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글은 약 10여 년 전, 어느 교회에서 상담실장을 맡으면서 상담요원으로 지정된 형제자매들에게 보냈던 것입니다. 호기롭게 시작은 하였으나 △△목회라는 새로운 교회정치체제가 겨우 1년 6개월만에 중단되는 바람에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옛 일을 떠올려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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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풍성하신 은혜로 말미암아 말할 수 없는 선물 주시고, 나아가 거룩하신 사업에 동역할 수 있는 기회 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마다 느끼는 것입니다만, 우리가 구원얻고 주의 백성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고 이해되지 않는 신비입니다.
우리의 행적을 생각하면 언제나 부끄럽고 모자라는 것들뿐인데, 주님은 이런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우리의 지식과 이성으로 아무리 연구한다 한들, 주님의 한 부분도 알 수 없기에, 우리는 비록 이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님의 말씀을 믿으며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인도임을 확신하는 △△목회를 통해, 이제 또 다시 우리를 상담요원이라는 엄청난 직임(職任)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의 구원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상담에 대하여 무엇을 알겠습니까? 우리 중 일부 성도님들은 세상에서 소위 상담학이라는 학문을 전공하신 분들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어쩌면 주님 안에서의 상담에서는 세상적 상담공부가 별 효용이 없을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세상적인 인간학/심리학/정신의학/상담학 이론만으로는 성도님들의 필요를 채워드리지 못할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이론이 주장하는 바가 맞는다면 현재 우리 주위에 심리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수효가 지금보다는 훨씬 많이 줄어들어야 합니다. 사실 세상적인 상담의 성공률은 우리 기대 이하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으로 창조하신 인간은 놀랍게도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바로 이 사실에서 인간 이해의 출발점을 찾아야 하기에, 세상의 상담이론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 기본적인 제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 안에서의 상담은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해야 할 성질이 아닐까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여하튼 주님 안에서 상담요원으로 부르심 받은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기억하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일종의 성경적 상담관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성경을 벗어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야 합니다. 성도님들이 겪고 계시는 어려움은, 비록 그 겉보기가 세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영의 문제임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세상학문과 철학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의식은 세상 이론에 맞도록 세뇌되어 있기 때문에, 어쩌면 세상이론으로 치유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론으로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영의 질병은 영으로 치유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상담에 임함에 있어 성경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첫 번째 수칙으로 삼읍시다. 나머지 수칙들은 이 제1수칙에 부속되는 것임을 미리 밝힙니다.
다음은, 우리는 상담한다는 자세를 버려야 할 것입니다. 내가 무엇인가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성도님들이 원하는 상담문제들을 해소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요소들과 마찬가지로 상담문제도 주님께 의지한다는 원칙을 지켜야만 할 것입니다.
상담이라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상담자와 함께 아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상담자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동의해 주고, 울어 주고, 기도하는 것이 성경적 상담의 모든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주의할 사항은 성급한 위로나 해결책을 제시하려 애쓰지 말자는 것입니다. 사실 한 사람의 아픔은 그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이해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또한 말이나 글로써 표현되는 문제가 실질적인 아픔 그 자체를 설명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위로는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면서 함께 고통하며 기도하는 것을 두 번째 수칙으로 삼으십시다.
그리고, 상담요원으로 부르신 주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자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확실히 한다면 아마 이 사역에 임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당신의 목숨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성경의 핵심 원리는, 무엇을 내게로 끌어들이는 ‘내부지향적 구심원리’ 보다, 내게 있는 것을 다른 이에게 나누어주는 ‘외부지향적 원심원리’에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소위 아브라함의 복의 통로원리이지요).
솔직히 상담요원으로 부르심 받은 우리들은 ‘가진 자들’일는지도 모릅니다. 건강과 지식과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과 그리고 믿음까지 말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주님이 내게 주신 선물들임을 우리는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주신 선한 것들을 주님이 사랑하시는 지체들에게 돌려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질 때라야 상담사역이 어쩔 수 없는 부가적 부담으로 변질되지 않을 것입니다.
내게 풍성히 주신 주님 은혜를 감사하면서 맡기신 달란트를 기쁨으로 선용하겠다는 것을 세 번째 수칙으로 삼으십시다.
