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이다. 그렇다고 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이신고로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가 될까? 하나님의 어머니라. . .? 그런 말이 성립될 수 있으려나?
마리아는 분명 예수의 어머니이다. 틀림없이 예수를 자기 몸으로 낳았고 자기 손으로 길렀다. 그렇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어머니는 아니다. 황송하게도 하나님을 뱃속에 품고 낳아 키우는 은혜를 입은 복된 여인일 뿐이다.
누가 복음 2장 39-52절을 보면 예수는 열 두살 되던 해에는 이미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올바른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 부모는 그때까지도 예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단지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마리아가 이 모든 일들을 심중에 담아 두었을 뿐이다. 이 모든 일들이란 예수에 관련되어 그녀가 천사로부터, 사촌 엘리사벳으로부터, 시므온과 안나로부터, 그리고 어린 예수로부터 들은 알쏭달쏭한 말들을 뜻한다. 그녀는 자기가 하나님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하긴 그 누구가 그런 황당한 말을 믿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누가는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 이제 삼십 세쯤 장년의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장면을 시작으로 삼년 간의 공생애 활동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는 이제 마침내 자신이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보냄받은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심을 조금씩 조금씩 알리기 시작하는데, 요한 복음에 의하면 그때쯤엔 그의 모친 마리아도 아마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듯하다. 한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마리아가 예수에게 그 사실을 알리는데, 예수의 반응이 의외이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요 2:4) 아니, 자기 어머니더라 “여자여”라니! 다른 사람도 아닌 예수가. (참고로 예수는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게도 여자여라고 불렀다.) 게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란 다소 무례한 말투는? 그러나 정작 마리아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인들에게 예수가 어떤 지시를 내리든 그대로 받들라고 하명한다. 그러자 조금 전의 그 퉁명스런 대답과는 달리 예수는 하인들에게 돌항아리에 아구 가득 물을 채우라고 지시하고 그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연출한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첫째, 예수는 마리아를 혈육간의 호칭으로 부르지 않고 일반적인 호칭으로 부르는데 마리아는 그 호칭에 익숙하며 괘념치 않는다. (이 호칭은 예수가 임종하기 직전에 다시 한 번 사용된다. 요19:26) 둘째, 마리아는 아마도 예수가 말하는 때와 예수의 사명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셋째, 마리아는 예수가 이 상황에서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넷째, 마리아는 비록 예수가 그렇게 말했지만 자기의 간청을 들어 주리라는 확신이 있다. 다섯째, 이상의 네 가지를 통틀어 짐작컨대 예수는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마리아에게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어느 정도라도 밝혔으며 마리아는 예수를 더 이상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여기고 있다.
공관복음에도 이 둘의 관계가 더 이상 혈연에 의거한 육적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한 영적 관계로 발전되었음을 알게 하는 기록이 있다. 마태복음 12:46-50, 마가복음 3:31-35, 누가복음 8:19-21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더러 모친과 형제자매들이 예수를 찾는다 하자 예수는 자기의 모친과 형제 자매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라고 하면서 자기를 둘러 앉은 사람들을 가리키며 내 모친과 형제자매를 보라고 했다.
“하나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경홀히 대해선 안된다. 그것은 예수님을 슬프게 하며 욕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가? 우리는 그럼 요셉도 높이 받들어야 하는가? 그와 함께 자란 그의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의 의붓아버지시며 하나님의 형제자매들인데 (설령 친형제자매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를 위해 죽음을 불사한 제자들은 어떠한가? 그에게 몸을 빌어 주고 키워 준 공로로 숭배를 받아야 한다면, 그를 위해 끔찍한 고문과 형벌과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에게 어떤 대우가 합당한가?
마리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하나님의 아들을 수태하는 은혜를 입은 자이다. 그녀는 예수 부활 이후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전승대로란다면 승천일까지) 그 감격과 예수의 제자들의 존경과 칭송과 부러움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그녀가 그 이상의 대접을 바랄까? 하나님의 어머니로 여겨지기 바랄까? 예수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는데, 사람인 자기가 감히 하나님의 어머니임을 취할 것으로 여길까?
아닐 것이다. 우리라면 모를까, 마리아는 결코 그런 대접따윈 꿈도 꾸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추앙받고 있음에 대해 상당히 송구스럽고 민망하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흠모가 예수의 영광을 가릴까봐 염려하고 있을 것이다. 가톨릭 교회의 성모상들이 피눈물을 이따금 흘리는 기적을 일으킨다는데, 그래서 더 성모 마리아를 숭앙하나 본데, 아마도 그 피눈물은 우리의 우매함이 답답하고 불쌍해 제발 정신 차리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 보라고 흘리는 성모의 눈물이 아닐까?
3.7.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