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CES와 더불어 세계 양대 가전제품 전시회 중 하나인 IFA는 9월 3일부터 8일까지 베를린에서 진행되었다. 이 때가 내게는 1년 중 가장 바쁜 기간이다. 나는 일찌감치 8월 31일날 베를린에 도착해서 사전 점검부터 하기 시작했다. 내게 중요한 일정은 1일부터 시작된다. 본사의 손님들과 여러 주요 행사들이 이 때부터 진행되기 때문이다. 눈코 뜰새없이 바빴던 지난 며칠간.. 그래도 작년 이맘때보단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2년차의 경험으로 맨 땅에 헤딩하기한 작년보다는 모든 일들이 수월했다. QT할 시간이나 깊이 기도할 시간은 없었지만, 취침 전후 올려드린 짧은 기도를 통해서, 주위에서 나보다 더 수고하는 스태프들과 본사의 고위층 분들이 어떠한 경로라도 복음을 접하도록 간구하게 해 주셨다.
그 중 작은 표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어느날 저녁식사 후 여흥 자리에서 최고위층 분이 꺼낸 이야기 중에서였다. 갑작스레 나를 지목하며 하시는 말씀이, “이선우는 회사 일보다도 선교하기를 더 좋아하는 친구야.” 자칫 나에 대한 악평이 쏟아질 순간이라 주위의 시선이 모아졌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얘기는, 1996년 영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내가 어떻게 코벤트리한인교회를 창립하는 데 일조를 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워낙 철저한 무신론자이기에 오히려 내 중보기도의 대상자로 올라있는 분이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더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말하는 톤도 비난조라기 보다는 회사일 하면서도 선교일까지 ‘추가로’ 하는 열심이 있음에 대견하다는 말투였다. 아, 감격.. 그분은 내가 은퇴하면 뭐 할건지 뻔히 보인다는 말도 곁들였다. 곧바로 다른 주제로 넘어가 나에 대한 얘기는 더 이상 없었지만, 내게는 정말이지 큰 감사와 감격이었다. 회사 일 하면서 상사들 사이에서 내 신앙생활이 화두가 된 것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내 신앙의 길을 확실히 인정받기는 처음이었다. 또한 이것이야말로 주님께서 내게 주신 표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느덧 9월 5일 주일이 되었다. 이번 IFA 때는 어떻게든 주일날 예배드릴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 내 기도제목 중의 하나였다. 주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런던에 주재하시는 상사가 마침 오후 비행기로 돌아가게 되었고, 전시장에서 공항으로 전송 직후에 나는 1시간 반의 빠듯한 여유시간을 이용해 공항 근처의 한인교회에 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베를린제일교회에서의 예배는 감격 그 자체였다. 기도와 찬양과 경배, 그리고 말씀 중에 나의 예배를 받으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기도 중에 또한 그날 저녁에 내가 주최하는 갈라디너를 부탁드렸다.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들으면서, 갈라디너를 위한 하나의 조그만 이벤트를 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갑작스레 떠올랐다.
그 날 저녁 갈라디너는 독일지역의 주요 고객들과 파트너들을 위한 것이었다. 참석자가 100명이 넘는 대규모 디너였다. 물론 한사람 한사람 모두가 내게는 VIP였다. 식사 전 개막 연설 때에 나는 다음과 같은 요지로 손님들에게 이야기했다.
“저희 회사와 거래해 주시고 도와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에 제가 여러분께 느끼는 감사는 무엇보다도 절실하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서 특별한 감사를 표현해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식의 감사와 존경에 대한 표현 중 가장 큰 것이 절입니다. 비록 여러분이 독일인이지만 제 마음의 존경과 감사를 담아 한국식의 큰 절을 올리겠습니다.”
같이 참석한 다른 동료 주재원들과 더불어 나는 맨 바닥에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손님들에게 올려 드렸다.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쇼’를 위해서 한 일은 물론 아니었다. 예배 중에 느낀 주님께 대한 감사가 내 이웃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이어졌는데, 이 중 나의 주요 고객들이야말로 진정 감사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다가, 최근 회사 내의 화두인 고객 최우선의 정신(고객은 왕이다, 내 월급은 고객으로부터 나온다 등)을 어찌하면 내 주위의 동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의 해결책이기도 했다. 수장인 내가 큰 절을 올리는 마당에 회사 내의 다른 누가 고객의 목소리를 무시하겠는가? 이것이 백번 말보다 나은 산교육이 아니겠는가? 단순치 않은 이 생각은 사실상 예배 중에 주어진 아이디어였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큰 절을 하는 순간, 어느새 내 가슴도 덩달아 뜨거워졌다. 나중에 다른 주재원 동료들에게 들어보니 그들도 비슷한 뭉클한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머리를 깊이 숙인 채, 5초 정도를 세었다.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절을 마치고 일어난 시점에 보니 모든 손님들은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그리곤 계속되는 박수.. 끊임없는 기립박수를 치며 나에게 던져진 그들의 눈빛 속에도 감동이 있음을 발견함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박수가 그치길 기다려, 나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했다.
“앞으로 제가 독일에 있는 한 저희 회사는 여러분들을 이렇게 절하는 심정으로 모시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오늘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약속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이어서 진행된 음식과 와인.. 저명한 경영심리학 박사와 식음 전문가와 일류 요리사 3인의 다양하고 상세한 해설과 함께 하는 저녁 식사의 내용도 좋았고 손님들의 즐거운 대화도 그칠 새가 없었다. 7시반에 시작된 공식적 식사 종료 시간은 자정이 가까워서였다. 지루한 줄도 모르고 이리 시간이 빨리 지나갈 수 있을까? 평생 잊을 수 없는 디너가 되었다고 칭찬해 준 손님들이 참 많았다. 그 날 디너에 대해 고맙다는 이메일과 편지들도 받았다. 다들 성공적인 갈라디너였다고 내부적으로 자평하는 가운데, 나는 이 일을 이루신 주님께 감사를 올려 드렸다.
위기의 순간에서 얍복강을 건너 에서를 만나야 했던 야곱의 심정을 생각해 본다.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창39:1-3)”
에서를 대면하기까지 한번이 아닌 일곱번씩이나 절했던 야곱의 절절한 심정이 느껴지지 않는가? 어찌보면 비굴한 인간으로 보여질 순간이었지만, 그 자리에 또한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었지 않은가? 그런 심정으로 에서를 대하니, 에서가 어찌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도 나의 이웃에게 엎드려 절하는 심정으로 그들을 대해야 하지 않겠는가?
요한계시록 4장에 묘사된 장면은 예배의 백미라고 한다. 하늘나라에서 드리는 예배.. 그 예배의 하이라이트는 24장로들의 주 하나님께 대한 경배였다고 생각한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4:10-11)
아, 그렇다.
절을 하는 심정으로..
내 면류관조차 내어놓는 심정으로..
주님께 예배 드리는 심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