마지막으로, 상담에 임함에 있어 조급한 마음을 갖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두 번의 상담으로 해결될 문제라면 아마도 우리에게까지 상담요청이 들어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상담을 요청받는다는 것은 이미 쉽게(인간적/세상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결코 단시간에 혹은 단번에 해결될 성질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아울러 상담이란 개인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일 수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상담내용 비밀유지의 근거입니다).
따라서 어쩌면 상담요청을 한다는 것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라고 보아도 잘못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듣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라는 의미입니다.
문제해결의 열쇠는 언제나 주님이 가지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주님이 허락하시는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슬기를 지니겠다는 것을 네 번째 수칙으로 삼으십시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를 짚어볼 수 있겠습니다만, 우선 급한 대로 네 가지 사항만 나누었습니다.
이 상담사역은 어느 한 개인이 주도할 성질의 사역이 아니기 때문에 부름받은 상담요원 모두의 헌신이 요구되는 사안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 나누어야 할 귀중한 원리들을 더 깊이 생각해 보고, 깨우쳐 주실 때마다 함께 나누는 관계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이 상담실 운영이 제대로 정착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요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상담이란 상담자의 요청이 있을 때라야 성립되는 수동적 성향이 강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자신의 고민과 치부를 쉽게 드러낼 지체들이 있을는지 걱정도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상담요원은 △△목회 제2기까지 계속되었으면 합니다. 때가 되면 공동당회에 건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쓰여질 때까지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상담실적 여부에 무관하게 이 상담실을 계속 운영할 것이며, 자체 계획에 따라 상담기술 향상을 위한 노력도 계속할 생각입니다.
금년은 준비기간의 촉박으로 계획다운 계획을 수립할 수 없었습니다만, 차기에는 보다 내실있는 계획이 마련되도록 함께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금년에는 우선 △△△ 전도사님께서 상당기술에 대한 준비를 하셔서 한두번 정도 자체 세미나를 실시하도록 하고, 명년부터는 가능하면 외부 강사를 초청할 수 있도록 해 보겠습니다.
모든 상담요원들께서는 상담업무 발전을 위한 건설적인 방향을 시기에 구애받지 말고 제시해 주시기 바라며, 특히 금년 9월말까지는 명년도 상담사역에 반영해야 할 사항(의견)을 의무적으로 제출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첨부된 상담실 운영지침을 숙독하신 후, 자주적으로 활동해 주시고, 혹 상담을 위한 예산이 소요될 경우, 선집행하시고 사후청구토록 해주십시오. 금년에는 최소한의 예산만 반영했습니다만, 필요한 경우 증액 건의하겠습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만, 주님은 우리의 능력을 보고 쓰시지 않으십니다. 단지 우리의 믿음을 보고 쓰실 뿐입니다.
주님의 사용여부는 우리 내부가 우리 것으로 얼마나 차 있느냐에 따른 것이 아니고, 우리 것이 얼마나 비어있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즉 주님을 향한 우리의 의뢰도(依賴度)에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의 특징 중의 한 가지는 ‘근원’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그분은 복을 직접 누리기도 했으나, 후대에 미치게 한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강조하신 ‘섬기는 자의 복’ 다시 말해 ‘진정한 복’인 것입니다(빛과 소금의 영적 의미의 하나입니다).
우리 다 같이 심령이 가난한 자 되어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자 되기를 소망하면서, 이 사역을 감당하는 복을 누리십시다. 실상 상담요원으로 부름 받음은 곧 진정한 복을 받은 것으로서 참으로 감사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주님의 주권이 강하게 역사하는 상담실이 되고, 동역자 형제님 자매님들의 믿음이 더욱 굳건해 지기를 기도드립니다. 주님께서 늘 함께 하십니다! 샬롬!
세상 그 어떤 사람일지라도 죄사함의 은총을 입지 않는다면 그 심령은 교회에 출석한다할지라도 아픔이요 슬픔일 뿐, 그 터엉 비어진 공간에 오직 십자가를 대신 지신 예수님께서 생명되어져야함을, 어떤 지식도 어떤 공로도 어떤 지위도 구원으로 이끌 수 없음을,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 진리만이 지속 전해져야함을 다시한번 생각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