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보낼만한 자

조회 수 1096 추천 수 73 2009.07.18 07:03:28

♣ 출4:13(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신앙생활에서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는 ‘주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미리 준비하여 정해진 기준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흔히들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쓰신다.’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특히 무언가 공적이 뚜렷한 이들일수록 거의 확신하다시피 하는 오해입니다.

그러면서 성경에 기록된 여러 위인들 인용하기를 서슴지 않습니다. 요셉, 이사야, 다니엘, 예레미야 등이 자주 인용됩니다. 사실 얼핏 생각하면 이런 분들은 정말로 ‘미리 준비된 자들’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기만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눈물콧물 흘리면서 매달린 사람에게는 방언도 주시고, 신학교 가서 공부한 사람에게는 목사도 허락하시는 것으로, 굳게 믿는 현실이 된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준비의 필요성’이 입증되었다고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거의 모든 위인들은 결코 ‘미리 준비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전혀 준비되지 않은 자들’이었을 뿐입니다.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요셉입니다. 그는 30세에 총리가 되어 애굽은 물론이요 야곱 등 이스라엘을 몽땅 구원한 공로자로 인식합니다. 그러면서 그가 강철같은 의지로서 최악의 환경과 처지를 극복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즉 그의 사전 준비성을 높이 평가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가 30세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준비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10여 년 간 보디발의 가정총무(종)였을 뿐이고, 약 2년 이상을 죄수로서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히브리 대학에서 구약학을 연구하거나 애굽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날그날을 살았을 뿐입니다.

이사야입니다. 그가 톱에 썰려 죽임 당할 때까지 선지자로 살았던 것은 미리 준비한 덕분이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을 것이므로, 미리미리 준비하자는 마음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느날 갑자기 부름 받았을 뿐입니다. 부름 받을 당시 그는 무척 당황했었습니다(사6:5).

다니엘은 더욱 착각하기 쉽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뜻을 정하여”(단1:8)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목숨 걸고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아 사자굴에 던져지는 사건(단6장) 등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나아가 느브갓네살 왕의 특별교육 2년을 수료하였으므로 그야말로 ‘미리 준비한 자’의 대표격이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니엘도 미리 준비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의 2년 교육은 결코 신앙교육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바벨론의 일반학문(일종의 정치학)이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와 다짐 등은 순수한 신앙고백적 성격일 뿐입니다. ‘준비’와는 무관한 것이지요.

예레미야입니다. 그는 제사장이므로 ‘미리 준비한 자’의 표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율법에 관한 한, 제사장 교육을 받았음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도 스스로의 능력이 없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렘1:6)라는 고백이 그 증거입니다.

간략히 살펴본 몇몇 분들의 정황에서는 ‘미리 준비한 자’로서의 면모를 발견해 내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아직 중요한 분이 남아 있습니다.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야말로 특이한 사람입니다. 애굽의 왕자교육을 이수했고 율법의 창시자요 심지어 주님의 예표자이기도 합니다. 그의 일평생은 참으로 독특하고 위대했습니다(몇 번에 걸쳐 모세의 위대성에 관한 묵상을 나눈 바 있습니다. 참고바랍니다).

그런데 더 이상 위대할 수 없을 정도의 위인이었던 모세도 부름받을 때 보였던 반응은 전혀 달랐습니다. 심히 엉뚱한 반응이었습니다.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자기는 보낼만한 자가 못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후손 입장에서는 최고의 적임자였는데, 모세 스스로는 전혀 아니라고 합니다. 세상에! 모세가 아니라면 누가 합당한 자이겠습니까!!!


이제, 모세를 비롯한 구약과 신약 시대의 모든 신앙 위인들은 결코 ‘보낼만한 자’들이 아니었다는 성경의 선포에 동의해야 할 시점입니다! 그 누구도 ‘보내기에 합당한 자’는 없었습니다. 모두 불합격자들이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성경은 이들이 마치 ‘합당한 자들’이었던 것처럼 기록하고 있을까요?

여기에서 바로 성경의 신비를 발견하게 됩니다. ‘전혀 합당치 않은 자들을 온전히 합당한 자들’로 만드는 비밀 - 그것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입니다! 인간의 준비성 여부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임재가 관건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서두에서 ‘사전준비의 가치’를 깎아내렸던 이유입니다.

오늘날도 동일합니다. 신학을 전공하고 안수 받아 ‘준비 완료’한 것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헛일입니다. 이런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유일한 요건은 ‘하나님의 임재 여부’, 즉 ‘얼마나 붙잡혀 있는가’의 문제일 뿐입니다.

자신의 박사 학위증이나 목사 안수증을 근거로 ‘스스로 준비 완료된 자’라는 착각에 빠짐으로써, 바른 신앙관을 어지럽히는 어리석은 처신들이 사라지기를 고대해 봅니다.

김순희

2009.07.18 13:43:50
*.254.209.141

스스로 준비 완료된 자라고 착각하는 자들을 과연 하나님께서 들어 쓰실런지......

믿음의 선진들 어느 누구도 자신이 적임자라 말한 자가 없군요.
바로 그것이 성경의 신비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아침과 저녁 먹고 사는 일에 여념이 없는 우리에게 사람낚는 어부가 되라시는 그 신비.....
자신을 아무리 둘러 보고 또 보아도 절망할 수 밖엔 없는 모습 때문에 아버지께 죄송스러움 밖엔 없는데...
그런데 부르시어 아버지의 맘으로 생각해 보게 하시는 그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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