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 이새의 아들은 7명인가 8명인가?

조회 수 8273 추천 수 85 2009.06.27 13:03:07
▲ 성경의 여러 족보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아주 많은 상충들이 존재함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 성경족보의 상충 내지 오류는 주의깊게 연구해도 명확히 설명되지 않고 따라서 충분한 이해에 도달하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아마도 그 원인 중의 하나는 성경 족보가 일체의 누락없이 기록하려는 목적보다는 계보의 연속성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구약성경은 족보를 기술하면서 몇 대의 차이가 나는 선조나 후손을 ‘아버지’ 또는 ‘아들’로 표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는 상당 부분의 누락과 생략을 허용한다는 의미의 전제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더욱이 이스라엘 고대 족보 상세본이 후대에까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성경과 유대족보를 가지고 더 이상의 검증이나 확증은 불가능하다 하겠습니다.

이러한 성경고증의 한계를 염두에 두고 이새의 아들들은 몇 명이었는지에 관한 의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 성경에 이새의 아들이 거명된 대표적 구절은 3군데입니다.

  ○ 삼상16:6-13절에 보면 사무엘이 다윗에게 첫 번째 기름 붓는 사건이 나옵니다. 첫 아들부터 차례로 사무엘 앞을 지나게 하면서 하나님이 지명하는 자에게 기름을 붓는 장면입니다. 아무튼 10절에는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 사무엘 앞을 지나게 하나”라는 말씀이 있고, 11절에는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결국 이새의 아들은 총 8명인 것입니다.

  ○ 삼상17:12절은 “…이새는 사울 당시 사람 중에 나이 많아 늙은 자로서 여덟 아들이 있는 중”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시 이새의 아들은 총 8명인 것입니다.

  ○ 대상2:13-15절에는 이새의 아들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15절에는 “일곱째로 다윗을 낳았으며”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이름이 기록된 이새의 아들은 총 7명입니다.

▲ 이상과 같은 불일치는 학자들에게도 골칫거리인 듯합니다. 명쾌한 답변을 하지 못하는 것 같고, 불확실한 추정 견해만 제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중 2가지를 소개합니다.

  ○ 톰슨성경(1985년판)의 삼상17:12절의 “여덟 아들”에 대한 각주입니다. ; “대상2:13- 15절에는 이새의 아들을 모두 7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난제는 이새의 여덟 아들 중 어느 한 명이 조사(早死)했을 경우 후대인이 기록할 때 그 조사한 아들의 이름은 빼고 일곱 아들의 이름만을 기록한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 오픈성경(1986년판)의 대상2:9-15절 각주입니다. ; “…원래 이새는 8명의 아들이 있었으나(삼상16:10-11) 한 명은 죽은 것 같다. 8명의 아들 중 다윗은 왕이 되고 또 한 명은 족보에도 못 오를 정도로 일찍 죽었다. 누가 죽음을 당해야 하고 누가 왕이 되어야 하는지를 아버지 이새도 몰랐었다. 이러한 사실은 세상의 모든 일이 오로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구나 하나님의 왕국은 하나님의 주권이 충만하게 행사되는 곳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택한 자만이 그 나라의 백성이 되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만이 그 나라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위 2가지 견해의 핵심은 ‘원래는 8명이었으나 그 중 한 명이 일찍 죽었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하지만 이는 성경의 다른 곳과 비교할 때 상당한 불일치가 생깁니다. 삼상16:6-13절과 상충됩니다.
  
  ○ 16절에는 분명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 다 사무엘 앞을 지나게 하나”라고 되어 있습니다. 7명이 사무엘 앞을 지났습니다! 그러나 아직 말째 다윗은 지나지 않았습니다!

  ○ 기름부음 행사 당시 다윗의 나이는 얼마였을까요? 학자들이 연구한 연대기 계산으로는 15세였던 것으로 여겨집니다(아무리 많게 잡아도 20세를 넘지 않았을 것입니다).

