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앞서 살핀 성경 읽는 방법(통독, 정독, 성독)에 대한 동의 또는 부동의의 반응이 예견됩니다. 당연한 귀결일 것입니다.
부동의 하는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이런 반응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거 참, 희한하게 읽는다. 그냥 쉽게 읽으면 될 걸 가지고 뭘 그렇게 미주알고주알 따지나? 믿음을 굳게 하고 은혜만 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 개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꼭 그 짝이구먼. 성경에서 잘못된 것만 찾으려고 눈이 벌게서 설치네. 별 시덥잖게시리!’
그러나 이 꾸중은 심히 은혜로움(?)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오류를 내재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독자층에 대한 오해가 바로 그것입니다.
성경독자는 누가 뭐래도 1차적으로 믿는 자들(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받은 이스라엘에게 주셨고(구약) 보혈로 구원 얻은 성도들에게 주셨기(신약)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1차적 수신인은 성도가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독자는 믿지 않는 자들(불신자)들도 포함됩니다! 만약 불신자들이 성경을 읽지 못하게 된다면 더 이상 전도(傳道)는 불가능합니다. 불신자가 성경을 읽어야 믿음의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2차적 수신인은 불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결국 성경은 성도와 불신자 모두 즉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약속인 것입니다.
우리는 불신자들이 성경을 결코 읽지 않는다고 여기지만 착각입니다. 불신자 중에는 성경을 성도들보다 훨씬 많이 그리고 세밀하게 읽는 이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거기서 찾아낸 이해곤란의 부분들을 이용하여 기독교를 공격하는데 사용하기 일쑤입니다.
불신자 또는 정통 신앙에 반하는 자유주의자 내지 혼합주의자들이 성경을 얼마나 주의 깊게 읽는가에 대하여 아주 간략히 몇 건만 소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티모시 프리크와 피터 갠디가 공동저술한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승영조 씨가 번역하고 동아일보사가 출판하려 했으나(2002년) 기독교계의 강력한 반발로 취소된 바가 있었습니다. 책 내용의 진위와 무관하게 그 책에는 광범위한 성경지식이 담겨져 있습니다. 성경 한 번 안 읽고 쓴 책이 아닙니다.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그 책의 저자들은 불신자이지만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 이들’입니다.
※ 박 명룡 목사가 이 책에 대해 반박서를 내었습니다. “예수는 신화가 아니다.”(도서출판 누가). 읽어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인터넷에는 “X-Bible[바이블의 진실/이상훈 편저]”이라는 문서가 나돌고 있습니다. 상업적 용도가 아닌 한 무단 배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400여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자료입니다. 여기서도 성경에 대한 두드러진 지식의 위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습니다. ‘그 글의 편저자는 불신자이지만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 분’입니다.
○ 성철 스님은 생전에 성경을 수시로 탐독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별달리 알려진 바가 없기에 더 이상의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으나 ‘성철 스님은 불교도이지만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 한양대 교수 민희식 씨가 지은 “법화경과 신약성서”(불일출판사 발행)라는 책이 있습니다. 불교학자인데 ‘신약성서가 법화경을 모방하여 작성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민 교수는 불교도이지만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 분’입니다.
○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에서 비교종교학 교수로 재직중인 오강남 박사는 “기독교 뒤집어 읽기 예수는 없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스스로 기독교인이라 자처하지만 종교다원주의자입니다. ‘오 박사는 다원주의자이지만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 분’입니다.
※ 박신 목사가 이 책에 대한 반박서를 내었습니다. “기독교를 뒤집어 읽어도 그런 예수는 없다.”(나됨). 읽어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 미국 뉴욕 소재 자유주의 신학교 유니언 신학대 종신교수인 정현경 씨는,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조직신학 교수를 역임했고, 1991년 호주 캔버라 WCC 제7차 총회에서 초혼제를 공연했으며, 동성애 옹호 강연에 열 올리고 있고, 2013년 부산 WCC 제10차 총회에서 ‘이슬람 순례 여행기’를 발표할 예정이라 합니다. ‘정 교수는 철저한 세계종교통합주의자이지만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 분’입니다.
○ 채플 힐의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종교학부 학장인 바트 어만(Bart Ehrman) 교수는 “성경왜곡의 역사” “예수왜곡의 역사” “잃어버린 기독교의 비밀”등 센세이셔널한 책을 많이 저술했습니다. 스스로 ‘불가지론자’라 밝히고 있습니다. ‘바트 어만 교수는 불가지론자이지만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 분’입니다.
