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짝사랑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조회 수 1558 추천 수 126 2008.04.05 08:47:45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언어라 알고 있습니다(언어학자가 아니기에 정확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 시편 23편을 읽으면 거의 동의될 듯싶습니다. 언어학적으로 제대로 번역되었는지에 무관하게, 어쩌면 영어 번역보다도 훨씬 감동적인 것 같습니다. 한글의 아름다움을 증명하는 한 예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문장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단어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말들이 무척 많습니다. 개인 취향에 따라 각양각색이겠지만, 오누이/저녁놀/아지랑이 등도 정겹습니다.

그 중, 아마 ‘짝사랑’이라는 단어도 포함될 듯합니다. 상대방의 반응에 아랑곳없이 홀로 하는 사랑이 짝사랑입니다. 사전이야 뭐라 설명하든 말든, ‘맺어질 확률 0%의 애달픈 사랑’이 ‘짝사랑’의 가장 정확한 정의입니다! 첫사랑의 특이한 유형이기도 한 짝사랑의 맛은 ‘너무나 가슴이 아리다.’는 것입니다. 이 맛은 경험자가 아니면 결단코 모릅니다!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개인적인 짝사랑을 한번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당시는 힘겨울 정도를 넘어 비참한 시절이었습니다. 첩첩산중 두메산골 면소재지에서도 약 2㎞ 떨어진 강변마을 농부의 아들의 몰골이 그려지실는지요!  

초등학교 2-3학년 때의 일입니다. 그때나 이때나 조금은 조숙(?) 했던지라 벌써 첫사랑을 짝사랑으로 경험했습니다!

친척집에 다니려온 동갑내기 여학생이었는데 당시 인구 5만 도시에 사는 부유한 한의사의 딸이었습니다. 옷차림을 비롯해 모든 면에서 정갈하기 이를 데 없는 마치 선녀와 같은 아이였습니다. 그 애를 보자마자 ‘뿅~!’ 갔습니다.  

공주 버금가는 도시 여학생을 향한 꾀죄죄한 촌 머슴애의 짝사랑의 결과를 묻는다면 이는 잔인한 짓입니다. 말 한번 못 붙여보고 지금까지 애달픈 짝사랑으로 남겨지고 말았습니다. 그 예쁘고 우아했던 모습이 생각날 때면 금새 한 쪽 가슴이 아리해지곤 합니다.  

하지만 지금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결코 만나지 않겠다.’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첫사랑 내지 짝사랑의 여인을 결코 만나지 말라.’는 경고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이를 무시했을 때 지불할는지 모를 실망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항상 미소 짓게 만들던 소중한 추억이 산산조각 나는 아픔만큼은 어찌하든 피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이 원칙만 지킨다면 짝사랑은 꿀물처럼 달콤한 기억으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짝사랑이 아무리 황홀하고 소중해도 실제 결혼생활은 아닙니다. 못 생긴(?) 아내와 함께 해 온 시덥잖은 나날들이 오히려 참 결혼의 모습입니다. 결혼생활은 달콤한 짝사랑의 연속이 아니라 무덤덤한 일상입니다. 맹물처럼 담담할 뿐입니다.  

신앙에도 짝사랑(또는 첫사랑)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소위 ‘성령체험’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방언이든 환상이든 신유든, 아무튼 아무 것이든 좋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산 체험입니다. 그 당시의 기분은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짝사랑의 기억처럼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그러나 명백한 체험신앙일지라도 그것만으로 신앙의 전부를 정의할 수 없습니다. 마치 짝사랑이 전 인생일 수 없듯이 말입니다. 간단한 실례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지인(知人)의 사례입니다. 그는 확실한 성령체험자였습니다. 가슴에 “나는 찾았네!”라는 표찰을 자랑스레 달고 다니며, 입을 열었다하면 ‘오직 예수!’만 증거했습니다. 주변 사람 누구나 인정한 ‘오리지널 예수쟁이’였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성령체험자로서 30여 년 이상 줄기차게 신앙생활 해 왔던 그는, 지금 불행하게도 전혀 아닌 이단에 빠져 있습니다. 그 확실해 보였던 체험은 어디로 갔는지 아리송할 따름입니다.

다음, 방언 잘 하고 신유 잘 하던 한국을 대표하는 능력자 J 목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분은 현재 맘몬신에게 무릎 꿇고 만 것 같아 보입니다. 그 대단했던 체험은 어디로 갔는지요.

위 경우는 ‘신비체험의 효능이 영원한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웅변으로 증명하는 예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성령체험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수십 년의 세월 속에서 진위를 판정받아야만 합니다. 체험 순간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지는 못합니다. 좀 더 기다리고 더 두고 봐야 합니다.

누구를 힐난하자는 목적이 아니라 우리 신앙은 부분 체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신비체험이 아무리 생생해도 신앙의 전부는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 본다면 곧바로 이해되실 것입니다.