  ○ 만약 일찍 죽은 이새의 무명(無名) 아들이 있었다면 그는 명백히 다윗의 형이어야 합니다. 성경은 다윗을 “이새의 말째”라고 기록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름부음 행사 당시 무명 아들(다윗의 형)의 나이는 얼마였을까요? 다윗의 바로 윗 서열의 연년생 형이라 하더라도 최소 16세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 그리고 이 무명 아들이 기름부음 행사 몇 년 후에 죽었는지 명확치 않기 때문에 편의상 2년 후 사망했다고 가정한다면, 사망 당시 무명 아들의 나이는 약 18세였을 것입니다.

  ○ 사실상 위의 추정은 최소한의 범위입니다. 만약 실제 무명인인 다윗의 형이 존재했었다면 그는 18세 이상 생존했었을 것입니다.

  ○ 무슨 이야기냐 하면, 만약 이새의 무명 아들이 18세 이상 생존했었다면 ‘족보에도 못 오를 정도로 일찍 죽었다.’라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 그런데, 대상27:18절에는 “다윗의 형 엘리후”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엘리후’라는 동명이인이 여러 사람 나오고 있지만 “다윗의 형 엘리후”는 오직 이곳에 단 한번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터넷(http//cafe.daum.net/Jesus1004you/기독자료/성경주석자료)의 출처미상의 자료를 통해 관련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 먼저 대상27:18절 주석입니다. : 『유다의 관장인 엘리후(Elihu)는 다윗의 형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다윗의 가족을 소개하고 있는 2:13-15절에는 엘리후라는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엘리후는 다윗의 친형제가 아닌 먼 친척 관계에 있는 형이거나, 아니면 그 이름과 유사한 다윗의 맏형 엘리압(Eliab)을 지시하는 것이라고 추론해 볼 수 있다. 실상 엘리압이 이새의 장자이므로 유다 지파의 관장으로서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고 생각해 볼 때 엘리후는 엘리압이라는 이름의 약간 변형된 형태라는 추론은 가능하다(Keil, Payne). 이에 따라 70인역은 아예 엘리후를 엘리압으로 번역해 놓고 있는 실정이다.』<* 이 추론은 근거가 매우 취약한 단순 추론인 듯싶습니다. 숫자 7과 8의 불일치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삼상16:10절의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지나게 하나”의 주석입니다. : 『대상2:13 -15절에 기록된 다윗의 가계에 따르면 이새의 아들은 다윗까지 포함하여 도합 7명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다윗까지 포함하면 이새의 아들은 도합 8명이 된다. 이러한 차이는 분명 이새의 8 아들들 중 한 사람이 어려서 일찍 죽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Smith, Fay).』<* 이 추론의 취약점은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  삼상17:12절 “여덟 아들이 있는 중”의 주석입니다. : 『삼상16:10-11절에서도 이새의 아들은 여기서처럼 여덟 명으로 언급되고 있으나 대상2:13-15절에서는 일곱 명으로 나와 있다. 이같은 차이를 규명해 보려는 시도로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즉 (1) 이새의 아들은 원래 여덟 명이었으나 한 명은 죽었다고 보는 견해(Keil, Smith), (2) 이새의 아들은 원래 일곱 명이었으나 16:10절에서 다윗을 제외하고도 일곱 명이라고 한 까닭은 많은 다른 아들들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지 못했음을 강조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고 보는 견해(Klein) 등이다.』<* (2)번 견해도 근거가 취약한 추론인 것 같습니다>.

▲ 한편 제가 가입한 카페(http://cafe.daum.net/bibleriver/성경관련질문방 302번)에도 동일한 질문에 대한 운영자 목사님의 답변이 올라 있습니다. 비슷한 설명이지만 한번 참고해 볼만하겠기에 소개해 드립니다.

