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묵상] 광야의 영성

조회 수 3047 추천 수 94 2010.10.30 09:53:16

다윗의 생애 중 가장 하이라이트가 되는 부분은 무엇일까? 여러 기념비적 사건들이 많습니다. 사무엘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음,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장면, 유다와 이스라엘 왕으로의 취임,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겨놓음, 각종 전쟁에서의 승리 등 어느것 하나 선뜻 이것이라고 대답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다윗의 생애 중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곳은 바로 그의 광야 생활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릴적 다윗의 신앙도 좋았지만, 실제 그의 본격적 신앙 훈련은 광야에서 쌓아져 나갔다고 믿습니다. 사울 왕과 그 추종세력에 의해 쫓기는 삶을 살았던 13년간의 세월은 그의 일생 중 가장 힘들었던 시련기이자 연단과 훈련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다윗됨은 광야에서 완성되고 다듬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왜 광야인가? 광야야말로 하나님께서 그의 사람들을 훈련시키실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광야 수업을 통해 하나님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훈련장으로서의 광야가 특별히 다윗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40년간이나 미디안 광야에서 침묵과 고독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여년을 지낸 후에야 귀향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이역땅 보디발의 집과 감옥에서 젊은 시절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다마섹에서 회심 후 아라비아에 한동안 머물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간의 광야생활을 통해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다윗의 경우, 광야는 더욱 특별 났습니다. 목숨을 건지기 위해 쫓기며 동굴과 사막지대를 오갔습니다. 그당시 그에게는 매일의 삶이 위협의 연속이었습니다. 죽음과 칼날의 위험 속에서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경배하는 법을 배워 나갔던 것입니다.

저는 시편을 통해서 광야 생활 중에서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신뢰하게 되었는지 보았습니다. 광야에서 그가 쓴 시편은 매우 많습니다. 그 중에서 상대적으로 긴 시편 몇 개를 뽑아 보았습니다. 제게 그것은 하나하나마다 시련과 역경 중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간섭하심으로 인한 교육과정으로 보였습니다.

시편 109편, 35편, 57편, 63편, 23편이 그것이었습니다. 물론 각각의 시편이 구체적으로 어느 시점에서, 어떤 배경 하에서, 어떤 심정으로 다윗이 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 임의적 소견으로 순서를 정한 것입니다. 이 시편의 순서를 따라가 보며, 제가 경험한 다윗의 영성의 변화와 광야에서의 훈련 과정이 어떠했는지 고찰해 보기 원합니다.


1. 시편 109편 - 하나님께 내 억울함 탄원하기

일명 '저주시편'이라고 부르는 109편을 처음 대했을 땐 조금 섬뜩했습니다. 그야말로 대적에 대한 저주가 곳곳에서 쏟아져 나옵니다. 그러나 읽어가면 읽어갈 수록 다윗의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그의 마음 속에 담겨진 억울함과 의분은 인간 중 어느 누구도 풀어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탄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낱낱이 털어 놓습니다. 자기의 감정을 조금도 숨기지 않습니다.

다윗은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를 드렸지만, 그들은 거꾸로 다윗을 고발하며 선을 악으로 갚고 사랑을 미움으로 갚았습니다 (4,5절). 그래서 자신의 대적들에게 '저주의 숯불'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습니다. 한편, 다윗 자신에 대해서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나의 중심이 상했다 (22절)"고 고백합니다. 아, 그것은 상한 마음이었습니다. 정화되지도 않고 꾸며지지도 않은 원초적 감정.. 깊은 절망과 고통 중에 상해버린 마음, 그 마음을 그냥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또한 하니님은 다윗의 그 상한 마음을 그대로 받으셨습니다.


2. 시편 35편 - 공의의 하나님 바라보기

35편에서도 다윗의 탄원이 여전히 이어짐을 봅니다. 의의 방패되신 하나님께 하소연합니다. 배반이란 정말 쓰라린 것입니다. 특히, 지금은 자기가 정말 사랑하고 위해서 금식하며 기도해 주었던 그들이 한순간 등을 돌리고 비웃는 상황 아닙니까?

하지만 그 와중에도 다윗의 톤(tone)은 바뀌었습니다. 대적을 향한 저주의 말이 많이 없어집니다. 대신에 공의의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벌립니다. 하나님께서 억울한 자신을 위해 친히 싸워 달라고 탄원합니다 (1절).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공정한 판결을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22-24절). 또한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을 바라봅니다 (9,10,27,28절).


3. 시편 57편 - 하나님의 자비하심 구하기

저는 개인적으로 57편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입니다. 이 시편은 다윗이 사울왕을 피하여 동굴로 도망하였을 때 지은 시였습니다. 사무엘상 24장을 보면 그가 숨었던 엔게디 광야의 동굴 속에서 얼마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는지 실감이 납니다. 목숨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사울과 그 일행이 바로 코 앞에 들이닥쳐 있는 위기일발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구해 주셨을 뿐 아니라, 거꾸로 다윗으로 하여금 죽일수 있었던 사울왕을 살려 보내 줍니다. 이제 다윗은 환경의 어려움 보다는 긍휼과 은혜 주시는 하나님을 더 바라봅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에 비하면 그가 처한 환경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인자와 진실하심, 그분의 자비하심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1-3절). 그의 마음은 이미 확정되고 확정되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7-11절).

  
4. 시편 63편 - 하나님 자신을 갈구하기

63편은 다윗이 유다광야에 있을 때 지은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 유다광야가 어디인지, 어느 시점을 배경으로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윗이 광야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려움과 시련의 시점에서 다윗은 하나님만을 갈구하고 갈망합니다.

