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요령 부족
정확한 표현인지 모르겠으나, 교회 내에서만 활동하는 이들을 전임사역자, 교회 밖에서 생활하는 이들을 일반성도(평신도를 대체하는 용어)로 구분하고들 있습니다.
전임사역자들이야 교회 안에서만 생활하기에 ‘거룩’을 빙자하기가 비교적 쉽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일반성도들은 생각과 행동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세상살이가 쉽다면야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기에, 일반성도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합니다. 힘들다 하소연할 수도 없고 쉼도 없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무한경쟁에 임해야 합니다.
교회 다닌다는 이유로 적당히 살 수는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피 터지게 경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배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요령’으로는 견뎌낼 재간이 없습니다. 보다 현실적인 처세가 요구됩니다. 정정당당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 자체가 미덕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어떤 수단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상대방을 이겨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주위에서 믿음 좋다는 장로들 안수집사들 권사들 교인들을 많이 봅니다. 교회 안에서의 이들의 지위는 막강합니다. ‘위대한 믿음의 전사들’입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보면 이 믿음의 전사들 또한 보통 세상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똑같은 목표를 위해 똑같은 방식으로 투쟁하며 처절한 경쟁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러지 않으면 무조건 도태되므로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그러니 교회에서 배운 ‘삶의 요령’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공연한 공염불입니다.
지난번 “[단상] 유혹은 이길 수 있어도 미련은 떨치기 힘들다?”의 주인공 A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언젠가 희한한 그의 근무 자세를 듣고는 ‘A야말로 한심스러운 사회인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삶의 요령과 차이가 났기 때문입니다.
승진 탈락 이후 자리를 옮겨 앉으면서 그는 이전의 실패와 좌절을 반복하기 싫어서, 인생관을 바꾸고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기로 작정하였다 합니다.
그러면서 우선 인생관(좌우명)부터 새롭게 확립하였다 합니다.
◉ 부앙불괴(俯仰不愧) : 孟子의 人生三樂 중 제2락을 차용하여 부앙불괴(俯仰不愧)라는 말로 줄여서 인생관 첫 번째 항목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仰不愧於天 俯不炸於人 二樂也 <하늘과 땅에게 부끄러워할 일이 없는 것>.
◉ 원추지심(鴛雛之心) : 장자(莊子)의 고고하기 이를 데 없는 당당한 삶의 자세를 원추지심(鴛雛之心)이라는 말로 줄여서 인생관 두 번째 항목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 夫鴛雛 發於南海而 飛於北海 非梧桐不止 非練實不食 非醴泉不飮 於是 鴟得腐鼠 鴛雛過之 仰而視之曰 嘛.
<鳳이 있어 남해에서 북해로 날을 때,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대나무(교련)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신선한 샘물이 아니면 마시지도 않는다. 이때 썩은 쥐를 물고 가는 솔개는 하늘 높이 날고 있는 그 새를 쳐다보며 빼앗길까 ‘으흥’하고 성낸 소리를 한다.>
◉ 부운지심(浮雲之心) : 공자(論語 述而篇)의 탈속한 인생의 맛을 부운지심(浮雲之心)라는 말로 줄여서 인생관 세 번째 항목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 飯疎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나물밥 먹고 맹물 마시며 팔을 굽혀 베고 자도 즐거움이 또한 그 속에 있다. 옳지 못한 부나 귀는 내게 있어서 뜬구름과 같다>.
이처럼 재확립한 인생관에 근거하여 향후 공직생활에서 준수할 3대 근무수칙을 세웠고 현직에서 퇴직할 때까지 실천하려 애썼다고 합니다.
◉ 첫째, 부앙불괴(附仰不愧)입니다. ‘부끄러운 짓 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세 가지 주요 인생관을 대표하는 부앙불괴를 첫 번째 수칙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 여겼습니다.
◉ 둘째, 견리사의(見利思義)입니다. ‘이득에 접하면 의를 생각하는 삶’의 뜻입니다. 가장 실천하기 까다로운 항목일 것입니다. 원추지심(鴛雛之心)과 부운지심(浮雲之心)을 반영한 수칙입니다.
◉ 셋째, 조직우선(組織優先)입니다. ‘현재 근무하는 조직에 득이 되는 삶을 살자.’는 뜻입니다. 부앙불괴 및 견리사의만으로 판단 곤란할 경우에 적용할 원칙입니다.
거창한 인생관과 근무수칙과 다짐만으로 만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완벽하게 실천할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시도 때도 없이 다가오는 ‘욕심’ 때문에 힘들더랍니다. 그 유혹은 끈질겼고 또 거절하기도 쉽지 않았다 합니다.
그러나 노력했다 합니다.
아래는, 주도적 삶을 살기 위해 애썼던, 근무수칙과 관련된 몇몇 사례들이라고 합니다.
◉ 『원치 않은 은갈치를 비싸게 먹다.』
이권관계에 있던 어느 회사의 사장이, 자기 회사의 이득을 보장해 달라는 취지로, 백화점에서 택배로 제주도산 은갈치 한 상자를 보내왔더랍니다.
돌려줄 방법이 없어서 일단 고기는 맛있게 먹고 그 다음날 15만원을 회사계좌로 송금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두 번 다시 뇌물 공세를 펴지 않더랍니다.
또 한번은 업체실사를 나갔는데 봉투에 차비를 넣어서 주기에 한사코 거절하자 승용차 안으로 던져 넣더랍니다. 정중히 다시 돌려주고 떠났고 그 이후 회사는 관련 업무에 최선을 다하였다 합니다.
