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같아선 일만 마디의 말씀을 쓰고 싶으나, 스스로의 주제를 알아 한 마디의 말씀만으로 만족하겠다며 칼럼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3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와 뒤돌아보니 한 마디는커녕 0.00001마디도 못되는 헛소리들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참으로 쓸데없고 어리석은 넋두리였습니다.

심히 부끄럽고 또 이 홈을 사랑하시는 모든 성도님들의 용서를 구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얼마 전, 뜻하지 않게 건강상 적신호를 겪으면서, 하나님의 만류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현대의 거의 모든 교회들과 목회자들의 주장에 심한 반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참 신앙과 그들이 선전하는 현실 신앙과는 그 괴리가 너무 크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흔히 은혜롭다는 많은 설교들과 주장들의 허구가 아주 쉽게 눈에 띄곤 했습니다. 몇 편의 글에서, 자제하며 표현하기는 했으나, 간간이 표출되었음을 아실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 교회와 신앙으로는 성경적 믿음을 회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확신하다시피 합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른 측면으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목사님께 개인적으로 고백드린 것처럼, 누가복음 2장의 시므온과 안나를 통한 깨우침입니다.

회생불가능 했던 주님 당시의 유대교 안에도, 시므온과 안나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존재했었다는 진리입니다!

회칠한 무덤 같은 유대교라는 암울한 환경 속에서도 아주 소수의 참 성도들을 숨겨두시는 것이야말로 진짜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힐렐이나 샴마이나 가말리엘과 같은 대학자들, 대제사장을 포함한 제사장들, 산헤드린 공회원들과 같은 바리새인 및 서기관들이 아닌, 평민 중의 평민인 시므온과 과부 중의 진짜 과부인 안나를 통해 이어지고 있던 하나님의 경륜의 명맥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비록 현대교회가 가장 타락한 세상보다 더 역한 냄새 풍기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도 시므온과 안나 같은 참 성도들을 남겨두고 계실 것입니다.

분명 그럴 것입니다. 인간 욕심을 하나님 말씀으로 교묘히 포장하여 영을 도둑질하는 수많은 삯군들에게 괴롭힘 당하는 가운데서도, 참 성도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좁은 길을 걷고 있을 것입니다.

참 성도의 유일한 특징은, 스스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 즉 유명하고 잘난 자들에게 빌붙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 성도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붙잡을 뿐입니다.  

이러한 참 성도님들은 결코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드러나지 않고 표 나지 않으니, 응당 사람이 알 수도 없고,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깨우침은 ‘하나님 나라’(현실 교회의 극히 일부가 이에 포함될 것임)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다는 뜻입니다. 지키는 명분도 하나님께 있고, 타락했으면 고치는 책임도 하나님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은혜 입어 하나님 백성으로 소속된 자의 유일한 임무는 자기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데에 일조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질을 벗어난 교회를 향한 질책은 하나님의 고유권한입니다. 한 사람의 신자가 열 낼 일이 못될 것입니다(물론 열 낼 자격도 없습니다만).

한 마디로 ‘칼럼쓰기’라는 헛수고를 계속할 명분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마치려는 것입니다.

다만, 지금까지 올려졌던 글들은 목사님께 그 처리를 일임하겠습니다. 삭제하셔도 좋고, 그냥 두셔도 좋습니다.

그냥 두는 것을 거론하는 이유는, 이처럼 허황된 짓거리를 했었다는 반성의 기회로 삼을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아무튼 저는 이제 이 홈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회원으로서 교제만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간, 어쭙잖은 헛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성숙한 영성으로 넉넉히 보듬어주신 목사님과 성도님들의 사랑에 깊이 감사드리며 물러가겠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은혜와 사랑이, 시므온과 안나에게처럼, 늘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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