답변) 무척 답변 드리기가 어려운 질문입니다. 찬양하는 자님의 지적대로 사무엘상 16장을 보면 분명히 다윗은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말째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역대기2장에 일곱째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의문에는 성경적인 분명한 근거를 찾기 힘들므로 결국 상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자주 설명합니다. 아마도 다윗의 형 중 하나가 일찍 죽었을 것이고 죽은 형은 자손을 남기지 않아서 후대에 이름이 사라졌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 해석에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일단 사무엘상에 나오는 다윗의 형들의 이름과 역대기에 나오는 이름들을 비교해 보면 한 사람의 존재가 빠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에 등장하는 셋째 형 삼마의 이름이 역대기서에는 없고 오히려 셋째 아들을 시므아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둘은 이름이 약간 비슷하기도 하지만 분명히 다른 존재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들 모두 결혼하여 자손을 남겼는데 삼마는 요나단이라는 아들을 남겼고(삼하21:21) 시므아는 요나답이라는 아들을 남겼기 때문입니다(삼하13:3). 얼핏 두 아들들의 이름들도 비슷해 보이지만 요나단은 거인을 죽인 뛰어난 장군으로 나오고 요나답은 다윗의 아들 암논을 죄짓도록 인도한 간교한 모사꾼으로 나옵니다. 따라서 이 둘은 동일 인물로 등장한 것이 아닌 게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사무엘상에 나오는 셋째 형 삼마가 역대기서에서 빠졌다는 말인데 그렇다고 삼마가 자손을 남기지 않아서 이름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에게는 분명히 자손이 있었으니까요. 따라서 결국 우리는 다윗의 형들 중 삼마가 아무튼 이새 집안의 호적에서 사라졌다고 까지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일찍 죽어서 그랬는지 집안의 명예를 더럽혀서 그랬는지......, 아니면 단순히 역대기서를 쓴 사람이 자료를 잘못 수집했거나 혹은 잘못 인용했든지.

   하지만 이런 것들 때문에 성경이 오류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이전에도 이 "성서관련질문방"에서 답변 중에 자주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성경이 무오하다는 것은 숫자나 토시의 문제가 아니라 사상과 정신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뉴스라도 서로 다른 채널을 통해 나오는 내용이 조금씩 다르듯이 성경에도 그런 경우는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물론 세밀한 부분의 실수도 당연히 존재하고요.


▲ 그렇습니다. 성경은 이새의 아들이 7명인지 8명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는 명백한 오류를 안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몇몇 학자들의 설명을 들어봤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또한 완벽하다 하기는 어렵습니다.

▲ 따라서 이새의 아들의 숫자는 현재까지는 풀리지 않는 의문 중의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좀 더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



******************************************************************************************


(아래 글은 퍼온 글입니다. 나름대로 주장하고 있으나 동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참고로 한번 읽어볼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이새(다윗 왕의 아버지)는 몇 명의 아들을 두었는가?
             (How Many Sons Did Jesse (Father of King David) Have?)  
                               <Daryl E. Witmer>
               (출처 : http://www.creation.or.kr/library/ 성경과 기독교)


주장되는 성경의 모순

사무엘상 16:10,11절은 분명히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버지 이새(Jesse)가 적어도 8명의 아들을 두었고 그중 다윗은 여덟 째였음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역대상 2:13-15절에 이새는 일곱째로 다윗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 다 사무엘 앞을 지나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삼상 16:10,11)

”이새는 맏아들 엘리압과 둘째로 아비나답과 세째로 시므아와 네째로 느다넬과 다섯째로 랏대와 여섯째로 오셈과 일곱째로 다윗을 낳았으며” (대상 2:13-15)

어떤 본문이 맞는가? 이새는 실제로 몇 명의 아들을 두었는가? 그리고 만일 한 곳의 기록과 다른 곳의 기록이 서로 모순된다면, 성경은 신뢰할 수 있는 것인가?


합리적인 해결책

두 기록 모두 정확하다. 역대기 저자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이새의 아들 중 한 명은 다윗의 통치 동안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전에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역대상 2:13-15절에는 이새가 7명의 아들들을 두었다고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거기에는 단순히 (다윗을 포함하여) 그의 일곱 아들과 두 딸의 이름들이 거명되고 있다. (”Jesse was the father of Eliab his firstborn; the second son was Abinadab, the third Shimea, the fourth Nethanel, the fifth Raddai, the sixth Ozem and the seventh David.” - 1 Chronicles 2:13-15. NIV)

만약 이새의 아들들 중 한 명이 결혼 전에 일찍, 혹은 자녀가 없이, 아니면 특별히 주목할 만한 어떤 일을 하지 않고 죽었다면, 그의 이름이 역대상의 기록에서 누락된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자녀들만 거론되는 것은(공식 족보를 제외하고) 매우 흔한 관행이다.