○ 독특한 강의 형식으로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도올 김용옥 교수는 천재답게 많은 서적을 저술하고 있는데 “기독교 성서의 이해” “요한복음 강해” 등 기독교 관련 책들도 심심치 않게 발간합니다. 신학까지 공부한 자칭 기독교인입니다만 종교다원주의자입니다. ‘김 교수는 다원주의자이지만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 분’입니다.
※ 박 명룡 목사가 김용옥 교수에 대한 반박서를 내었습니다. “누가 참 하나님인가? 김용옥의 하나님 VS 성경의 하나님”(도서출판 누가). 읽어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소개드린 위의 몇 분들은 불신자 또는 자유주의자 내지 종교혼합주의자들로서 성경을 바르게 믿는 성도들이 수용할 수 없는 사상의 소유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성경지식은 성도들이 발 벗고 따라가도 못 따라갈 수준입니다.
이제 이런 분들이 맘먹고 기독교를 공격합니다(위의 책들).
어찌해야 합니까? 응당 기독교인 중에서 보다 책임있는 이들(신학자 및 목회자들)이 나서서 방어해야 합니다. 위에서 소개드린 박명룡 목사나 박신 목사 같은 분들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흔치 않습니다. 거의 대다수의 전문가들(신학자 및 목회자들)은 묵묵부답입니다. 저들이 공격하거나 말거나, 저들의 공격 때문에 연약한 일반성도들이 혼란스러워하거나 말거나,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교인수 늘이고 교회당 크게 짓고 수입 배가시키고 이름 내는 데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울 뿐입니다.
물론 다수 전문가들(신학자 및 목회자들)이 섣불리 나서지 않는 것은 잘 하는 일입니다. 기독교와 성경을 반대하는 이들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 준비 없이 대결했다가는 비참하게 깨집니다. 저들의 논리를 당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증명됩니다. 2가지만 간략히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다윈의 진화론 절대 지지자였던 영국의 생물학자 토마스 헉슬리와 새무얼 윌버포스 대주교 간의 소위 ‘진화론 대 기독교 논쟁’(대학논쟁이라고도 함)입니다. 윌버포스가 그로기 상태로 완전 ‘KO패’ 당했습니다.
다음 1925년경 미국 테네시 주에서 발생한 소위 ‘원숭이 재판’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생물교사 존 스콥스가 주 정부의 금지지시를 어기고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죄목으로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주 정부 변호인으로는 근본주의 기독교 장로이자 변호사인 윌리엄 브라이언이 선임되었고 스콥스 변호인으로는 역시 변호사인 클라렌스 대로우가 선임되었습니다. 온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 재판에서 기독교측 변호인 브라이언은 진화론측 변호인 대로우에게 완패 당했습니다. 그 충격으로 브라이언은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KO패’ 정도가 아니라 ‘사망패(死亡敗)’입니다.
이 두 번의 대결은 기독교를 매우 심하게 위축시키는 동인으로 작용하였습니다.
불신자 내지 기독교 반대자들은 그냥 허투루 공격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에 대해 연구 많이 합니다. 당연히 성경을 읽고 성경에 근거할 때라야 설득력을 지닐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저들은 성경을 ‘정독’합니다. 아주 꼼꼼하고 세밀하게 읽습니다.
그렇다면 저들과 대면해야 하는 성도들은 어찌해야 합니까? 저들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자세히 그리고 정확하게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저들과의 논쟁에 임할 수 있습니다.
서두에서 예견했던 부동의 반응(은혜로운 꾸중이지만 실제는 어정쩡한 성경읽기 옹호)으로는 대응할 도리가 없습니다.
앞글에서 통독은 의미도 모른 체 무작정 읽기가 쉽고, 성독은 신비하게 열어주시기만 기다리는 수동적 독법이 될 가능성과 자칫 신비주의에 함몰될 위험성도 있음을 살폈었습니다. 두 가지 독법만으로는 충분치 못합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정독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라야 백전불태(百戰不殆)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정독이 성도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성경 읽는 방법임을 다시 인정해야 합니다!
끝으로 베드로 사도의 권면을 상기하며 마치겠습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3:15).
‘우리 신앙의 요점에 대해 묻는 자에게 대답할 수 있도록 항상 예비’하기 위해서라도 성경을 정독하는 슬기를 견지해야 할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게을러서 그렇게 방대하게 참고 서적은 인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 생각의 검정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