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디지털 신앙

조회 수 806 추천 수 69 2010.10.09 08:15:13

1부: 이진법의 세계


인터넷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회자되는 유행어 중의 하나가 디지털 (Digital)일 것입니다. 너무 흔하게 쓰다 보니 디지털의 본래 의미가 뭔지도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디지털이라 하면 뭔가 극히 현대적이며, 스피드가 있고, 생활에 편리한 그런 개념이라고 막연한 생각들을 하지요.

디지털은 사실 컴퓨터가 탄생하면서 나온 용어입니다. 요즘이야 다들 컴퓨터 또는 PC라고 하지만,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는 ‘디지털 컴퓨터’라고 지칭했지요. 디지털의 반대 개념은 아날로그 (Analog)입니다. 어떤 정보에 대하여, 디지털은 특정한 숫자로 표시할 수 있는 반면, 아날로그는 값으로 나타낼 수 없는 유형입니다. 과거에 다이얼로 거는 전화기가 아날로그 전화기라면, 요즘의 버튼식 전화기는 디지털식이지요.

따라서, 아날로그가 기계식 또는 매뉴얼로 운용되는 것에 반해, 디지털은 컴퓨터에 의한 전자식 또는 자동화해서 움직이는 것들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의 디지털 개념은 컴퓨터에 의해 작동되고 인지되는 이진법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전자세계에서는 전압의 높낮이에 의해 결정되는 디지털 값이 단 두 개만 존재합니다. 0과 1이지요. 컴퓨터의 디지털 세계는 0과 1의 조합으로 모든 것이 운용되고 결정됩니다. 무수한 0과 1의 바이너리 코드 (Binary Code)가 합쳐져, 디지털 컴퓨터에 의해 난해한 계산을 자동으로 하고, 복잡한 프로그램도 돌리고, 인터넷을 통한 실시간 대화도 가능할 수 있게 되었지요.

믿음의 세계도 디지털을 많이 닮았습니다. 아니, 믿음의 세계는 원래부터 디지털입니다.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지, 믿음의 정도는 그 다음의 문제지요. 하나님은 사후의 세계를 단 두 개만 만드셨습니다. 천국과 지옥입니다. 중간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양과 염소의 비유 (마 25:31-46)에서, 마지막 심판 날에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둔다고 말씀하셨지요. 양과 염소의 중간 줄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영부영하는 중간이나 회색지대를 배제하십니다. 디지털의 세계에서 0인지 1인지 자신의 값을 정하듯이,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명확하게 입장을 표명할 것을 주장하십니다.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약1:8)를 싫어하십니다. 매사에 있어서, 우리는 디지털 신앙으로 하나님 편에 설 것인지, 다른 쪽에 설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모세는
복과 저주의 두 가지 선택을
내어 놓습니다. (신12:6, 30:15)
여호수아는
여호와든지 이방사람들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고 도전합니다. (수24:15)
엘리야는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지 말고
여호와든지 바알이든지
진정한 하나님 한 분만 좇으라고 호통칩니다. (왕상18:21)
주님께서는
차지도 덥지도 않는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차든지 덥든지
하라고 경고하십니다. (계3:15)


디지털 세계에서 0이냐 1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해당 전압의 크기로 결정됩니다. 가령 5볼트의 전원의 경우, 전압이 5볼트이면 1이 되고, 0볼트이면 0이 되는 식입니다. 중간에 있는 값들은 센서에 의해 반올림 내지 사사오입의 방법으로 0이나 1의 값을 정함으로써 ‘디지털化’ 시킵니다. 그러니까 0에서 1로 값이 변환되려면 2.5볼트 이상이 되어야겠지요. 이같이 어떤 기준치보다 높아야 값이 바뀌는 전압 수위를 문턱전압 (Threshold Voltage)이라고 합니다.

영적 세계에서 ‘문턱전압’은 나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의의 기준인 율법을 주셨는데, 이 율법의 문턱전압은 ∞(무한대)입니다. 율법을 통하여 의인이 되는 길은 없으니까요 (롬 3:20).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문턱전압을 파격적으로 낮추시고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이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나의 문턱전압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단순한 고백과 믿음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10:9-10)

디지털신앙은 결단의 신앙입니다.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우리의 영적 디지털 신앙은 어떠한지,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물어보고 계십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고후 13:5). 문턱전압인 나의 믿음이 확실한지 지금 이 순간에 점검하여 보십시오.



2부: 하드와 소프트

지난번 디지털 신앙에서는 컴퓨터 연산의 기본인 이진법과 문턱 전압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디지털 세계를 이루는 두 축인 하드와 소프트에 대하여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하드는 딱딱한 것, 소프트는 부드러운 것이지요.

