해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 사건을 알게 되었고 (이미 본인이 그 사실을 시인하였기에 실명을 거론해도 무방하며 오히려 그래야 한다고 믿습니다), 바로 인터넷을 검색해 자세한 내막을 알아 보았습니다. 여러 기사들이 있었으나 뉴스앤조이의 기사가 그 중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더군요.
기사에 의하면 이 사건이 발생한 것은 2009년 11월이었고 발생 장소는 전병욱 목사의 집무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금년 7월에 한 공중파 방송국 PD의 취재를 통해 드러나기 시작할 때까지 비밀로 붙여져 있었고 이 사건이 교회 안에 소문으로 돌게 되자 전 목사는 느닷없이 예정에 없던 안식년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안식년 동안 1,000개의 미자립 교회를 찾아서 그들 교회에 영적 물질적 공급을 해주는 저수지 교회가 되겠다고 자신의 트위터에서 밝혔습니다. 삼일 교회는 9월 14일에 제직회를 갖고 전 목사가 소문을 사실로 시인하고 사임의사를 밝혔으나 당회에서는 3개월 설교 중지와 6개월 수찬 정지 (성찬식 참여 금지)의 징계로 마무리했다고 통보했습니다. 사건의 구체적 언급은 생략되었습니다. 전 목사는 자신의 거취를 교회에 일임하고 지금은 기도원에서 지내고 있노라고 기사는 덧붙였습니다. 아쉽게도 기사에는 어떤 정황에서 어떻게 성추행이 이루어졌는지는 빠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피해자를 보호하려 일부러 빠트린 것이겠지요.
기사를 다 읽고 나니 맘이 좋지 않았습니다. 우선 전병욱 목사가 저지른 죄가 성추행이란 것이 맘에 걸립니다. 차라리 그가 그 여인과 내연의 관계였다면 더 나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불륜의 관계일지언정 둘 사이엔 사랑과 존중이 있을 것이니까요. 그러나 성추행이란 것은 아주 비인격적인 비열한 범죄일 뿐입니다. 가해자 쪽에선 이것을 그리 심각한 범죄로 여기지 않는 듯한데, 피해자 쪽에선 심적으로 큰 상처를 입는 중대한 범죄입니다. 피해자로선 가해자인 전 목사를 당연히 존경하고 믿고 따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 목사가 자신의 지성과 영성과 인격을 존중하고 있다고 믿고 자긍심을 지니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은 전 목사의 관심이 자신의 인격과 영성과 지성이 아니라 자신의 몸에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 배신감과 자기 혐오감과 무력감은 한 사람을 파멸로 이끌기에 충분히 큽니다. 저는 지금 그 피해 여성의 상태가 염려스럽습니다.
이 사건의 발생 책임을 피해 여성에게 두어선 안됩니다. 설령 그 여인의 옷차림과 언행이 도발적이었다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만약 그 피해 여인이 전 목사의 성적 손길을 의도적으로 도발하였다면 그것은 둘의 부적절한 관계는 성립시킬지언정 성추행은 성립되지 않을 터이니까요. 그런데 전 목사는 성추행을 시인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이용하여 그 여인의 의사에 반하여 그 여인에게—나아가 교회와 하나님께 명백한 범죄를 저질렀음을 자인한 것입니다. 아직도 남성우월 사회에서는 성추행과 성폭행 같은 성범죄의 경우에 피해자에게 일부라도 죄책을 돌리려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 된 생각입니다. 그러한 생각이 성범죄를 은닉하고 조장하고 지속시킵니다. 타인의 관심과 사랑을 원하는 사람은 있으나 경멸과 폭행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폭행도 관심과 애정의 한 표현이라 여기십니까? 꼭 정신상담을 받아 그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전 목사는 범죄 이후 무려 8개월을 그 사실을 숨겨 왔고 그 사실이 발각될 위기에 처해서야 그 사실을 시인하고 사임의사를 표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임의사조차 당회의 건의에 따라 철회하고 3개월의 휴식기간과 6개월의 수찬 정지로 자신의 죄값을 치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곤 대외적으론 안식년을 갖고 미자립 교회를 돕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식년에도 쉬지 않고 그런 일을 하겠다는 전 목사에게 존경과 찬사를 보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범죄 사실을 감추기 위한 호도책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전 목사도 사람인지라 실수할 수 있고 범죄할 수 있습니다. 