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요21장] 어부에서 목자로

조회 수 945 추천 수 93 2011.02.12 09:22:23

(들어감에 앞서)
이 QT는 제 글 #37 ‘베드로 묵상’ 중 2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의 베드로 묵상을 먼저 읽으시면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본문 : 요21:15~23

요약 :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를 용서하시고 어부에서 목자로 다시 부르셨다.

붙잡은 말씀
15/16/17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15/16/17절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느낌 및 묵상

디베랴 맑은 바다 푸른 목장 없어도/ 주님 찾아 오셔서 좌정하시니/ 어두웠던 내 맘에 생명의 빛 되시네/ 갈릴리 작은 갈릴리 내 마음 작은 갈릴리,  능력의 신의 아들 오시어서 외롭게/ 무궁하신 사랑을 역사 지신 곳/ 내 안에도 그처럼 주의 뜻을 이루리/ 갈릴리 작은 갈릴리 내 마음 작은 갈릴리

아, 내 마음 작은 갈릴리.. 1979년 예수님을 영접한 직후의 몇년간 내가 가장 애송했던 복음성가이다. 그후 30년.. 2009년 12월 28일 이른 아침에 내가 직접 본 갈릴리 바다는 고요함을 넘어 한산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우기이기 때문에 일단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복음서에 나오는 대로 장대비를 동반한 폭풍을 몰고 오기도 한단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잔잔한 물가를 거니시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느낀다. 고요한 그 아침, 그 디베랴 맑은 바닷가에 서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베드로와 같이 만난다.

본문은 부활하신 주님이 세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내 가슴에 그토록 아름답고 영롱하게 맺힌 감미로운 영상 중의 하나다. 갈릴리의 새벽은 그리 차갑지 않다. 그 따스함이 정겨움으로 나를 감싼다. 어부로서 그들의 행복과 절망을 공감해 본다. 직업적 어부로서의 베드로와 친구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른 이후로도 고기잡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에게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4:19)

밤을 새서 고기잡는 일은 그들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열린다 성경’의 저자인 류모세 선교사에 의하면, 예수님 시대의 그물은 나일론 투명그물이 아닌, 흰 세마포를 얼기설기 엮어놓은 ’잘 보이는’ 그물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물은 반드시 밤에만 내려야 했다. 눈먼 고기가 아니고야 백주대낮에 잘 보이는 그물에 잡힐 고기가 있겠는가? 그러니까, 밤새 고기가 하나도 안 잡히는 것은, 낮에 흰 그물을 내려놓고 고기가 잡히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밤새 ’기적’을 체험한 것이었다. 그렇다. 그것은 고기가 한 마리도 안 잡히는 기적이었다. 그리곤 주님의 명령하심에 순종함으로, 한 순간에 잡힌 고기떼.. 153마리나 되는 고기가 단 한방에.. 아, 만선(滿船)이다.. 어부라면 누구나 꿈꾸는 만선.. 그것은 또 하나의 기적이었다. 이 두가지 기적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주님의 간섭하심, 주님의 말씀하심, 주님의 임재하심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 만선의 기적이후 그 고기는 다 어디 갔을까? 주님이 그 고기를 쓰셨을까? 물론 몇마리는 그날 조반의 도구로 쓰여졌으리라. 그러나 그 뿐이었다. 3년전 베드로를 만나셨을 때의 첫번째 만선의 기적도 마찬가지였지 않은가? 만선의 기쁨이 되었던 고기들을 다 버려두고, 베드로는 즉시 주님을 따르지 않았던가? 기적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단순한’ 증거로 주시는 것이 아닐까? 나의 믿음없음에 대한 도움의 도구로 내게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외에 기적의 역할은 없다고 생각한다. 기적은 기적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과 임재하심을 깨닫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주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통로와 수단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적은 바라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고 누리는 것이다.

제자들은 그 주님을 그제서야 발견하게 된다. 그 주님은 베드로에게 자비와 긍휼과 오래참음으로 다가 오신다. 그렇듯 깨어지고 실패한 베드로의 좌절 앞에 주님은 위로와 치유의 손길을 베푸신다. 키워드는 사랑이다. 주님은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신다. 마음 깊숙이 간직한 사랑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굳이 주님과 같은 아가페 사랑이 아니더라도, 조석으로 변하는 에로스적 사랑만 아니면 되는 것이다. 주님을 향한 진실함과 정직함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베드로와 같이, 주님을 향한 나의 진정한 무릎꿇음이 있다면, 주님은 언제나 나를 받아 주신다.

주님의 용서하심은 사명 주심과 함께 옴을 본다. 베드로에게 주신 사명은 양을 치라는 것이었다. 주님의 어린 양들을 먹이라는 것이었다. 내게는 주님의 이 명령이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이제부터는 어부가 되지 말고 목자가 되라는 말씀이 아닐까? 어부는 그동안 베드로의 평생 직업이자 사명이었다. 주님을 만나기 조금 전까지도 그는 고기를 잡고 있었지 않았던가? 그 고기잡이를 이제는 버리라는 말씀이 아닐까? 새로운 사명은 양을 치라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참 목자’가 되라는 것이다.

