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며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위의 시는 함석헌 선생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이다. 나는 이 시를 읽고 오래도록 전해지는 감동과 깊은 상념에 잠겨 ‘그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한 연 한 연을 읽을 때마다 단지 나의 생각과 기대에만 미치는 누군가가 떠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연이 끝났을 때, ‘연마다 떠오른 누군가의 모습이 하나로 합쳐질 그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결국 ‘나는 누군가의 그 사람이 될 수 있을까’하는 자문에 봉착했다. “내가 누군가의 그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사람’을 얻는 다는 것과 ‘그 사람’이 된다는 것은 너무 멀고 힘든 길 같아서 내게는 한없이 크고 높게만 다가온 ‘그 사람’이었다.
얼마 전, ‘그 사람’이 되어 나를 찾아 오신 분이 계셨는데, 50대 초반의 서금순 집사님이시다. 오랜만에 우리 집을 방문하신 집사님의 얼굴은 반가움으로 붉게 상기 되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집사님의 상기된 얼굴은 가라 앉질 않았다. 말씀 하시는 집사님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주 미세한 붉은 돌기들이 얼굴에 온통 가득하여 부은 것처럼 보였다. 그 이유를 여쭤 보았더니 그 날 아침, 나를 만난다는 기쁜 마음에 나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세차게 문지르며 세수를 몇 차례 하셨다는 것이다. 얼마나 세게 여린 볼을 문지르셨는지 세안 후 따가워서 스킨과 로션을 바를 수가 없으셨고, 급기야 피부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정말 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을 지닌 집사님이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누군가가 나를 이토록 사랑해 주는 것에 대한 행복함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집사님과는 다르게 나는 5일 동안 샤워를 못하고 머리도 못 감아서 냄새 나는 지저분한 상태였다. 나는 허리에 극심한 진통이 찾아올 때면 며칠 동안 씻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불편한 냄새를 맡으실 것이 마음에 걸린 나는 씻기 어려웠던 이유를 굳이 재차 말씀 드렸다. 그러자 집사님은 진지한 목소리로 내게 이렇게 말씀 하셨다.
“원집사님! 샤워하고 싶을 때 내게 언제든지 말해요. 내가 머리도 감겨 주고 샤워도 시켜 줄게요. 집사님은 힘들지 않도록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돼요.”
이렇게 말씀하신 집사님의 진심 어린 마음을 나는 안다. 언제나 겸손하시고 온유하시며 넓은 마음으로 우리 가족을 사랑해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를 씻겨 준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만약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분에게 도움의 손길을 청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실된 마음뿐만 아니라 선한 행위를 몸소 실천하시는 서집사님 같은 분을 가진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 여겨졌다. 집사님을 통하여 나는 서로를 향한 믿음과 신뢰 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작지만 ‘그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위의 시를 읽은 뒤 숙였던 고개를 살며시 들었다. 시 전체를 이끌어 한 사람으로 모아 주는 그 사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떠 올리며 다시 시의 한 연 한 연을 음미해 보았다.
“그래, 나를 대신해서 자기의 목숨까지도 버린 사랑의 본체인 그 사람이라면….”
“그래, 그 사람이야… 이 험한 세상에 빛과 길이 되어준 공의와 진리의 그 사람….”
변함없이 영원토록 나의 ‘그 사람’이 되어준 예수 그리스도. 내가 가진 ‘그 사람’이다. 만약 그 분을 따라 조금이라도 닮아 간다면 나는 ‘작은 그 사람’이라도 될 수 있을까? 내 마음에 ‘그 사람’을 영영히 품은 나도 누군가의 ‘그 사람’이 되고 싶다.
마음을 울리는 작은 것의 가치를 아시는 자매님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주님이 바라시는 참 교제를 통해
자매님의 아픔도 감해지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