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빛과 소금

조회 수 1519 추천 수 93 2007.03.03 01:19:39
주님께서는 믿는 자들을 ‘세상의 빛과 소금’(마5:13-14)이라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이 말씀의 의미 일부를 풀어주셨지만, 말씀은 언제나 깊고 넓은 진리를 내포하고 있기에, 한 가지에 얽매여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빛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생명과 직결되는 귀중한 가치를 지닙니다. 그러나 빛의 일차적 소임은 어둠을 밝히는 것입니다. 만약 어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빛의 가치는 엄청나게 줄어들 것입니다. 우리는 등불을 밝혀 물동이나 상 아래 두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어둠이 밝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금도 그 자체로서 귀중한 가치를 지님은 물론입니다. 맛을 내는 데 필수적입니다. 아울러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만약 소금이 없으면 맛을 낼 수도, 부패를 방지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빛의 상대는 어둠이며, 소금의 상대는 부패입니다. 그런데 빛과 소금의 진가가 발휘되기 위해서는 어둠과 부패가 존재해야 합니다. 이 ‘상대의 개념’에서 빛의 사명인 ‘어둠 밝힘’과 소금의 사명인 ‘부패방지’는 의미를 지닐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교훈은 세상 사람들도 다 아는 일반적인 내용이고 또 주님께서 직접 풀어주신 범위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빛과 소금의 비유에는 그 이상의 교훈이 더 담겨있습니다. 만약 위와 같은 교훈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보다 큰 교훈을 잃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깊이 감추어진 교훈을 빛과 소금 자체의 관찰에서 찾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빛과 소금이 자신의 소명(어둠 추방 및 부패 방지)에 충실했을 때의 정황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빛과 소금은 자신이 소모되지 않으면 사명을 완수할 수 없습니다!

빛은 자신이 타들어가서 소멸되어야 합니다. 소금도 자신이 녹아서 없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어둠이 밝혀지고 부패가 방지됩니다. 빛과 소금 자신은 완전히 없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늘 어둠을 밝히고 부패를 방지한 공로를 생각하곤 합니다. 업적을 내어 놓고 보란 듯이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공적이 세상에 드러났을 시점에, 빛과 소금은 존재 자체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바로 이 점입니다. 빛과 소금은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결코 자신이 누리지 않습니다. 아니, 누리지 못합니다. 그 효과는 오로지 상대가 얻을 뿐입니다. ‘내 것을 가지고 상대가 덕 본다’는 것은 세상원리가 아니라 하늘의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빛과 소금은 하늘나라의 현상을 설명하는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목숨을 포기하심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주님의 손해가 성도의 이익으로 변한 것입니다.

이제 성도는 어찌해야 할까요?

세상 사람들은 늘 풍성한 보상심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능력이 있고 성공하고 출세하고 인정받고 자존감 누리는, 그런 존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덕은 누가 봅니까? 자기 자신이 봐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생각입니다.

성도들도 비슷한 꿈을 꿉니다. 입만 열면, 비전/부흥/영광/거룩 등의 용어를 남발하면서 김치 국물부터 마시곤 합니다.

이러한 잘못된 기대는 급기야, “목사가 되었으니 존경받아야 하고, 장로가 되었으니 권세 누려야 하고, 성도가 되었으니 인정받아야 한다.”는 당찬 오해에 도달하고 맙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빛과 소금의 원리와 정반대되는 비진리입니다. 손해보는 것이 하나도 없는, 세상적인 욕심일 뿐입니다.

목사가 되었다면 푸대접받을 각오해야 합니다. 장로가 되었다면 쉬지도 못할 각오해야 합니다. 성도가 되었다면 온갖 비웃음 당할 각오해야 합니다. 주님을 제대로 믿는다면 온통 손해 볼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인정해야만 합니다.

빛과 소금처럼, 목사/장로/성도 자체가 없어져 사라지는 상황이 될 때, 그 때라야 비로소 세상 사람들은 목사/장로/성도의 덕으로 구원을 소개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선포하신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라는 말씀은 전형적인 직유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너희 믿음의 덕을 불신자들이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너희는 그냥 사라져 주어야겠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이 주님의 속내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을 믿음의 성숙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평신도들은, 주변에 이처럼 성숙된 지도자들이 많아져서, 하루하루 참 길로 잘 안내해 주기를 고대하며 신앙생활 하고 있는 것입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141 [단상] 골프와 방언 은사 [1] 정순태 2007-11-24 1582
140 [단상] 어느 목사의 신앙칼럼과 소감 [1] 정순태 2007-09-29 1568
139 [단상] 사두마차와 근위병 정순태 2008-05-17 1562
138 [서평] 언제부터 부자가 천국가기 더 쉬워졌는지? [3] 정순태 2008-09-13 1561
137 [단상] 짝사랑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5] 정순태 2008-04-05 1556
136 [단상] 가을 산행 [2] 정순태 2007-01-06 1550
135 [묵상] 태초로부터 베드로에게로 [2] 정순태 2008-08-09 1550
134 [고백] 교사의 고백 - 그 마음 한 조각 [1] 정순태 2007-02-17 1546
133 [단상] 정제되지 못한 간증의 위험 [4] 정순태 2007-04-14 1541
132 [묵상] 목사 예복(예배복) Ⅱ [3] 정순태 2009-08-15 1534
131 [단상] 누가 곤고한 사람인가? [1] 정순태 2008-05-31 1532
» [단상] 빛과 소금 [5] 정순태 2007-03-03 1519
129 [단상] 방언은 성령시대의 대표적 징표인가? 정순태 2007-11-24 1506
128 [묵상] 수지맞은 구경꾼(출14:1-14) [1] 정순태 2007-04-27 1504
127 [환우나눔] 아주 작은 소자들의 지극히 작은 나눔 이야기 정순태 2007-04-01 1498
126 [서평] 지록위록(指鹿爲鹿)의 잘못? 정순태 2008-10-04 1486
125 [목자상] 03. ‘목사’ 직분의 개관(Ⅱ) 정순태 2009-10-24 1450
124 [이의] 성소 안에서 잠 잔 사무엘? 정순태 2012-05-28 1432
123 [단상] 예수님은 흥하고 목사는 망해야한다! [4] 정순태 2007-06-02 1420
122 [서평] 진 에드워즈의 "가정집 모임은 어떻게"(대장간)를 읽고 정순태 2008-05-03 1418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