우리 신앙도 인생과 유사한 면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바로 ‘맹물과 같은 담백함’입니다. 피곤할 때 꿀물 한 잔의 효능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평생 지속적으로 마셔야 할 것은 맹물입니다. 신앙도 인생도 맹물처럼 담백한 일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짝사랑의 감정이 제 아무리 꿀물처럼 달콤하다 하더라도 이것만으로 인생이 정의되지 않듯, 방언을 비롯한 모든 신비체험들이 아무리 생생하더라도 이것만으로 신앙이 결정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일상을 통한 담담한 삶 - 주님께서 일깨워주신 참 인생과 신앙의 뜻이 아닐는지요! ♣

조재춘

2008.04.07 12:08:20
*.113.73.168

아멘!!!
늘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냉수와 같은 귀한 나눔에 감사합니다. 꾸벅 ^^
사도바울은 삼층천에 갔다온것을 십사년이나 지난뒤에......그것도 그냥 갔다왔다는 말뿐입니다.
오직 주와 은혜의 말씀에 집중해야겠읍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아멘!!!

정순태

2008.04.08 11:46:36
*.75.152.117

조재춘 형제님!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태조와 무학 대사의 이야기처럼
아무리 안 좋은 글이라도 좋은 분이 보시면 좋아보이는 것으로 압니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자신의 죄성 때문에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지만
주홍빛 죄악까지도 사하시겠다는 주님 약속만 붙잡고 오늘을 보냅니다.

작은 부분일망정 함께 천성 향해 가는 지체들의 나눔을 사모합니다! 샬롬!!!

김형주

2008.04.12 05:09:03
*.173.42.18

정순태 형제님!!!
좋은 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사님께서 말씀하신 그 짝사랑 때문에 늘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남들은 대부분 짝사랑을 해 봤다는데 저는 아직 한 번도 짝사랑을 해 보지 못한 채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사실은 짝사랑을 해 보고 싶은 생각 자체가 안드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신앙의 연륜이 짧은 저로서는, 주변의 오래된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특이한 체험에 대한 얘기들을 하면 사실 저는 좀 썰렁해 집니다.
당연히 저도 체험을 했어야 하는데 제가 믿음이 부족해서 주님이 저에게 뜨거운 체험을 안주시나 하는 걱정도 있구요.

저는 일상 생활에서 주님과의 동행이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또 제가 속해있는 조직과 그 주변이 가장 중요한 하나님 나라 확장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주님을 내건 이벤트성 행사에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현재와 같은 방식의 심령부흥회라는 행사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심한 회의를 느끼고 있습니다.
제 사고방식이 이렇다 보니 주변의 평범한(?) 성도님들과는 신앙적인 대화가 좀 어려워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곳에서 목사님과 여러 형제님의 글을 통해 많은 수양을 쌓고 있는 중인데 형제님의 글 들 중에 특히 제게 도움이 되는 것들이 많아 개인적으로 감사드립니다.

샬롬!!!

김유상

2008.04.12 05:55:31
*.170.40.25

순태 형제님으로 인해 늘 마음이 든든합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잘못된 믿음을 빠질까 염려하시고 경계해 주시니 말입니다. 요즘 묵상 주제 중 하나가 성령 체험입니다. 체험 자체는 신앙의 증진에 큰 도움이 된다 믿습니다. 하지만 그 체험이 무엇을 위함인가를 자문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본체요 주체인 예수께로 이끌지 않는 체험은 형제님께서 염려하신 쪽으로 작용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녕 성령 체험이었다면 우리에게 그 체험을 허락하신 이가 우리를 당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내버려 두시겠는가 라는 의문이 뒤따릅니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성경 사례들은 그 의문에 부정적인 답을 줍니다. 그렇다면, 그 체험의 참 정체는 무엇일런지요?

작은자

2008.04.12 18:35:43
*.7.13.27

좋은글 감사합니다 ^^
무엇이든지 과도히 집착하게 된다면 문제가 되겠지요^^

언젠가 어느 목사님의 설교에서 기억이 나네요~
얼굴에서 눈과 눈사이가 왜 중요한지를 설명하시더군요

사이가 없이 바짝 붙어 있다면 어떻게 되겠느냐고요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신앙에서 체험적인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봅니다

지적하신 것처럼
오래 두고 보아야 알수 있지요
그리고 그러한 경험들이 완전하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지속적으로
누릴수 있게 점진적으로 기도와 말씀과 삶속에서
마치 부부가 오랜 삶이 되면 맹물처럼 무덤덤해지더라도

무덤덤해 진다는 것은 거의 익숙해졌고
편안한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이고
서로 하나인것 조차도 못느낄 정도의
완벽한 하나됨은 아닐까 괘변을 늘어 놓아봅니다 ^^

쓰다보니 뭔 소릴 하려 했는지 햇갈리네요 ^^
그러니까 제 말은 정순태 형제님의 글에 공감 동감 강추 한표를 준다는 것입니다 ^^

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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