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립보서 3:10-11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을 믿는 삶이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는 것이다. ‘믿음’은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생기고, ‘앎’은 경험하므로 얻는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예수님은 나의 구주(Savior)이시며 나의 주(LORD), 나의 하나님(God)이심을 고백한 이후의 신앙생활은 날마다 그분을 알아가는 삶이다.
그런데 이‘앎’이라는 것은 성경을 이해하는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인격인 지정의를 다 동원하여 주님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을 알기 위해선 말씀에 순종해야 하고 순종하기 위해선 명령하신 말씀을 들어야 한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곧 ‘말씀 묵상’이며 말씀을 묵상하도록 돕는 경건 훈련이 ‘큐티’(Quiet Time)이다. 따라서 신앙생활은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을 알아가는 삶이다.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을 알아간 시간이 9년이 지났다. 첫 3년은 젖을 먹는 어린아이와 같아서 의지가 잘 동원되지 않는, 물려준 젖만 마시던 때였다. 그 신령한 젖은 나를 자라게 하였고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장성한 자로 성장시켜 주고 있다.
‘믿음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삶’이라는 나의 신앙 모토를 따라가면서 예수님을 체험하다 보니 점점 더 주리고 목마른 심정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위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을 알기 원하고, 그분의 부활의 권능을 알기 원하고,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원하여 결국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길 원했던 바울과 맞닥뜨려졌다.
바울이 알기 원했던 세 가지 중 하나, 부활의 권능을 알기 원하는 최근의 나의 마음이 말씀에 비추어졌다. 그러나 부활의 권능은 죽지 않고서는 경험할 수 없기에,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정도로 죽을만큼 아프고 힘들었던 경험들이 떠올라 적지 아니 갈등하며 지내던 터에 ‘침례’(baptism)를 받게 되었다.
세례를 받은 지 21년 만에 침례를 받게 된 감격 중 최고로는 예수님께서 친히 본을 보이시며 행하신 대로 침례(침수 침례)를 받은 것이다. 온몸이 물에 잠기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참여하는 것으로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을 뜻하며, 물에서 올라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것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이로써 난 또 한 번의 말씀을 경험했다.
그동안 나는 침례 받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게으르게 미루고 있었던 이유가 있는데, 물속에 잠겨 결코 소통할 수 없는 공포를 끔찍이 두려워함과 동시에 머리가 흠뻑 젖은 상태로 사람 앞에 절대 서지 않는 말 못할 약점(절벽인 뒤통수) 때문이었다. 그런데 침례를 받으며 나에게 있어서 이것만은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에서 죽어버리기로 했다. 결국 난 약 35년만에 물속에 잠겼고, 예고 없는 비가 오면 말없이 집으로 발길을 돌이키던 청년기 이후부터 헤어드라이어로 머리카락을 부풀리지 않으면 밖에 나가지 않던 나는 물속에서 일어나 온 회중을 향해 할렐루야를 외쳤다.
죽음에(나에게 있어서) 참여하는 것이 이렇게 두 번이면 족한데, 침례를 받은 감격을 전하기 위해 영상을 찍는 과정에서 난 뜻하지 않게 또 한 번 더 죽어야 했다. 나만의 감격을 써서 다 외우고 자신있게 녹화를 했는데, 담당 간사님에게 한 번에 퇴짜를 맞았다. 감동 있게 간증해야 하는 분위기와는 달리 달달 외워 말하는 게 마치 아나운서 멘트 같다는 것이었다. 그 분위기를 깨뜨리기 위해 외웠던 틀에서 벗어나기가 어찌나 어렵던지, 말이 부족하고 시원찮은 내가 녹화를 마치기까지 당당한 마음도 죽고 있던 힘도 다 빠지고 그 자리에서 도망가고 싶은 죽을 것 같은 심정으로 마쳤다.
죽어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나의 고정 관념, 죽으면 아무 것도 아닌데 죽는 게 어려워 그토록 붙들고 있었나 보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기엔 거리가 한참 먼 경험이었을지라도 침례 받은 후, 그 추운 날에, 오히려 감기몸살이 나은 것과 의기소침해져 차분하게 들린 간증이 은혜였음은 분명 살아난 체험이었다.
늘 헤아려 주시고 격려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원의숙 전도사님 (이 칼럼을 시작할 때는 집사였는데 이젠 전도사님 되셨네요)
몸이 아직도 아주 불편함에도 더 힘든 둘째 따님을 돌보고
또 신학을 공부하면서 어바인침례교회의 전도사로 봉직하는 너무나 바쁜 일정 가운데도
정말 오랜 만에 여전히 은혜가 넘치는 글을 올려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 풍성한 나눔을 기대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