성지순례를 하고나서, 어부와 목자에 대한 직업이 내가 생각했던 것 만큼 그리 낭만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수님 당시 어부나 목자는 ’3D 직종’ 중에서도 최하위 그룹에 속하는 직업이었다. 두 직업의 속성 상 공통점은 밤에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부에게는 그물을 내려야 하는 시간이 반드시 한밤중 이어야 했고, 목자도 광야에서 양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밤샘이 기본이다. 그나마 어부는 밤샘 이후 집에 가서 쉬기라도 하지만, 목자의 경우는 열흘이고 보름이고 양떼들과 함께 밖에서 동숙해야 하는 일이 허다하다. 어부는 고기를 사랑할 필요가 없지만, 목자는 양을 사랑해야 한다. 양들과 동고동락하는 동안 그 사랑은 자연스레 싹트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으면 삯군 목자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어부에서 목자가 되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 내게 다가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시작하라는 말씀으로 묵상한다. 베드로는 어부라는 그의 평생직업을 이제 버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어부보다 더 힘든 목자의 길을 가라는 것이다. 이제는 참목자되신 주님만을 따라가라는 것이다. 목자되신 주님을 따라 ’양만’ 치라는 것이 아닐까? 그가 지금까지 천직으로 여겨왔던 것-고기잡을 생각은 말고.. 그것조차 버려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적용

최근들어 부음의 소식이 여기저기 들린다. 친했던 동료의 갑작스런 죽음.. 직장 동료의 투신 자살이나 암 사망에서 친우의 부인의 죽음과 이번 주의 어느 젊은 목사님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죽음의 소식은 나를 슬픔에 젖게 한다. 그 충격의 안타까움에 눈시울을 적신다. 그럼에도 그 애통함과 비장함 속에서 오히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발견한다. 아울러 일상 속에서 주님이 주시는 더 많은 기적이 있음을 발견한다. 기적은 주님이 간섭하시는 사랑의 외적 표징이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기적을 더 알아가자. 그 기적으로 주님을 더 체험하고 감동의 기쁨을 누리자.

“내 양을 먹이라“는 주님의 말씀에서 두가지를 적용한다.
첫째, 파트 타이머(Part-timer)가 아닌 풀 타이머(Full-timer)가 되자. 주님을 믿는 것이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요6:29) 베드로처럼 풀 타이머로 주님의 일을 하자. 이것은 전적으로 내 마음가짐의 문제다. 우선순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나의 커미트먼트(Commitment)가 부분적이 아닌 풀 커미트먼트가 되어야겠다.
둘째, 주님으로부터만 시작하자. 나로부터의 시작은 이제부터 무엇 하나라도 철저히 버려가야 한다. 내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출발하느냐 아니면 주님으로부터 출발하느냐는 것이 진정한 문제이다. 주님의 팔복에서 표현된 대로, 나는 가난하고 슬프며 목마르고 주려야 함을 잊지말자. 왕따를 무서워하지 말자. 모든 것을 주님으로부터 출발하도록 내 속사람을 바꾸자. 그렇게 내 성품을 일구어 나가자.


기도
주님, 베드로를 용납하시고 용서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자비와 긍휼의 손길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그 베드로가 바로 저였음을 고백합니다. 참목자되신 주님을 따라 목자의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제게 주신 양을 먹이겠습니다. 제게 베풀어 주신, 참으로 많은 이 기적들을 헤아려 깨달을 수 있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주님만이 나의 참 기적임을 고백드립니다. 주님의 간섭하심과 말씀하심과 임재하심을 따라가겠나이다. 주님, 사랑합니다. 아멘.

김순희

2011.02.12 13:01:48
*.165.73.38

"기적은 기적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과 임재를 깨닫기 위한 도구.... 기적은 바라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고 누리는 것이다" 아멘!
가시적이지 않아서 그렇지 늘상 기적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신자들인 것을 깨닫게 하시네요.

저도 이 말씀 앞에서는 가슴 저린 추억이 있어 늘 고개를 떨구고 맙니다.
주님으로 부터 시작이 아닌 나로 부터의 시작으로 온통 똘똘 뭉쳐있던 제가 이 말씀 앞에서 그만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라 절절 매다가 울다가...그럼에도 불구하고 용납하여 주시는 그 따사로운
주님의 품 속에서 펑펑 울던 그 기억이 있기에 집사님의 묵상에 더더욱 은혜 받습니다. ^-^

정순태

2011.02.17 14:25:50
*.75.152.90

어부보다 목자의 삶이 더 힘들다!!!
그렇군요.
힘들기에 진정한 소명을 받은 이들이라야 겨우 감당할 수 있는 직분이 곧 목자이겠지요.
이런 목자들, 자주 보기를 원합니다......

peterj

2011.02.21 14:34:39
*.16.56.51

서태평양 바다가에 말씀을 묵상하는데 난데없이 큰 물고기가 펄쩍 뒤면서
나를 보고 싱긋웃고 다시 물속으로 첨벙 들어가 더군!

나도 주님 만이 나의 참목자 임을 고백합니다.
은혜의 글 감사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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