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법칙] 4부: 내 몸과 같이

조회 수 1293 추천 수 93 2010.09.12 20:41:50



묵상한 말씀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나매 (내용 생략: 제사장과 레위인은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었음)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눅10:25-37)

지난번 ‘축복의 나눔’에 이어 이번에는 ‘사랑의 나눔’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웃 사랑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정답은 명확히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 말씀을 재차 확인시켜 주셨지요. “네 몸과 같이” – 이것이 정답입니다. 그러면, “네 몸과 같이”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이웃 사랑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네 몸과 같이”를 지난 몇 주간 묵상해 왔습니다. 제자반 QT에서도 두차례 다른 말씀을 가지고 다루었습니다.

먼저 위 말씀을 통해서 저는 위의 사랑의 흐름도를 그려 봤습니다. 바로 앞전에 나눴던 축복의 흐름도 기억하시죠?^^ 축복의 흐름도에 대비하여 사랑의 흐름도는 조금 더 복잡하고 순서도 다르답니다.

위의 흐름도에서 차이를 구분할 수 있겠지요? 사랑의 흐름도는 축복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①번: 하나님께서 나와 이웃들에게 사랑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3:16)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은 나만 대상이 아닙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골고루 미치십니다. ②번: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나의 반응 역시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처음 나타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첫째 계명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눅10:27, 마22:37)- 그러니까 하나님 사랑이 먼저입니다. ③번: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내가 그 하나님을 사랑한 사랑을 근거로 하여, 나는 비로소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두번째 계명입니다.(마22:39) 이웃을 사랑하되,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저는 중요한 진리 세가지를 발견합니다.
1) 나의 사랑의 근거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2) 나의 사랑에는 순서가 있다. 첫째가 하나님 사랑이요, 둘째가 이웃 사랑이다.
3) 하나님 사랑의 방법과 이웃 사랑의 방법은 다른 것 같으나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세번째 명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랑을 실천하셨는가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분은 이 땅에 오셔서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십자가 복음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예수님은 “당신의 몸과 같이” 사람들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즉,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말씀은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뜻과 다를 바 없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이 말씀은 더욱 명확해 집니다. 지난 제자반 QT가 진행되었을 때, 제 아내가 이 말씀을 가지고 묵상하다가 말씀의 은혜 체험을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강도 만난 자가 바로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나 자신이요, 또한 선한 사마리아인이 나를 죄로부터 구원해 주신 예수님이시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몸으로’ 보여주신 분은 다름아닌 예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홀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주는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이웃 사랑을 묵상하면서, 제게 개인적으로 주어진 말씀은 특별히 이웃의 과실을 용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6:14,15) 제게 있어, 관계에 금이 가는 최초의 씨그널(Signal)은 이웃의 과실을 발견하고 이에 대응하려는 나의 자세였습니다. 다른 이의 과실을 발견하는 순간, 나는 위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내 속에 있는 심기가 불편해지면서 뒤틀립니다. 어느덧 나는 공격적 성향으로 돌변합니다. 정죄와 비판의 화살을 상대에게 보냅니다.

어찌보면, 이러한 저의 경향은 회사 생활을 오래한 경험의 누적치라 할 수 있겠습니다. 회사에서 업무를 하다보면, 일 중심과 결과 중심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일보다는 사람을 중시하고 일의 결과 보다는 과정을 중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 자체에 집중하다 보면 모든 잣대를 일 중심으로 보게 됩니다. 사람도 일을 위한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때 상대의 허물과 과실이 얼마나 크게 보이는 지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내 눈에는 들보가 있는데도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나무라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형제의 그 조그마한 티가 제게는 들보로 다가오는 것이지요. 실제 들보는 내 눈 속에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 때 내가 한 발자욱 물러서서 바라보아야 할 것은 그 이웃과 나와의 ‘근본적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내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사랑해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내 몸과 같이.. 그러니까, 그의 과실이 바로 내 과실이 되는 셈이지요. ㅋㅋ 내 자신의 과실을 내가 스스로 얼마나 나무라겠습니까? 사랑하고 덮어줘야 하겠지요..

“네 몸과 같이”와 관련하여, 제게 주신 또 하나의 깨달음은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였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중략)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25:31-46)

‘지극히 작은 자’는 바로 나의 이웃입니다. 여기서 제가 주목한 것은 주님께서 ‘지극히 작은 자’와 당신을 동일시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지극히 작은 자와 주님은 ‘신분적으로 같다(Identical)’는 얘기입니다. 바꿔 말하면, 지극히 작은 자와 주님은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요? 일치의 법칙을 기억하시나요? 나의 종국적 목표는 주님과 나의 일치였습니다. 나는 주님과의 일치를 위한 여정을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주님께서 지극히 작은 자, 즉 나의 이웃과의 ‘일치’를 선언하신 것입니다.

물론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이웃을 창조하시고 조성하신 분이 주님이시기에 주님이 그 안에 계신다고 해도 되겠습니다만.. 그리고, 그 이웃을 대신해 또한 십자가 고난을 당하셨기에 주님의 사랑받을 존재로서의 이웃이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주님의 일치 선언은 이러한 근거를 초월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말씀의 선언대로 지극히 작은 자가 주님임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나의 이웃을 바라볼 때, 나는 비로소 “네 몸과 같이”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그것은 나와 주님과의 일치가 있듯이, 나와 이웃과의 일치도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 이웃과 일치하셨다면, 나도 주님과의 일치를 통해서 당연히 이웃과도 일치가 되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 그 내 이웃이 바로 주님이시니까요. 나와 이웃과의 일치.. 이것이야말로 이웃 사랑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네 몸과 같이”는 아래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묵상합니다.

(1)
하나님 사랑처럼 이웃 사랑의 방법도 동일하지요.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만 나오기 때문이지요.
내 이웃의 눈 속에 어마어마한 들보가 있을지라도
내 눈 속의 티 보다야 크겠습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그를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사랑할 수 있답니다.

(2)
내 이웃은 내 몸이지요.
내 몸이 나와 소통 하듯이,
그와 내가 그렇게 소통하지요.
내 몸이 소중하듯이,
그가 그렇게 소중하답니다.
그러기에,
내 이웃은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할 대상이랍니다.

(3)
내 이웃은 주님의 분신이지요
내 이웃은 주님의 몸이랍니다.
그러기에,
내 이웃을 주님의 몸과 같이 섬기고 사랑 해야지요.
왜냐하면,
주님과 나와 내 이웃은 한몸(One identity)이요,
상호간에 일치(Unification)이기 때문이랍니다.

(4)
오, 주님!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사랑합니다.
오, 그대여!
당신도 주님과 같이 사랑합니다.
당신도 내 몸과 같이 사랑합니다.
(그러하기를 진정 원합니다. 아멘.)

하람맘

2010.09.13 01:40:11
*.163.11.235

아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고 내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 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 그러다 보면 온세상은 주님의 사랑으로 밝게 빛날텐데 말입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만 저도 믿고 따르겠습니다...

김순희

2010.09.14 10:39:29
*.160.176.34

축복의 나눔, 사랑의 나눔. 흐름도에도 그런 차이가 있군요.^^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셨는데 왜자꾸만 내 몸만 사랑하려고 하는지...
이웃의 눈의 티는 왜 내 눈의 들보보다 무진장으로 커 보이는지..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감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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