저는 특히 두 구절을 통해 은혜를 받았습니다. 첫째, 그는 자신이 처한 광야를 성소라고 불렀습니다(2절). 그에게는 하나님이 계신 그곳 광야가 바로 성소였던 것입니다. 둘째,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낫다는 것입니다(3절). 아, 얼마나 멋진 고백인지요! 내 생명보다 그 무엇이 더 소중하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에게는 자신의 생명보다 하나님의 인자(사랑)하심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인자를 얻기 위해서라면 하나밖에 없는 내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그는 진정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발견한 것입니다. 광야의 훈련을 통해 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실감하고 체험하여 이제 하나님 외에는 세상의 어떤 것이라도, 아니 그의 생명까지라도 바꿀 수 없다는 확신으로 하나님 자신을 갈구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5. 시편 23편 - 목자되신 하나님만을 찬양하기

이제 피날레가 온 것 같습니다. 23편, 우리가 가장 애송하고 즐겨보는 시편입니다. 이전 시편과 비교하면 왜 제가 23편을 제일 마지막 순서에 놓았는지 이해가 되실 겁니다. 광야는 환경이 거친 곳입니다. 제게는 다윗의 훈련과정이 환경과 하나님 간의 미묘한 긴장과 역학관계로 다가왔습니다. 즉, 나를 중심으로 나와 환경과의 관계,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서로 상충되고 충돌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나는 환경을 더 바라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즉 내가 하나님을 점점 더 알아감에 따라, 내 영혼은 훈련받고 정화되어 하나님을 더 바라보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23편은 훈련의 끝을 알리는 위대한 하나님을 향한 찬양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63편만 하더라도 사실 그의 대적에 대한 탄원이 나옵니다 (9,10절). 23편에서 그가 처한 환경이 좋게 바뀐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선을 넘나드는 사망의 골짜기로 다녀야 했고, 그의 대적(원수)은 바로 코 앞에서 호시탐탐 진치고 있었습니다 (4,5절). 그럼에도 이제 그의 대적은 더 이상 그의 발목을 잡지 못합니다. 그의 조그만 관심거리도 되지 못합니다. 모든 환경을 은혜로 이끄시고 간섭하시는 하나님만이 찬양받고 경배받을 따름입니다.
****

이제 각 번호가 어떤 순서인지 이해가 되시지요? 다윗이 환경을 바라보는 비중과 하나님을 바라보는 비중을 기준으로 제 나름대로 순서를 매겨본 것입니다. 1번의 시편109편이 환경 90%에 하나님 10%의 믹스라면, 5번의 23편은 환경 0.1%에 하나님 99.9% 정도의 믹스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그 사이에 각 단계별 시편이 자리잡을 수 있겠지요.

사실 이러한 제 어프로치는 신학적으로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평신도니까 이렇게 자유롭게 쓸 수 있을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위 5편의 시편이 실제로 이런 순서로 쓰여졌다거나, 1번의 시편이 5번의 시편 대비 열등하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영성의 성숙 과정이라는 관점의 편의를 돕고자 제 주관적 소견을 이해하기 쉽게 펼쳐 놓은 것 뿐입니다^^.

이런 간단한 비유는 어떨까요? 지구에 있는 나는 태양과 달의 영향으로 낮과 밤을 교차하며 살아갑니다. 일반적으로 낮 동안은 태양의 밝은 빛 가운데 살지만, 밤 동안은 어두운 달빛 아래 삽니다. 태양이 하나님이라면, 달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상 이 둘의 크기는 비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왜 밤이 있는 것일까요? 태양보다 달이 나에게 훨씬 가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나를 둘러싼 환경은 때론 내게 멀리있는 하나님보다 훨씬 영향력이 더 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태양이 빛을 잃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은 늘 우리를 향하여 빛을 비추십니다. 단지 우리는 이 사실을 환경이라는 막강 변수 때문에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지요. 만일 태양이 나와 더 가까울 수 있다면 (지구의 공전과 자전은 무시하고^^), 나는 태양의 영향력 아래 더 강력하게, 더 오래 머무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달빛도 태양이 비추는 빛을 반사하는 것 아닙니까? 환난과 역경의 환경 속에서도 희미하게나마 하나님의 손길과 섭리하심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진짜 빛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환경이 발하는 모든 어두움은 한순간 사라지게 됩니다. 빛이 비추이는 곳에는 자동적으로 어두움이 존재하지 못하고 사라지듯이..

내 곁에 계신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을 때,
내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기억할 때,
나는 다윗이 됩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내 억울함을 탄원하겠습니다.
다윗과 같이 공의의 하나님을 바라보겠습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하겠습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 자신을 갈구하겠습니다.
아, 다윗과 같이
나도 목자되신 하나님만을 찬양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질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다윗이 정말 위대한 사람일까요?
시각에 따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 그는 위대했습니다. 다윗이 왜 위대한지는 다 아실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그에 대한 얘기가 도처에 펼쳐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이라 기록되었고,
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위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했습니다 (시109:22).
그는 자신을 마음이 상하고 낙심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시34:18, 51:17).
그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 그것은 다윗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다윗이 만난 하나님께서 위대한 것입니다.
아니, 다윗을 만나 주신 하나님께서 위대한 것입니다.
다윗을 다윗되게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서 위대한 것입니다.

다윗을 훈련시켜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윗을 만나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윗을 다윗되게 만들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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