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조회 수 834 추천 수 73 2010.06.10 17:20:13
   둘째 딸 조이가 만 4 살 때, 프리스쿨(pre school, 미국에서 취학 전 다니는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조이가 소아당뇨(Type 1 Diabetes) 진단을 받은 뒤, 잠시지만 처음으로 내 품을 떠나는 시간이 온 것이다. 어머니는 탯줄을 끊는 순간부터 자녀를 떠나 보내는 연습을 시작한다고 한다. 어머니들은 자녀를 처음으로 학교에 보내며 심지어 두렵고 떨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내 경우는 크게 달랐다. 조이는 질병으로 24시간 특별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나는 쉽지 않은 혈당 관리, 위기 대처 방법 등을 단 몇 시간이라도 학교 측에 넘기고 그들을 신뢰해야만 하는 것이다. 학교 관계자들과 여러 차례 만나 상의를 한 후, 처음 일주일 동안은 내가 학교 안에 함께 머물러 있기로 했다. 이것은 조이를 맡을 그들이 익숙해 지도록 돕는 길이기도 했지만, 다른 아이들과 또 다른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조이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나는 조이의 반 옆에 자리한 쉼터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 자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반으로 들여 보내고 또 선생님으로부터 아이들을 인도 받아 집으로 데리고 가는 곳의 길목에 있었다. 많은 부모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늘 제자리에 앉아 있는 나를 유심히 쳐다 보았다. 하지만 가볍게 눈웃음으로 인사를 나누며 떠날 뿐이었다.

   어느 날 아침, 조이와 같은 반인 아들을 데려다 놓고 떠나던 한 어머니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왜 집에 가지 않고 기다리세요?”
   “아! 예…”
   그 어머니의 눈빛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여준 시선과는 다른 것을 느꼈다. 그것은 일반적인 호기심과 동정이 아니었다.
  “제 딸 조이가 소아당뇨거든요. 새로운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안정될 때까지 제가 잠시 옆에 있기로 했어요.”
   그런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어머니는 의자를 꺼내 내 옆에 바싹 앉아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제 큰 아들 민수는 휠체어를 타요. 뇌성마비거든요.”

   1년 전 미국에 온 민수는 특수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정규 학교에 다닌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특수교사가 항상 민수를 돕는다. 학교생활이 안정되기까지 1년 동안을 쫓아 다니며 눈물과 땀을 흘린 민수 엄마의 사랑의 열매였다. 눈 여겨 보았던 민수 엄마의 유독 빠른 종종걸음을 난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이후로 나와는 다른 여유와 평안한 웃음을 가진 민수 엄마와의 만남은 내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한 번은 독감 시즌이 되어 크게 긴장하고 있을 때였다. 조이가 독감에 걸리면 전화로 실시간 의사의 지시를 받으며 집에서 특별 간호를 해야 하는데, 응급상황이 되면 즉시 응급실로 들어 가야만 한다. 이 문제 앞에서도 민수 엄마와 난 동병상련이 되어 얘기를 나눴다. 그런데 그만 민수가 독감에 걸려 학교에 가질 못했다. 안타까워하는 나에게 민수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민수가 학교에 못 간 어제, 집에서 들들 볶았어요. 아파서 집에 있을 때는 편하고 잘해주니까 학교 가기 싫어하거든요. 학교 가는 것을 쉽게 포기해 버리죠. 오늘 아침엔, ‘오늘도 학교 안 갈래? 안 가면 어제처럼 엄마가 너 못 살게 군다!’라고 하니까 민수가 학교에 간다고 그러더라고요. 그 때 민수에게 한마디 더 했어요. ‘너 조금 아프다고 학교 가기 싫어하면 앞으로 더 큰 일 생길 때 어떻게 헤쳐 나갈래? 남자가 이 정도쯤은 이겨 내야지. 그렇게 약해서 어떻게 결혼하고 가정을 책임질래? 너 장가는 가고 싶어?’ 그랬더니 민수가 피식 웃으며 ‘나 좋은 여자한테 장가 갈 거야’라고 말하는 거 있죠? 아…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여러 날이 지난 뒤, 조이와 함께 간 병원에서 민수를 만났다. 민수는 날 모르지만 난 민수를 너무나 잘 알기에 다가가 민수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빙그레 웃는 민수가 먼저 진찰실에 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민수에게 꼭 맞는 배우자를 만나게 해 주세요.”

   이 기도는 내가 조이를 위하여 눈물로 드리는 기도와 같다. 깊은 새벽녘, 저혈당이 되어 다리를 떨고 있는 아이의 혈당을 체크하며 정상 혈당이 될 때까지 아픈 머리를 붙들고 30분 정도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깨어 있어야 할 때, 그런 조이를 보며 난 기도 한다.

   “하나님, 조이에게 필요한 돕는 배필을 꼭 만나게 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조이를 만드신 그 갈빗대의 주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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