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만드는 길

조회 수 741 추천 수 84 2010.08.09 05:02:48
3년 전, 어린 두 아들을 둔 35살의 현주 씨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마취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상태로 회복실에 누워 있는데, 자신을 향해 “저 여자는 어떤 환자야?” “암 수술 받은 환자야” 라고 말하는 간호사들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침샘 암 수술을 받았음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암이라는 충격과 수술로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가장 먼저 떠 오른 그녀의 생각은 자신이 아닌 남편을 향한 것이었다.
“남편은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는데….”

귀 밑을 절개하여 수술을 했기 때문에 현주 씨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지고 퉁퉁 부어 있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낯선 모습의 엄마를 본 3살짜리 준하는 엄마에게 덥석 안겨 이렇게 말했다.
“난 이 세상에서 우리 엄마가 제일 예뻐요!”
9살 큰 아들은 마켓에서 사온 김밥 하나를 말없이 엄마의 접시에 올려 놓았다. 입을 열기도 힘겨운 현주 씨는 천천히 작은 소리로 말했다.
“산하야, 엄마는 김밥이 너무 커서 먹을 수가 없어. 엄마는 괜찮아. 어서 먹어….”
그러자 산하는 자기 손톱만하게 김밥을 똑똑 떼어 다시 엄마의 접시 위에 몇 조각 올려 놓았다. 그리고 묵묵히 남은 김밥을 먹고 방으로 들어 갔다. 이불 속에서 애써 감추는 산하의 울음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현주 씨는 가슴 아린 눈물을 힘껏 안으로 삼켰다. 그리고 속 깊은 두 아들이 붙들어 준 손을 꼭 잡고 힘을 내어 약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나는 그녀가 수술 후 1년 반이 지난 무렵에 그녀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각자가 안고 있는 육신의 약함 속에서 빠르게 한 마음이 되었다. 서로가 다른 색깔의 고통을 갖고 있었지만, 아픔을 느끼는 같은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연약함이 마음의 연합을 이뤄주는 길이 되어 주었다.

그녀는 암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잘 끝냈지만, 남은 후유증은 자신만이 감당할 고통의 몫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통은 이미 끝난 것이라고 말하며 약 7년 동안 지속된 허리통증을 안고 있는 나를 더 안타깝게 생각해 주었다. 그녀는 수시로 안부 전화와 함께 맛난 음식들을 만들어다 주며 나의 귀한 동역자가 되어 주었다.

최근에 현주 씨는 한 이웃의 아픈 소식을 전해 들었다. 건강했던 50대 초반의 가장이 갑작스럽게 몸에 심한 통증을 느껴 응급실로 갔는데 간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는 이미 수술 시기도 놓쳐 항암치료만을 받아야 했다.

단지 몇 번 밖에 만나지 않은 이웃이었지만, 그녀는 남편과 함께 단숨에 그 가정을 찾아가 아픈 마음과 소망을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그녀의 남편은 그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벽예배를 다니기 시작했다. 남편의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던 아픔이, 그들의 손을 잡아주며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길이 되어 주었다.

눈물은 눈물로만 닦아 줄 수 있다. 기쁨은 아픔을 품어 줄 수 없고, 아픔만이 아픔을 품어 줄 수 있다. 사람의 상처는 사람만이 보듬어 줄 수 있듯이 말이다. 아픔도, 슬픔도 길이 된다고 한다. 아픔 속에서도 손을 내밀어 또 다른 아픈 손을 잡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사랑을 흘러 보내는 길이 될 것이다.

빨간빛이 주홍빛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래서 주홍빛은 노란빛의 손을 잡아 주었다. 노란빛은 주홍빛의 손을 꼭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초록빛의 손을 잡아 주었다. 이렇게 아픈 손을 잡아 주는 것은 사랑의 무지개를 만드는 새로운 길이 된다.

우리가 십자가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의 손을 잡고 있다면 아마도 잡아주지 못할 고통의 손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손을 영원토록 붙잡고 계신 예수님의 그 피 묻은 손 때문에….


이선우

2010.08.09 07:06:13
*.187.97.205

히야~ 무지개 만드는 길.. 덕분에 잘 보입니다.
원집사님의 글에는 아름다움이 가득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강호일미(江湖一美)입니다.^^
저도 요즘 아픔이라는 단어를 자주 생각하는 편입니다.
고통을 통해서 꽃 피우고 열매 맺는 성숙이라는 나무..
이것이 우리네 인생길의 단면이라 할 수도 있겠지요.
주님 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허락하신 강건으로 충만한 영성처럼
육신의 연약함의 뿌리를 가능한 제거해 주시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정순태

2010.08.09 14:09:02
*.75.152.231

"눈물은 눈물로만 닦아 줄 수 있다."
숙연한 말씀입니다.
강호일미님의 진정한 미의 한 부분을 배우고 나갑니다! 감사~~~

김순희

2010.08.10 13:15:07
*.165.73.38

고통 속에서도 영롱한 무지개의 빛을 발 하시는 모습이 정말 기적이 아닌지요.
강호일미님의 글들 속에는 아름다움이 깃들여 있어서 참 좋습니다.

기쁨은 아픔을 품어 줄 수 없다..... 곰곰이 묵상해 보겠습니다.^^

하람맘

2010.08.10 13:46:21
*.163.11.238

... 눈물은 눈물로만 닦아 줄 수 있다... 아품만이 아품을 품어 줄 수 있다... 가슴이 찡하고 목이 아퍼옵니다... 자신의 아픔에만 고통스럽다고 발버둥치던 제가 부끄럽습니다... 저도 저와 같은 아픔을 가진 분들을 품어주고 눈물을 흘려줄 수 있다면 좋겠네요... 무지개가 그렇게 아름다운 이유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집사님 오래간만에 집사님의 글을 읽게 되어 또 한시름 놓이네요...

mskong

2010.08.11 15:00:41
*.226.142.23

글을 읽게되어 저도 한시름 놓습니다. 강호일미님의 글을 신우회 어떤 자매님께 메일로 전달하겠습니다. 위로를 많이 받을것 같아서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 죽고 사는 것 [2] euisookwon 2016-02-15 694
12 아빠, 아버지! [7] 원의숙 2011-08-15 991
11 그래, 그럴 수도 있지! [2] 원의숙 2011-06-10 696
10 이상한 거울 [10] 원의숙 2011-03-02 795
9 아낌없이 주는 나무, 숲을 이루며…. [1] 원의숙 2011-01-12 667
8 손 내밀며 하는 말, “친구야! 같이 놀래?” [6] 원의숙 2010-11-10 769
7 내가 가진 그 사람 [4] 원의숙 2010-10-07 768
6 시냇가에 심은 나무, 숲이 되기까지... [6] 원의숙 2010-09-16 869
» 무지개 만드는 길 [5] 원의숙 2010-08-09 741
4 사람의 향기 [8] 원의숙 2010-07-08 895
3 함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8] 원의숙 2010-06-10 838
2 밤하늘의 영영한 별빛 [3] 원의숙 2010-05-25 802
1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 희망 옹달샘! [9] 원의숙 2010-05-12 1264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