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처녀성을 옹호하는 글을 올리다가 사면초가에 처한 한은경 자매가 그녀의 글방, 파아란 생각을 자진 폐쇄하고 모든 글들을 철회했다는 운영자의 공지를 읽었다. 한동안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것처럼 멍하고 당황스러웠다. 그녀의 여러 글을 통해 워낙 맺고 끊음이 분명하고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일 거라는 짐작은 있었으나, 이만한 일로 우리들과 아예 인연을 끊을 사람이라곤 예상치 못했었다. 우리들이 그녀에게 집단 린치를 가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지나친 감상이고 자책일까? 그렇잖아도 그녀의 입장을 헤아려 보는 글을 쓸 생각이었던 내겐 아쉬움과 미안한 마음이 크다. 어쩌면 이번 사건의 빌미는 내가 제공한 것이 아닌가는 한 가닥 생각 때문이다.
한은경 자매와 정순태 형제가 예수의 형제로 인해 생각을 (실은 감정까지) 주고 받았을 때 내가 감히 둘 사이에 끼어 들어 정 형제의 편에 서서 내 의견을 개진하였는데 (자유게시판 256 동정녀 마리아에 관해 2006/1/31) 한 자매는 그것이 서운하고 억울했던 듯, 아예 작정하고 그 문제를 시리즈로 다루고 나섰었다. 그때 내가 나선 것은 두 분에 대한 내 개인적인—그리고 일방적인—애정에서였지 어느 누구 편을 들어 어느 한 편을 잡으려는 속셈에서가 아니었다. 정순태 형제는 이곳에서 그의 글을 통해서만 알고 있지만, 그 글의 논리정연함과 생각의 깊이와 자료조사의 철저함에 그만 매료된 터였다. 나는 둘이서 좋은 동지가 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바라는 마음에서 그 둘의 견해를 조율해 보고자 했던 것이다.
나는 한은경 자매 또한 개인적으론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난 오래 전에 그녀가 쓴 한 글을 읽고 온 몸에 전율이 이는 감동을 느낀 이래, 그녀의 글들을 찾아 읽게 되었고 그렇게 접한 숱한 글을 통하여 그녀의 가치관과 생각과 성격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주로 한국인들의 도덕적 윤리적 타락과 정치적 사상적 좌경화를 우려하고 경고하는 글을 많이 쓰고 있는데, 그로 인해 별별 욕을 다 먹었고 협박과 조롱과 희롱과 멸시를 받았으며 그것도 모자라 한때는 동지라 여겼던 한 저명 인사에게 피소당해 총체적인 시련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녀가 붓을 꺽지 않고 아직도 입바른 소리를 외치고 있는 까닭은, 그녀에 의하면—그리고 나도 전적으로 그 말을 믿는데,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명이라는 소명의식에 있다.
그녀의 글을 읽을 때면 나는 구약성경의 선지자들을 떠올리곤 한다. 그만큼 그녀의 글은 힘차고 당당하고 피토하는 의분이 있고 아슬아슬하리만치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움이 있고 그러면서도 한국과 한국인을 향한 사랑이 깔려 있다. 그녀는 글을 하나 쓰기 위해 엄청난 조사작업을 선행내지 병행하는데 그 자료의 분량과 종류는 내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방대하고 다양하다. 그러하기에 나는 그녀의 글을 읽노라면 왜소해진다.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숙연해진다. 나보다 교육도 짧으며, 나이도 어린, 여자가, 그것도 남편잃은 과부가, 아직 어린 딸 하나와 어머니의 생계까지혼자 책임지면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저렇게 피토하며 절규하고 있는데, 명색이 사내요 미국까지 유학와서 대학원 공부까지 했다는 지식인이요 나름대로 열심인 신앙인이라는 나는 너무나도 안일한 삶을 살고 있다는 자성을 그녀의 글이 내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파아란 생각”과 “자유게시판”에 올렸던 그녀의 글들 중 신학적인 견지에서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글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가 문제가 된 마리아의 평생처녀성에 대한 일련의 글들이다. 이 사이트의 운영자는 초청 칼럼니스트인 그녀의 그 글들로 인해 당황하고 난처함을 지나심각한 고민까지 하셨을 것이나 (혹시 처음 방문하는 분들이 운영자의 신앙노선을 오해하거나 초신자들이 혼란스러워할까봐), 그리고 나 역시 처음엔 당황스럽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난처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녀의 독특한 관점에서 그 주제를 들여다 보는 것도 우리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나쁘지 않을 것 같고 또 그로 인해 토론이 활발해지고 우리가 성경 공부하는 데에 더 열심을 내는 자극제가 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더 컸다. 게다가 그녀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전혀 그녀 자신의 권리이며 나와 의견을 맞추어야 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녀인들 내가 쓴 글들에 다 동의하고 공감하겠는가?
우리는 흔히 우리와 의견을 달리 하는 사람을 멀리 하고 몰아 세운다. 소위 왕따를 시키고 아예 매장시키려 한다. 같은 지체끼리 이러는 것은 스스로를 해하는 짓이다. 교회 내에도 뽑아 내어야 할 가라지가 있고 떼어 내어야 할 누룩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알고 믿고 있는 바를 그가 그렇게 알고 믿지 않는다 하여 그를 우리의 무리에서 쫓아내려 한다는 것은 지나치다. 우리의 믿음과 신앙 지식들이 우리의 명석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실은 은혜에서 비롯된 것임을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라면.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믿음의 분량은 같지 않다. (롬 12:3) 우리 각인에게 맡기신 직분도 다르고 주신 은사도 다양하다. 그러나 그렇게 다른 우리는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들이다.
한은경 자매가 마리아에 관해 우리와 생각을 달리 한다 해도 그녀는 우리의 적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한 몸을 이루는 지체이다. 마리아에 대한 그녀의 오해는 마리아나 예수나 하나님을 욕되게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들에 대한 열심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과 믿음의 분량에 비추어 볼 때 마리아가 우리 개신교도들에게홀대받고 있는 것이 너무나 분해서 그러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을 뿐이다. 그 마음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설명이 잘못 된 것일 뿐인데 그 의로운 마음을 받지 않고 잘못된 설명에 집착하여 “지옥의 자식”이란 칭호까지 씌우는 것은 지나쳤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선 그녀의 마음을 받으셨을 것이다.
마리아에 관해 언젠가 그녀가 (또는 그녀에 의하면 우리가) 제대로 알게 될 때가 올 것이다. 그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일은 한 몸을 이룬 지체끼리 서로의 실수와 잘못을 용납하며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실수의 여지를 주시는데 우리는 왜 서로에게 그 여지를 허락치 않는가? 마치 나는 실수를 않는 것처럼, 나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제대로 깨우친 것처럼.
언젠가 이런 각오를 한 것이 기억난다. 실수할까봐 침묵을 지키기보다 실수를 하더라도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리라던. 하나님께선 그 실수마저 선을 이루는 데에 쓰실 수 있는 분이시기에.
한은경 자매를 그리 쉽게 매도하기 앞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의 편에 서 있는지 먼저 알아보려는 노력이 있었더라면, 그리고 그녀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질타하기보다 제대로 알고 있는 자로서의 감사함과 넉넉함으로 언젠가는 알게 될 거라며 느긋하게 기다려 주는 태도를 보였더라면, 그녀는 그렇게 극단적인 조치까지 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상 코너”를 받치고 있던 “파아란 생각”이 없으니 허공에 붕 뜬 느낌이다. 그녀가 서운함을 풀고 돌아 오기를 기대한다.
3.15.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