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편지:살전5장] 거룩함에 이르는 퍼즐

조회 수 1721 추천 수 81 2011.08.20 21:30:59

** 이 글은 제가 제 친구에게 8/18일 밤에 보낸 이메일 내용을 그대로 편집한 것입니다. **


친구야,
(앞의 내용 생략)

여기에 최근 내 깨달음을 잠깐 나눈다.
좀 길지도 모르겠다.
이 말씀이 추가로 네게 조그마한 위로라도 되었으면 좋겠어.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6-18)

지난 며칠동안 몰입했던 말씀이야. 우리가 익히 알고 암송하는 성구이지.
그런데 실천적 관점에서 보니 이것만큼 어려운 명령이 있을까?
쩝.. 문자적으로 매달릴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그야말로 딴짓 하지 말고 오직 이 세가지에 매달려야 한다?
제일 잘 아는 말씀이지만, 실천하기에는 제일 어려운 말씀이 아닐까?

그럼에도 이 구절은 매력적으로 내게 다가왔어.
왜일까? 이 구절 속에 퍼즐이 숨어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야.
거룩함에 이르는 퍼즐이라고나 할까?
처음 말씀을 대할 때 첫번 의문은 이거였어.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3:3)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거룩함이라고 앞에서는 못박아 놓고
여기서는 기뻐함과 기도와 감사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단 말야.
뭔가 상충되는 듯도 하고, 연결점이 있는 듯도 해서 파고 들었지.
두 구절 사이의 연결점은 무엇일까?

우선 이렇게 생각했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3:7)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나의 거룩함이고, 이를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거야.
분명 맞지?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거룩해 질 수 있을까?
‘How’라는 관점에서 보니까 실마리가 풀리더군.
그러니까 하나님의 진정한 뜻은 나의 거룩함인데,
내가 거룩하게 되려면 실천 강령이 있어야 되잖아.
이 실천 강령이 본문 구절일 거라는 추측이지. 이른 바 3대 실천 강령이야.

3대 강령은 모두 동사형의 ‘하라’는 명령어로 되어 있어.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동사이면서도 내적 상태를 표현하고 있지.
기쁨, 기도, 감사는 동적 활동이라기 보다는 정적 상태를 더 보여 준다네.
거룩과도 많이 흡사해.
여기서 재미있는 관련 구절을 찾아 냈다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딤전4:4-5)
띵~ 놀랍지 않나? 거룩함의 비결이 감사와 말씀과 기도라니..

이 말씀을 토대로 데살로니가전서 전체를 정독해 보았어.
혹시 추가로 연결될 만한 힌트나 구절이 없을까, 하고.
이런 관점에서 눈여겨 보니까 여기저기 꽤 있더라고.
먼저 찾아낸 것이 5장 23절 말씀이야.
데살로니가전서 전체의 주제 성구라고 할 수 있는 이 말씀..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5:23)

눈이 번쩍 뜨였어.
그러니까 내가 거룩해야 할 부분은 세가지야. 영과 혼과 육!
거룩함은 나의 영과 혼과 육이 마지막 때까지 흠 없게 보전되는 것이지.
내 영과 혼과 육이 각각 거룩해져야 한다면,
각 3요소에 대한 행동 강령도 있어야 할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번뜩..
기뻐함과 기도와 감사라는 3대 강령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래서 다시 보니, ㅎㅎ 퍼즐이 풀린 짜릿한 기분..
1) 영에 대한 강령- 기뻐하라!
.  주님 안에서 살림을 받은 나의 영이 할 일은 이것 뿐이잖나?
2) 혼에 대한 강령- 기도하라!
.  영의 기도도 있겠지만, 내가 나의 지정의를 모아 쉬임없이 드리는 기도..
3) 육에 대한 강령- 감사하라!
.  내 몸이 해야 할 일이지. 감사, 또 감사.
영, 혼, 육의 순서도 어찌 그리 딱 들어맞는지..

두번째 연결 고리로 발견한 것은 1장 3절의 믿음, 사랑, 소망이었어.
“너희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말씀에 쓰여진 순서대로 대입해 보자.
1) 믿음의 역사- 영이여, 기뻐하라!
2) 사랑의 수고- 혼이여, 기도하라!
3) 소망의 인내- 육이여, 감사하라!
왜 이렇게 연결되는 지는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알거야.
이 연결성이 진정한 내 묵상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네.

세번째 연결 고리는 요한삼서 2절의 유명한 말씀에서 발견했어.
3대 강령의 실천에 따른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겠지.
사랑하는 자여,
1) 네 영혼이 잘됨 같이 -> 영이 믿음의 역사로 기뻐함의 결과
2) 네가 범사에 잘되고 -> 혼이 사랑의 수고로 기도한 결과
3) 강건하기를 원하노라 -> 육이 소망의 인내로 감사한 결과
그렇지만, 이에 이어지는 총체적 결과는 나의 거룩함이겠지.

