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족의 삶

조회 수 338 추천 수 0 2016.10.01 00:47:24

테니스와 골프를 꾸준히 합니다. 테니스는 토요일 새벽에, 그리고 골프는 주중에 한 번, 때론 한 토요일에 테니스와 골프를 다 하기도 합니다. 테니스는 중학교 때 시작했으니 거의 평생 운동이고 골프는 이제 십 오륙 년 되었나 봅니다. 둘 다 햇수 만으로도 지금쯤은 상당한 경지에 있어야 하는데, 못 친다는 말은 듣지 않는 정도의 수준입니다. 그래도 더 오래 했다고 테니스 실력이 골프 실력보다는 낫습니다. 테니스는 남을 가르칠 정도는 되는데 골프는 아직도 배우고 익히고 있으니까요. 골프 핸디로 테니스가 +6, 골프는 +15 정도 입니다.

 

제 골프 친구 중에 운동은 다 잘 하는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이 친구가 몇 년 전부터 배드민튼을 치기 시작하더니 골프를 뒷전으로 돌릴 정도로 그 재미에 푹 빠지더니 제게도 함께 치기를 권하더군요, 난 테니스를 하니까 배드민튼은 금방 익힐 거라면서. 배드민튼을 몇 개월만 열심히 하면 몸에 군살이 다 빠지고 날씬해지며 체력도 좋아진다는 말에 혹해, 어느 날 고속도로로 한 시간을 넘는 거리를 운전해 갔지요. 

 

배드민튼의 타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받고 그 친구가 빌려준 라켓을 쥐고 코트에 들어 가서 네트를 사이에 두고 그 친구와 마주 섰습니다. 아주 옛날이지만 소위 '약수터' 배드민튼을 쳐봤던 경험도 있고 또 평생을 테니스를 해 온 터라 첫 번부터 잘 치지는 못 해도 아주 못 치지는 않으리라고 저도 친구도 내심 믿었지요. 그런데 웬걸, 그 친구가 쉽게 보내 준 셔틀콕을 숫제 맞히지도 못하고 헛스윙을 하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그렇게 연이어 헛스윙을 하게 되자 당황하게 되어 더 안 되더군요. 이럴 수가! 나도 친구도, 당황하고 놀랐습니다. 아니 그렇게 오래 테니스를 한 사람이 어떻게 공을 못 맞춰? 내 말이! 아니 어떻게 내가 공을 맞히지도 못하냐고! 부끄러움과 자괴감과 분노와 오기와 어이없음과 허탈함이 한꺼번에 일더군요.

 

이제보니 김형, 운동신경이 통 없구만! 응, 나, 실은 그렇게 운동신경이 뛰어난 편은 아냐. 테니스는 어릴 적부터 시작했고 워낙 오래 쳐서 그마나 괜찮게 치나 봐. 그렇게 인정한 후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십여 분을 더 시도한 끝에 드디어 이마 위로 오는 공(셔틀콕)은 맞힐 수 있게 되었으나 허리 아래로 떨어지는 공은 계속 헛손질만 하다 끝을 내었습니다. 

 

저와 친구 모두에게 충격적이었던 그 저녁 며칠 후에 그 친구와 또 다른 친구들과 함께 골프를 하게 되었습니다. 골프에 있어서도 시작은 그가 저보다 불과 몇 개월 빠를 뿐임에도 거리나 정확성에 있어 그 친구가 저보다 몇 수 위여서 제게 이런저런 지적과 가르침을 주는데, 그 가르침이 제대로 구현되질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지요. 여하튼 그날도 제 샷을 보더니, "김형 골프한 지가 얼만데 아직도 그렇게 쳐"라고 한 마디 하더군요. 보는 자기도 답답했던 게지요. "그러게 말이야, 나도 배운 대로 한다고 하는데 이렇게밖에 안 되네." 그렇게 대꾸를 하는 내 속은 며칠 전의 배드민튼 굴욕 건과 겹쳐 편칠 않았습니다. 사실 골프에 들인 노력과 시간으로 치자면 지금쯤 프로에 준하는 실력에 도달해 있어야 할 것이고, 배운 이론으로 치자면 능히 남들을 가르칠 수 있음에도, 여전히 보는 이들마저 답답케 하는 수준이라니. 그나마 잘 한다는 소리를 듣는 테니스조차 솔직히 골목대장 수준이지 구력에 비해선 부끄러운 수준인 것을...!

 

내가 열심히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왜 난 아직 이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가? 비단 골프와 테니스 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서 다, 세상적으로도 신앙적으로도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게 없지 않은가. 도대체 내가 이 나이 되도록 이루어 놓은 게 무엇 있단 말인가! 하나님은 왜 내게 탁월한 재능을 주시지 않았을까?

 

남은 홀 내내 샷과 샷 사이에 그 생각을 하며 골프를 쳤습니다. 그리고 라운딩이 끝날 즈음엔 이렇게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왜 내게 그런 재능과 성공과 업적을 주시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헤치지 않은 곳에서 모우시는 분이 아니시므로, 내게 주신 것 이상을 내게서 요구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내가 더 잘 하고 싶고 더 잘 되고 싶은 마음은 내 교만심을 채우고 싶어서이지,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과는 무관하지 않은가. 내 재능이, 내 업적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음을 인정한다고 하나님의 영광이 손상되는 것이 아닌데, 아니 오히려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화를 내거나 낙심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초조해한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될지도 모르는데, 이 정도나마 할 수 있고 지니고 있음을 감사하고 즐기는 것이 마땅한 자세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잘 하지 못 한다고 하여, 가진 게 많지 않다 하여, 이렇다 할 업적도 공적도 없다 하여 그로 인해 부끄러워도 말고 낙심도 말고 아쉬워도 말고, 잘 하지 못하면 어때, 가진 게 많지 않으면 어때, 내보일 업적도 공적도 없으면 어때, 이미 나는 하나님께 아신 바 되었는데 그것 말고 무엇을 더 바라고 자랑할까.

 

그렇다고 더 나아지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하거나 멈추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아질 것을 기대하며  그야말로 될 때까지 학습하고 연습할 것입니다. 언젠가 제대로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끝내 잘 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쩌겠습니까. 제게 허락된 것이 거기까지라면 거기까지만 즐기고 누리면 되는 것이지요. 잘 하든 못 하든, 적든 많든,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지족의 삶, 이제부턴 그 삶을 살고자 합니다.

 

2016. 0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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