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지난 후에 밀려오는 이 아쉬움은?
첫 번째 글(유혹은 이길 수 있어도 미련은 떨치기 힘들다?)에서 ‘진급에의 갈망’을 이야기했었습니다만, 그 실망감은 아무리 해도 잊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조직 내 진급과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서는 끝내 함구하였으나, “‘쪽 팔린다!’는 속된 표현을 온 몸으로 체득할 수밖에 없었다.”며 몹시 부끄러워했습니다.
직장생활을 계속하였으나 주위 모든 사람들의 눈총이 그렇게 부담스럽더랍니다.
거기에다 건강문제도 겹치고, 급기야 상사(上司)의 치졸하고 비열하기 짝이 없는 불법적인 압력까지 가해지는 상황에 이르자, 결국 조기 명예퇴직을 택하였다 합니다.
퇴직 이후에 지난날의 삶을 잠시 뒤돌아보니 만족보다는 아쉬움이 더 많더랍니다.
“나처럼 살아서야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는 회의가 생겼고,
“누가 원칙이나 양심 따위를 떠벌이는 칠푼이를 감싸주겠느냐?”는 각성도 있었으며,
“세상이 그토록 어수룩하냐?”는 반성도 되더랍니다.
특히 하급직원들에게 엉터리 처세술을 전해준 것이 마음에 걸리더랍니다.
언필칭 세상은 더불어 사는 곳인데 ‘왜 남들처럼 영악한 사고방식으로 살지 못했는가?’ 자괴감이 들기도 하더랍니다.
그러면서 “누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뭐라 대답할까?”라며 곤혹스러워하였습니다.
“당신은 똑똑하거나 유능한 사람인가?”
“당신은 출세했거나 권력이 있는 사람인가?”
“당신은 명예가 있거나 부유한 사람인가?”
“당신은 업적이나 자랑거리가 있거나 뭐라도 내세울 게 있는 사람인가?”
답변할 근거가 없고 말문 열기도 민망할 지경이니 이런 답변 밖에 못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요! 위의 어느 항목도 제게 해당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면서 ‘자조적이겠지만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라도 덧붙이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순수’하게 살고 싶어 했던 사람이기는 합니다.”
‘순수하게 살고 싶었다.’는 마지막 소감이 마음에 와 닫기에 A의 말을 조금 더 들어봤습니다.
“만약 나에게 삶의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다른 사람들이야 ‘어리석다’며 비아냥거릴지라도 금생(今生)처럼 아니 좀 더 철저히 살고 싶다.”
“남의 시선과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 세운 인생관(좌우명)을 즐거이 따르는 인생을 다시 살아보고 싶다. 자기 인생은 오롯이 자기 자신의 몫이기에 후회하지 않을 그런 삶을 말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눈을 감을 때 이런 고백을 남기며 떠나고 싶다.”
“나는 추한 삶을 살지는 않았노라!”고
“나는 부끄러운 삶을 살지는 않았노라!!”고
“나는 당당한 삶을 살아 왔노라!!!”고………
긴 시간 A의 경험담을 듣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의문은 이것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과연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아마도 영원히 풀리지 않는 딜레마가 아닐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