여기 문제의 두 성경 구절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난제는 해결될 수 있고, 성경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데에 사용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정확 무오한 계시로서의 성경의 권위는 손상되지 않는다.

성경의 난제들을 다루는 적절한 원칙들

성경은 100% 신뢰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많은 수의 성경 구절들이 도전에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적어도 처음에는)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의’ 구절들은 오래 전에 제기되어서, 신중하게 고려되었고, 지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되었다. 새롭게 제기되어지는 난제들은 없다. 문제가 있어 보이는 성경 본문들을 다룰 때에, 명심해야 할 몇 가지 원칙들이 있다 :

▶ 성경에서 난해한 문제를 만날 때에 우리는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한다. 하나는 성경에 설명하기 어려운 약간의 본문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는 전제를 선택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성경은 여전히 많은 진리를 내포하고 있지만, 성경은 오류투성이라는 전제를 선택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선입관은 자주 결정적임이 입증되고 있다.  

▶ 만일 우리가 전제로서 성경은 사소하지만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성경은 자동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잃어버리게 된다. 만일 성경이(역사와 과학의 문제에 관하여서까지도) 100% 정확하지 않다면, 그때는 100% 의심될 수밖에 없다. 성경이 무오하지 않다면, 성경은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고, 성경에 오류가 있다면, 성경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뢰될 수 없다.

▶ 성경은 확실히 100%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으며, 권위가 있음을 스스로 표명하고 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 예수님은 일관되게 모든 성경은 신뢰할 수 있고 권위를 가지는 것으로 말씀하셨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 5:18)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눅 16:17)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요 10:35)

▶ 구절의 문맥과 역사적인 단어들의 용법은 많은 성경의 모순처럼 보이는 구절들을 푸는 데에 관건이다.

▶ 필사 오류와 전달상의 실수들은 성경의 오류를 의미하지 않는다. 필사자들의 여러 오류들은 확인되어져왔고, 분류되어졌고, 합리적으로 설명되어져 왔다. 이러한 것들이 원본(성경)의 오류로서 주장되어질 수는 없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1 [목자상] 02. ‘목사’ 직분의 개관(Ⅰ) 정순태 2009-10-24 943
120 [단상] 믿어지십니까? [2] 정순태 2009-10-17 899
119 [묵상] 정말 미련한 십자가의 도 정순태 2009-10-09 992
118 [서평] '내 안에 심겨진 가시나무'를 읽고(원의숙 집사) 정순태 2009-09-26 988
117 [묵상] 하나님의 진짜 마음은? [3] 정순태 2009-09-19 1218
116 [묵상] 교회는 목사만큼 큰다? [2] 정순태 2009-09-12 1088
115 [펌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엿장수 가위 정순태 2009-09-05 1001
114 [단상] 거지 강냉이 - 대박인가 쪽박인가! 정순태 2009-08-29 1028
113 [묵상] 목사 예복(예배복) Ⅱ [3] 정순태 2009-08-15 1537
112 [묵상] 난 항상 하나님 편이다! 정순태 2009-08-08 1031
111 [단상] 이게 정당한 요구였다고요? 정순태 2009-07-31 968
110 [묵상]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 정순태 2009-07-24 1077
109 [묵상] 보낼만한 자 [1] 정순태 2009-07-18 1096
108 [단상] 헤아려 알지 못함. 정순태 2009-07-10 804
107 [묵상] 그루터기 소망 정순태 2009-07-04 1669
» [이의] 이새의 아들은 7명인가 8명인가? 정순태 2009-06-27 8273
105 [이의]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 데라는 살아 있었는가? [6] 정순태 2009-06-27 4135
104 [목자상] 01. 시작의 변(辯) - 듣기 좋은 꽃노래도… [2] 정순태 2008-12-27 1311
103 [단상] 역설(逆說)의 소망 정순태 2008-12-20 1203
102 [단상] 그런 부흥은 없다! [3] 정순태 2008-12-13 1318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