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일부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곧 성경이다!’라고 자랑스레 말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아마 통계적으로 맞는 말일 것입니다. 많이 팔립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세상에서 가장 읽히지 않는 책 또한 성경이다.’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통계를 접하기는 힘들겠으나 성도들의 실제를 감안하면 전혀 틀린 말이 아닐 듯도 싶습니다.

성경은 많이 팔림(판매부수)을 자랑할 책이 아니라 많이 읽힘(봉독횟수)을 자랑해야 할 책입니다.  

기독신앙의 유일한 지침이 되는 성경(정경=Canon=잣대)을 읽는 방법은 대략 3가지로 정의되곤 합니다.

첫째, 통독(通讀)입니다. 읽는 내용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빠르게 읽는 방법입니다. 다독(多讀)과 유사어입니다.

2,500번 이상 통독한 목회자가 있고, 1년에 30-50독 하는 권사님들도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100여 번 읽은 형제와 함께 교사생활 해 봤고, 1년에 10독 하는 권사님과 같은 구역생활을 해 봤습니다(이 권사님은 성경내용은 하나도 모릅니다. 무대포로 읽기만 합니다).

개인적으로 작심하고 읽었더니 1년에 8독까지는 가능했습니다. 지금껏 26독 했습니다.

통독은 성경 읽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강점은 ‘맥을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의 흐름을 감 잡을 수 있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숲을 보는 방법입니다. 반드시 이렇게 읽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독이 성경 읽는 유일한 방법은 아닙니다.

둘째, 정독(精讀)입니다. 읽는 내용을 깊이 따져가며 아주 세밀하게 읽는 방법입니다. 숙독(熟讀)과 동의어입니다.

안광지배(眼光紙背)라는 말이 있습니다. ‘눈빛이 종이 뒤까지 꿰뚫는다.’는 뜻으로서 ‘독서의 이해력’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사자성어에는 ‘독서에 기울이는 노력’도 포함된다고 여기고 있기에, 이를 정독(精讀)이라 이해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이나 목회자들에게 필수적인 독법입니다. 성경 연구하고 설교 준비하려면 정독 이외의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정독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독은 생각보다 힘듭니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성경 한 구절을 읽는데도 아주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어떤 때는 한 구절에 몇 시간 아니 며칠이 걸리기도 합니다. 심지어 단어 하나 찾아보는데도 엄청난 시간이 소모되기도 합니다. 마치 밀림에서 나무 하나 하나를 세밀하게 관찰하며 연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정독이 진짜 힘든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정독해 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을 만나게 된다는 점입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머리에 쥐가 나도록 읽어도 이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이해가 안 되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진척도 느리며 간혹 지치기도 합니다.  

정독은 힘든(눈빛으로 종이를 뚫어야 하므로) 읽기 방법입니다만 정독만이 지니는 장점이 하나 있습니다. 조금이나마 바른 이해에 도달할 경우에 느끼는 만족감이 비길 수 없이 크다는 것입니다. 매우 즐겁습니다. 비록 그 횟수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독 또한 성경 읽는 유일한 방법은 아닙니다.

셋째, 성독(聖讀)입니다. 성령님의 조명하심 하에서 읽는 것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거룩한 독법=신적독서=묵상하며 읽기)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성경은 성령님이 열어 주시지 않으면 읽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독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성독에도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일부 성도들은 통독이나 정독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평생 통독 한번 안 했고 정독은 아예 할 줄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성경구절을 줄줄 외웁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물으니 ‘성령께서 알려 주신다.’고 합니다. 환상으로 보여주신답니다.

당연히 그럴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불능하신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환상으로 성경구절들을 얼마든지 보여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오직 성독으로만 읽는다면 이는 아주 심각한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비주의와 이단의 특징이 바로 통독과 정독은 무시하고 성독만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거룩함과 동시에 반드시 필요한 독법임에도 불구하고 성독 또한 홀로 유일한 방법은 아닙니다.


성경 읽는 최선의 방법이 자연스레 밝혀졌습니다. 통독과 정독과 성독의 3가지 독법을 적절히 조화시키면서 읽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3가지 방법 어느 하나만으로는 불충분하며 균형 잡힌 조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기억하며 계속하겠습니다.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정독을 중시합니다. 꼼꼼히 살피며 천천히 읽습니다. 그렇다고 성경 모두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놓치는 부분도 많고 오해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아무튼 앞서 말했듯이 성경을 정독하다보면 이해 안 되는 부분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당연히 이성적 측면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입니다. 일단 지적(知的)으로 이해가 안 될 경우 이를 정리해 두곤 합니다.  

