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느 교회의 임직 예배에서 새롭게 직분을 맡은 분들에게 어느 목사님께서, “세상과 싸워 이기라”고 권면하셨습니다. 흔히 듣는, 전혀 새로울 것 없는 권면인데, 저는 그 말씀에 주의가 멈췄습니다. 그리곤 마음 속에 의문이 일었습니다.
지금 저 권면을 하는 자나 그 권면을 듣고 있는 자들이 싸워 이겨야 할 대상으로 떠올리는 세상은 무엇일까? 그것을 “싸워 이기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할까? 어떻게 하는 것이 그들과 싸워 이기는 것이라 생각할까?
진정 우리가 그 무엇과 싸워 이기려면 우리는 먼저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대상을 붙들고 죽기 살기로 싸울 수 있습니다. 그러느라 시간과 정력과 여러 자원을 낭비하게 됩니다. 그 대상이 분명해져야 어떠한 싸움을 할지도 가늠이 섭니다. 무엇으로 어떻게 싸워야 할지도 모르면서 이기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싸움을 끝낼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 이기는 것인지를 모르면 이겼는데도 계속 싸움을 할 수도 있고 아직 이기지 않았는데도 서둘러 싸움을 끝낼 수도 있습니다.
후일 바울로 알려지기 전의 사울의 예를 들어 봅시다. 그에게 “세상”은 예수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그에게 “싸워 이긴다” 함은 예수 믿는 자들을 붙잡아 공권력으로 그들을 배도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끝내 그 믿음을 버리지 않을 경우 투옥시키거나 스테판의 경우처럼 즉결 형을 내려 죽여버리는 것이 그들과 싸워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했기에 그의 싸움은 예수 믿는 자들의 씨가 마를 때까지—아마도 그의 목숨이 붙어 있는 날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우리 싸움의 대상이 누구라 합니까?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 6:10) 혈과 육 즉 사람이 아니라, 그 뒤에서 혹은 그 속에서 역사하고 있는 악의 영들이 우리의 참된 대적이란 걸 뒤늦게 알게 된 겁니다. 그것도 모르고 그는 엉뚱한 싸움으로 시간과 정열을 낭비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평생 지우지 못할 큰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적이 누구며 우리의 싸움이 어떠한 것이며 어떻게 무엇으로 그 싸움을 싸워 이길 것인지, 이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도 바울의 전철을 밟게 됩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우리가 본받고 좇아야 할 분이지만 그렇다고 그의 실수조차 따를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싸움이 악한 영들에게 대한 것이라는 말에 흔히 여름철 납량특집 영화에서 그리는 것처럼 흡혈귀나 원귀나 악귀 혹은 사단과의 싸움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십자가를 들이대고 주기도문을 외우고 나사렛 예수 이름을 외치고 가슴팍에 나무 못을 박음으로써 그들을 죽이거나 (영을 죽이다니요?) 몰아내는 것이 그들과 싸워 이기는 것이 되겠지요. 하지만 바울 사도의 서신을 계속 읽어 보면 그게 그런 말이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악한 영들과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싸우라고 합니까? 진리, 의, 복음에 근거한 평안, 믿음, 구원에의 확신, 하나님의 말씀: 이것들로 싸우라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 싸움의 대상은 악한 영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거짓과 불의와 죄의식에 따른 불안과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싸움은 여호수아의 싸움처럼 기도와 간구 없이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란 뜻이 아닐까요? 바울 사도가 여러 서신을 통해 우리에게 권면하는 것은 한 마디로 죄에서 떠나 하나님과 평안을 누리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싸워 이겨야 할 “세상”은 인간도 악령도 아닌 “죄”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죄는 바로 우리 속에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이기었노라던 (요 16:33) 예수님의 말씀은 어떻게 됩니까? 우선 예수님께서 어떤 상황에서 그 말씀을 하셨는지를 살펴 봅시다. 요한 복음에 따르면 이 말씀은 잡히시던 날 밤 제자들에게 하신 최후의 말씀입니다. 조금 후엔 체포되어 다음날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게 될 터인데, 그로 인하여 제자들이 위축되고 불안해 할 것을 염려하사 안심시키려고 그렇게 말씀 하신다 했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예수께서 세상을 이기셨음에도 제자들은 환란을 겪을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대장이 싸움을 이겼는데 졸개들이 환란을 당한다니요? 아니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이기셨기에 그럴 수가 있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제자들에게,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큰소리쳤던 예수께서 그 밤으로 관헌들에게 잡혀 뭇매를 맞고 조롱과 멸시를 받고 그리곤 나무에 매달려 죽으셨습니다. 이런 허망한 패배가 있으리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예수껜 승리였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선 누구를 상대로 싸우신 겁니까? 유대 지도자들도 로마 관원들도 예수님을 나무에 못박으라 외치던 군중들도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거꾸러뜨리지 못해 안달하던 “하늘의 악한 영” 사단입니까? 그도 아닙니다. 사단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맞상대가 아닙니다. 그럼 누굽니까? 죄에 대한 유혹입니다. 불순종에의 유혹입니다. 교만에의 유혹입니다. 다른 말로 성부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순종에의 싸움이었으며, 결국은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었습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6-8)
지금까지 살펴 본 바에 따르면, 우리가 싸워 이겨야 할 “세상”은 실은 우리 속에 있는 탐심이요 교만심이며 반항심임이 분명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우리의 밖에 있는 온갖 악과 불의와 편견과 타락과 부당함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서 아직도 살아 꿈틀대는 옛 자아의 죄에 대한 습성과 미련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직시하지 않는 한 우리의 싸움은 헛된 싸움이 될 뿐입니다. 우리의 변화가 더딘 주된 이유 하나는 우리가 자신의 잘못과 싸우지 아니 하고 남의 잘못과만 싸우기 때문이 아닌가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바울 사도께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보여 주시고 이기신 그 싸움—십자가에 죽기까지 철저하게 낮아지고 순복한 싸움, 우리 속에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맺히는 싸움을 우리도 함께 힘써 싸워 봅시다.
2010년 7월 20일
극적극적^^ 그 싸움에 저도 동참을 하면서 여기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모두 승리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