◉ 『내 집에 뭔가를 들고 오는 사람은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다!』
이전 시절에는 여유가 전혀 없었기에 아이들을 마음껏 먹이지 못했다고 합니다. 과일 몇 개, 고기 반 근 정도 사서 먹이는 게 고작이었답니다.
한번은 상급자의 승진 축하연이 있었는데 각자에게 만들 음식이 할당되었고 그의 아내에게는 갈비찜이 맡겨졌다고 합니다. 준비하는 동안 아이들은 생전 처음 갈비를 배부르게 먹을 기대로 군침 삼키더랍니다.
그의 아내는 ‘높은 사람 것’이라며 한 조각도 주지 않고 국물에 밥만 말아 먹이고는 몽땅 싸들고 상관 집으로 갔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전해 듣고 느꼈던 감정은 지금도 알싸하기만 하다며 울적해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다짐했다고 합니다.
“하급자들은 약자이다. 상관에게 잘 보여야 근무평가를 잘 받고 상훈을 비롯한 여러 혜택에서 유리해진다. ‘인간관계’라는 말로 미화되는 현상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관이 하급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것은 옳지 않다. 나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
그런데 간혹 과일 등을 들고 집에 오는 이들이 있더랍니다. 그가 있었다면 그대로 돌려보냈겠지만 그의 아내는 무심코 받아 놓았답니다.
퇴근 후 아내를 많이 나무랐다고 합니다. 이전 시절의 애환을 되새기며 말입니다.
다음날 얼마의 돈을 봉투에 넣어 하급자에게 돌려주었답니다.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지난번 빌린 돈을 깜빡했다. 잘 썼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소속직원들을 교육했다고 합니다.
“뭔가 들고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 값보다 더 돌려주어 손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지 말라. 나는 오직 맡은 직무를 완수하는 사람을 좋아하며, 그런 사람은 반드시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겠다.”
심성이 바른 하급자들은 잘 이해하고 따라 주었다며 흐뭇해하였습니다.
◉ 『겁 없이 높은 사람 뜻을 거스르다.』
외부인(어느 거래업체 사장)이 무리한 요구를 해 왔답니다. 규정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자신의 이득을 보장해 달라는 민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완강하게 ‘불가’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사장이 불러서 “어찌 안 되겠느냐?”고 묻더랍니다. 그래도 그는 “안 된다.”고 했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업체 사장이 미리 부탁을 했고 자기 사장은 ‘그러마.’라고 이미 내락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 상황에서 담당실무책임자가 옹고집으로 3번씩이나 ‘불가’ 결정을 내렸던 것입니다.
사장의 암묵적 승인사항을 ‘규정’을 내세워 부결시킨 당시 상황이 얼마나 묘했겠습니까?
몇 개월 후 기관요원이 말하더랍니다. “○○님, 그 때 일 처리 잘했습니다.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젠장! 미리 말해주면 어디 덧나나? 아무 것도 모르고 지뢰밭을 지나왔군!” 혼자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겁이 없었던 것인지 앞뒤가 막혔던 것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그러나 후회는 없다며 씁쓸해 하던 모습이 눈에 어립니다.
◉ 『조직을 바꾸는 한이 있어도 내 판단을 바꿀 수는 없다.』
한번은 직속상사가 업무 원리에 저촉되는 계획을 요구하더랍니다. 해당 업무 소관책임자로서 고성도 불사할 정도로 격하게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본받을만한 신사였던 상사는 도저히 설득이 안 되자 사정하더랍니다. “여보게. 나는 꼭 이 일을 진행시켜야겠네. 정 동의하지 않겠다면 내가 자네 예하의 조직을 바꾸어 줄 테니 더 이상 반대하지 말게.”
6년 간 업무를 수행해 온 전문가로서 동의하기 싫었으나, 전형적인 계급사회에 근무하는 자로서, 더 이상의 반대는 힘에 겨웠답니다. 그리하여 과(課) 단위의 예속을 바꾸는 선에서 끝냈다고 합니다.
“돌출행동 같고 생소하겠지만 업무담당자로서 긍지를 지키고 싶었다.”고 합니다.
◉ 『원칙에서 어긋나는 진급은 안 돼!』
소숙원 승진심사 위원의 임무를 몇 번 수행했다고 합니다.
한번은 함께 근무했던 사람의 경우였답니다. 승진후보자는 유능했고 승급평가 서열이 상위였다고 합니다.
그에게도 부탁이 들어오더랍니다. 걱정 말라고 했답니다. 승진후보자의 능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답니다.
위원으로 참여하여 처음에는 그를 지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심사 과정에서 ‘규정에 어긋난 청탁행위’가 밝혀졌답니다. 즉각 추천 동의를 철회하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결국 낙선되어 마음이 쓰라렸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또 한번은 당시 막강권력자의 친척이었답니다. 선발하자는 의견에 적극 동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상자의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온갖 논란 끝에 낙선으로 결정되었다 합니다.
문제는 권력자의 의도를 함부로 거역하면 심히 곤란하다는 점입니다. 후일 ‘상당한 불이익으로 돌아온 것 같다.’는 의구심으로 속상해 하였습니다.
어찌되었든 다시 재연되어도 역시 동일하게 행동할 것이라 강조했습니다.
이와 같은 몇 가지 경험담을 들으면서 “기독교인이 세상 살기가 절대 만만치 않구나.”하는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단상] 그리스도인으로 세상 살아가기(Ⅰ) 은 예전에 올렸던 "유혹은 이길 수 있어도 미련은 떨치기 힘들다?" 입니다. 앞으로 5회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글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가져봅니다. 감사히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