그가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은 죄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고 크고 작은 실수와 범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실수와 범죄의 무게는 그가 지닌 영향력의 크기에 비례하여 일반 신도들보다 훨씬 무겁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형량도 더 무거워야 합니다. 설령 당회가 그렇게 가벼운 징계를 권하더라도 스스로에게 중형을 내렸어야 마땅합니다. 피해자는 물론이요 가족과 교회와 사회에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모든 직에서 다 물러 나고 저술 활동도 중단하고 필요하다면 정신상담치료를 받으며 하나님 앞에서 근신함이 마땅히 취할 도리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당회의 결정에 자신의 거취 문제를 일임했다 하니 그가 자신의 죄에 대한 뉘우침이 부족한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뉘우침이 부족하니 회개가 따르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는 이 상황에 이르렀는데도 어찌 자신의 죄에 대한 뉘우침이 부족한 것일까요? 아마도 그 이유는 그가 그 사건을 자신의 입장에서만 헤아리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 몸 좀 만진 것 가지고 뭘 그리 야단이냐는, 자기도 속으로 바라던 일이 아니었겠느냐는, 자기가 그런 틈을 주지 않았으면 내가 그랬겠느냐는, 그런 볼멘 생각들이 그의 머리 속에 마음 속에 가득 들어 차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문제는 그것을 문제 삼은 그 여자와 그 사실이 발각된 것이지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가 직접 피해자인 여인의 입장에서, 간접 피해자인 가족의 입장에서, 공동 피해자인 교회의 입장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거룩한 하나님 입장에서 그 사건을 헤아려 보았다면 결코 그렇게 가볍게 이 일을 넘기고 있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그가 진정한 회개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를 용서해야 합니다. 그를 내치지 아니 하고 품어 주어야 합니다. 그를 위해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그를 그 자리에 그대로 있게 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에게 충분한 자성과 자숙 기간을 갖게 해야 합니다. 그를 광야로 떠나 보내야 합니다. 하나님과 단 둘이 충분한 회복의 시간을 갖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가 진정으로 자성의 시간을 보냈다면, 아마도 하나님께서 그를 회복시키셔서 돌려 보내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돌려 보내시면 과거를 불문하고 다시 받아 주는 겁니다. 그것이 참 사랑입니다. 아픈 사랑이란 그의 유익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매를 드는 것이고 그의 유익을 위해 아픈 가슴 누르며 고난 길로 떠나 보내는 것입니다.
전병욱 목사가 이번의 넘어짐을 계기로 그동안 본인에게 던져졌던 모든 온건한 비판들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겸손하고 깊이 있는 목회자로 거듭나기를, 삼일 교회가 목사 의존에서 벗어나 진정 하나님을 의존하는 교회가 되기를, 목회자들이, 특히 전 목사를 목회의 롤모델로 삼았던 목회자들이 전 목사의 사건을 거울 삼고 경종 삼아 스스로 겸비하기를, 모든 신자들이 목회자를 넘어 주님에게 초점을 맞추기를, 그리고 피해 여성과, 비슷한 피해를 당했음에도 힘이 없어서 또는 그것이 모두를 위해 특히 하나님을 위해 옳은 길이라는 생각에 함구하고 있는 모든 피해자들이 하나님의 크신 위로와 사랑 안에서 온전히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2010년 9월 29일
보다 관심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말 하나님만이 그(들)에게 위로가 되도록 기도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