정리된 내용 몇 가지를 다른 지체들과 나눠보니 일부 성도들의 반응이 의외였습니다. ‘성경을 부인하는 거냐? 대충 읽으면 되지 뭐 그리 유난 떠느냐?’는 생각이지 싶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결코 정독 독법을 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크게 권장하고 있습니다.

몇 곳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호세아 선지자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호6:3).

전체의 의미를 탐구하려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단어 “알자”만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알다”(야다)는 기본적으로 ‘알다(know). 이해하다(understand).’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나아가 ‘관찰하다. 구별하다. 관계하다.’의 뜻으로도 사용된다 합니다. 그리고 학자들은 ‘지식’을 전제한 말이라고 설명합니다.

참고로 “힘써”(라다프)는 ‘뒤따르다. 추적하다. 추구하다. 박해하다.’의 뜻이라 합니다. 하나님을 뒤따르고 추구하는 의미일 것입니다.

결국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하나님을 뒤따르는, 추구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교훈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냥 알아갈 수 있는 대상만은 아니십니다.

다음으로 사도 베드로는 말합니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벧전1:10-11).

밑줄 친 3 단어입니다. “연구”(에크제테오)는 ‘찾다. 탐색하다.’의 뜻이라 합니다. ‘문의하다. 조사하다.’라는 뜻도 지닌다 합니다.

“부지런히 살피다.”(엑세류나오)는 ‘찾다. 수색하다.’의 뜻이라 합니다. ‘철저하게 조사하다.’라는 뜻도 지닌다 합니다. 주석학자는 ‘성령이 계시해 주는 정보에 대한 예언자들의 열렬한 연구와 숙고에 대해’ 사용한 말이라 주석하고 있습니다.

“상고하다”(에류나오)는 ‘찾다. 발견하다. 자세히 살피다. 수색하다.’의 뜻이라 합니다. ‘통찰하다. 탐색하다.’의 뜻도 지닌다 합니다. 어떤 학자는 ‘인간이 하나님의 가장 깊숙한 본질을 간파하는 데 사용하는 단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베드로 사도가 말하는 요지는 ‘선지자들은 구원의 때를 알려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그리스도에 대해 연구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대충 건성건성 읽을 것이 아니라 탐색하고 통찰하듯 세심하게 읽어야 한다.’는 것까지 암시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끝으로 사도 바울의 말입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17:11)

“간절한”(파스)은 ‘모든, 온갖, 각각’의 뜻이고 “마음”(프로뒤미아)은 ‘열심, 성향, 소원, 결심’의 뜻이라 합니다. ‘모든 열심을 기울여서 성경을 읽으라.’는 뜻일 것입니다.

“상고하다.”(아나크리노)는 ‘조사하다. 검토하다. 심문하다.’의 뜻이라 합니다. ‘판단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합니다. ‘성경을 조사하듯 자세히 살피라.’는 뜻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권면은 ‘내 말도 성경에 비추어 비교한 베뢰아 사람들을 본받으라.’는 뜻입니다만, ‘성경은 형사가 죄수를 심문하듯 하나도 빠트림 없이 검토하고 조사하며 읽어야 한다.’는 뜻도 됩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지금껏 살핀 것처럼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문제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갈 것인가?’에 대한 변형된 질문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유일한 계시인 성경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성경에 의존한다는 것은 읽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의 다른 표현입니다.

성경을 읽는(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방법은 통독과 정독과 성독의 3가지 방법이 있고 정독(精讀)은 분명히 ‘성경을 읽는 옳은 방법’에 포함됩니다!

오늘은 대표적으로 성경 3 곳만 살폈지만 ‘열과 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여 탐구해야 함’을 강조하는 구절들이 무척 많습니다. 정독은 성경 읽는 지극히 정당한 방법 중의 하나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독의 결과는 가볍지 않습니다. ‘성경의 모든 구절들을 명쾌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결말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정독의 어려움입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체험하지 못했다면 이는 성경을 정독해 보지 않았다는 반증일 뿐입니다. 성경을 단 한번만이라도 정독해 봤다면 반드시 이해 안 되는 구절들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구절이 없다는 것은 성경을 건성으로 읽는다는 증거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이해 못하는 것은 결코 ‘사악한 행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지성의 한계를 지닌 인간이라면 반드시 그러한(이해하기 힘든) 현상에 직면해야만 합니다.


성경은, 일평생 읽어야 할 기독신앙의 유일한 “잣대”임을 고백함과 동시에, 반드시 정독(精讀=眼光紙背=知性을 최대한 활용하여 머리에 쥐가 나도록 애쓰며 읽는 것)해야 할 필요도 있다는 사실을 함께 고백하며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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