그리고, 기쁨과 기도와 감사는 각각 독립된 행위가 아닌 한 묶음이 아닐까?
내 안의 영과 혼과 육이 실질적으로는 하나이듯이,
이들이 행하는 각 부분은 따로따로 노는 것이 아닌 총체적으로 하나의 싸이클,
서로간에 상호 교류, 보충하는 삼중 싸이클이라고 생각해.
그러면서 점차 확대되어 발전해가는 점진적 발전형으로.
이는 마치 땅에서 하늘로 연결된 나선형 회오리와 비슷한 것으로
처음 출발은 작으나, 갈수록 반경이 커지는 하늘 사다리와도 같을거야.

내가 인위적으로 짜 맞춘 것일까? 그럴 수도 있어.
사실 잘 짜여진 신학 이론은 내 발견과는 상관없는 일이야.
그 속에서 깊이 묵상하고 보화를 발견하는 것은 각자의 몫일 테니까.

이제 이번에는 부사로 가 볼까?
세 가지 다른 부사가 절묘하게 엮여져 있지.
항상, 쉬지말고, 범사에..
세 단어의 공통적 특징을 나는 익스트림(Extreme)으로 보았어.
내가 이전에 인용한 ‘사무침’과도 개념상 비슷해.
한 마디로, ‘네 모든 것을 여기에 바치라!’는 뜻이 아닐까?
중간에 적당히 타협할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닐까?
신명기의 쉐마도 비슷한 톤이었지.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그리고.. 목숨을 다하기까지 하라고 그러셨잖아. (마22:37)
올-인(all in), 몰빵, 몰입이라는 표현도 가능하겠네.
내게는 심각한 도전의 말씀이야.

왜 이런 익스트림이 되었을까?
사실 데살로니가서는 절박함이 가득한 서신 아니잖나?
그곳 성도들이 당했던 환난과 고초는 극에 달했지만,
바울 사도는 이들에게 따스한 위로 보다는 종말론적 멧시지를 대신 보낸 거지.
5장 초반에 나타난 때와 시기(1절), 그리고 주님의 날(2절)은 바로 코 앞에 있었던 거야.
그 급박한 시점에 이것저것 가릴 것이 뭐 있을까?
만일 나에게도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한다면..
온 몸을 던져 내가 지향하는 가치에 몰빵해야 되지 않겠나?
실제 우리네 인생은 그런게 아닌가!
예레미야가 이렇게 고백했지 않았는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시도소이다.”(렘3:22-23)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하루하루의 삶을 연장받고 있는 것이지 않는가!
그 절박감과 위기의식을 가지고 이 말씀을 다시 보세.

‘항상’은 시간의 파괴를 전제로 하고 있어.
‘쉬지말고’는 매듭의 파괴를 암시해.
‘범사에’는 영역의 파괴이지.
아니, 파괴가 아닌 초월일 거야.
시간의 초월, 매듭의 초월, 영역의 초월..

내게는 먼저 매듭의 초월이 목에 걸린 듯 꽉 조여왔어.
기도하되,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마치 잠도 자지 말고 기도만 하라는 말씀처럼 들렸지.
혼이 할 일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인 듯 했으나 실제는 아주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애.
물론 늘 기도하는 자세, 기도하는 정신으로 삶을 살면 되는 것으로 여겨도 되겠지만.
쉼이라는 것은 기나긴 여정 중에 잠깐 짬을 내어 ‘중단의 시간’을 가지는 거야.
심심풀이, 여가 선용, 꿀 같은 휴식, 분위기 전환.. 그런 좋은 말들 많잖아?
나무는 나이테가 있고 대나무도 매듭이 있듯이, 우리네 인생도 쉼이 필요하다구.
그런데 이 말씀은 이를 정면적으로 부인하고 있는 듯해.
쉬지말고, 매듭없이, 중단하지 말고 계속적으로 기도하라는 것이잖아.
맞아, 안식일, 안식년.. 기도에는 안식이 없단 말인가?
그래, 바로 그거야. 기도함에는 안식이 필요없다!
왜냐하면 기도 자체가 바로 안식이니까.ㅋㅋ
그러기에 쉴 이유나 매듭을 지을 이유가 없는 거야.

부사의 퍼즐도 어느 정도 풀린 것 같애.
이제 3대 강령에 대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영의 기뻐함에는 그 속성 상 항시성이 내재해 있어.
그러니까 내 영은 기뻐하되,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거야.
혼의 기도는 그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쉬는 행위야.
그러니까 내 혼은 기도하되, 쉬지말고 기도할 수 있는 거야.
육의 감사에는 그 속성 상 모든 영역이 포함되어 있어.
그러니까 내 육은 감사하되,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거야.
괴변 같지 않나? ㅋㅋ 괴변이 아닐 수도 있어.
영, 혼, 육의 본래 속성과 3대 강령의 속성이 합쳐졌기 때문이야.
이것이 묵상의 포인트이지.
단, 주님의 은혜로 이 일을 이룰 수 있음은 기본이겠지?

감사에 대해서는 조금만 더..
범사를 감사하지는 마.
범사에 감사하면 되는 거야.
영어로 얘기하자면,
Don’t thank for everything,
but just thank at everything.
둘 간의 미묘한 차이는 음미해 보면 금새 알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몸이 감사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영, 혼, 육 가운데 육의 위치를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물론 이따금 제멋대로 혼자 날뛰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체로 육은 영과 혼의 통제를 받지.
즉, 내 몸의 상위기관은 내 영과 혼이지.
따라서 몸의 감사는 영과 혼의 감사를 전제로 하는 걸거야.

감사가 3대 강령 중에 마지막인 이유는 그만큼 어렵기 때문일거야.
거룩함은 여러 종류의 다른 크기의 보석들을 수집하는 과정과도 유사하지 않을까?
내가 가진 제일 큼지막한 보석이 영의 기쁨이라면,
중간 크기의 여러 보석들은 혼의 기도일 거고,
자잘하지만 수없이 많은 보석들은 몸의 감사라고 생각해.
내 주위에 있는 주님의 손길들을 하나하나 느끼고 체험할 때마다
나는 여기저기서 감사의 세세한 보석들을 캐낼 수 있는 거지.

동사의 퍼즐, 그리고 부사의 퍼즐..
이제 남은 최후의 연결 고리, 뭔지 알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5:18)
거룩함에 이르는 마지막 퍼즐은 바로 이 말씀에 있지 않을까?
나와 너의 영원한 벤치마크, 우리 주님..
주님의 영은 항상 기뻐하셨어.
주님은 혼은 쉬지않고 기도하셨어.
주님의 몸은 범사에 감사하셨어.
그 분 안에 있을 때 우리의 거룩함은 완성되어 가는 걸거야.
우리가 만드는 거룩의 삼중 회오리- 그 태풍의 눈은 예수 그리스도이시지.

휴우~ 길게도 썼네.
그래도 정리는 한 번 해야겠지?^^

거룩함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야.
거룩하기 위해서는 내 영과 혼과 육을 흠없이 보전해야 해.
3대 실천 강령은 이를 위해 준비하신 주님의 회오리 바람이야.
그 바람 속에서 나는 크고 작은 거룩함의 보석들을 캐어가는 거야.

믿음의 역사로 내 영은 살리심을 받았지.
영이여, 기뻐하라.
영이 기뻐할 때의 결과가 영혼이 잘 되는 거야.
그리스도 안에서 내 믿음이 이를 가능하게 해 줘.
영의 기뻐함은 시간을 초월해.
나의 영이여, 항상 기뻐하라!

사랑의 수고로 내 혼은 새롭게 되었지.
혼이여, 기도하라.
혼이 기도할 때의 결과가 범사에 잘 되는 거야.
그리스도 안에서 내 사랑이 이를 가능하게 해 줘.
혼의 기도는 쉬임의 매듭이 없어.
나의 혼이여, 쉬지말고 기도하라!

소망의 인내로 내 육은 세례를 받았지.
육이여, 감사하라.
육이 감사할 때의 결과가 몸의 강건이야.
그리스도 안에서 내 소망이 이를 가능하게 해 줘.
몸의 감사는 영역이 따로 없어.
나의 몸이여, 범사에 감사하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 거룩함의 영원한 모델이신 주님 안에서..
*

이런, 쓰다보니 또 하나의 QT가 되었구만.
쓰면서 이거저거 잡동사니가 이렇게..ㅋㅋ
널 위로하려고 시작했다가
오히려 내가 쓰면서 자문자답 속에 위로 받고 은혜를 받았구나.
암튼 말씀 안에서 깨달음이 있음이 정말 감사하네.

주님의 평강이 함께 하길..
영의 기뻐함과 혼의 기도와 육의 감사가 어우러지는 거룩함이 너와 내게 함께 하기를..

독일에서 친구가 쓴다.
샬롬을~





(후기)
이 글은 말씀을 가감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을 부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했지, ‘혼아,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이해를 구하고 싶습니다.
이는 저 개인에게 주어진, 제게 임하신 레에마의 말씀이라고.
로고스의 말씀은 영원불변합니다.
그런데 이 로고스의 말씀이 개개인에게 임할 때는 레에마로 임합니다.
레에마는 말씀의 일반적 해석이 아닌 개인적 적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레에마의 말씀은 개인적인 영적 상태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일반론으로 3대 강령의 말씀을 영, 혼, 육으로 해석하자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 가슴에 그러한 뜨거움이 있었기에
저렇게 적용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일면으로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이 뜨거움은 나누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이곳에 올리는 것입니다.
글을 쓰는 중에 깨달음을 주신 성령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 드리며,
그 간절함의 몰입을 매개로 삼게 해 준 친구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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