디지털기기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하드웨어 (Hardware)와 소프트웨어 (Software)가 둘 다 필요합니다. 컴퓨터, MP3, 게임기, 핸디 등 우리의 눈에 보이는 각종 디지털 기기는 모두 하드웨어입니다. 이에 대응하는 개념인 소프트웨어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하드웨어를 움직이는 각종 명령체계나 프로그램을 말하지요. 광의의 개념으로 하드와 소프트로 줄여 부르기도 합니다.

컴퓨터를 예로 들어볼까요? 컴퓨터를 살펴보면, 키보드, 중앙처리장치 (CPU), 주기억장치 (Memory), 보조기억장치 (HDD), 동력장치, 모니터, 프린터 등 주요 부품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모든 부품과 기기들이 하드웨어입니다. 컴퓨터 전원을 켜면 하드웨어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리며 모니터 화면에 ‘윈도우’가 뜹니다. 이 윈도우가 소프트웨어인데 컴퓨터의 운영체계를 관장합니다. 인터넷을 하려면 브라우져 (Browser)가 필요하지요? 요즘은 MS 익스플로러가 대부분이지요. 이것도 소프트웨어입니다. 글을 쓰려면 보통 아래한글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것도 소프트웨어이지요.

이같이 디지털의 세계에서는 하드와 소프트가 상호 화합하고 연결되어야 비로소 디지털의 기능이 수행됩니다. 하드 없는 소프트는 무의미하고, 소프트 없는 하드는 죽은 것이지요. 하드는 하드의 역할이 있고, 소프트는 소프트로서의 제 역할이 따로 있습니다.

신앙의 세계도 하드와 소프트가 있다고 믿습니다. 에스겔서 37장을 보면 하드와 소프트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명확히 드러납니다. 마른 뼈들에 대한 환상이지요. 에스겔은 환상중에 마른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를 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마른 뼈들을 변환시켜 큰 군대로 만드십니다. 그 변환과정을 살펴봅니다.

1단계는 하드의 완성입니다. 이 뼈, 저 뼈가 합쳐지고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결이 됩니다. 그 연결된 뼈들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살가죽이 덮입니다. 사람의 모양이 완성되었으나 그 속에 생기는 없었습니다. 즉, 하드는 완벽하게 완성이 되었으나, 소프트가 없어서 동작이 안되는 컴퓨터와 마찬가지이지요.

2단계는 소프트와의 연결입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붙어서 살게 하라." 에스겔이 이와 같이 하나님의 명을 받아 대언했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생기(生氣)란 말 그대로 생명의 기운이지요. 1단계의 완성된 하드에서, 2단계의 소프트가 연결됨으로 생명체가 된 것입니다.

하드가 완성되고 소프트가 연결되어
컴퓨터 프로그램이 돌아가듯이,
신앙의 세계에서도
내가 노력하고 준비해야 할 '하드'가 있고
은혜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인 '소프트'가 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나니" (엡2:8)
하드는 구원에 이르는 나의 믿음이요,
소프트는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드와 소프트가 연결되어 하나가 되듯이,
믿음과 은혜로 구원받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3:5)
하드는 거듭나게 하는 물이요,
소프트는 이를 완성시키시는 성령입니다.
하드와 소프트가 연결되어 하나가 되듯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찌니라." (요4:24 개역개정)
하드는 진리로 예배 드리는 것이요,
소프트는 영으로 예배 드리는 것입니다.
하드와 소프트가 연결되어 하나가 되듯이,
진리와 영으로 예배드립니다.

천재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고 에디슨은 말했습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는
주님이 주시는 99.9999%의 소프트적 역사하심과
나의 0.0001%의 하드적 신앙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드와 소프트가 연결되어 하나가 되듯이,
나의 하드와 주님의 소프트가 만나
‘거룩한 사귐’이 이루어집니다.

나의 0.0001%의 하드는
99.9999%의 거대한 은혜인
소프트 자물쇠를 열 수 있는
조그마한 열쇠입니다.
주님의 위대한 소프트는
나의 매우 조그마한 하드로도
아주 쉽게
열린답니다.

나의 디지털 신앙은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하드적인 나의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온전히 다 이루신 주님의 소프트에
점점 더 단단하게
연결해 나아가는 겁니다.

나의 디지털 신앙의 목표는
나의 하드와
주님의 소프트가
합쳐져서
완전히 맞물려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정순태

2010.10.09 10:32:32
*.75.152.247

형제님의 이번 글은 심히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군요. ㅠㅠ

1부에서는 "난 문턱전압일까?"로 긴장했는데
2부에서는 "3.5인치 프로피 디스켓" 수준인 제 하드웨어가 걱정되었습니다.
.
.
.
그런데 조금 더 읽어 내려가니
0.0001%라는 가르침이 나오더군요.

조금 안심했습니다.
어차피 99.9999%는 주님 책임이니까
3.5인치 용량도 0.0001%는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아무튼, 주님의 소프트웨에 따라 움직이는 하드웨어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감사~

김순희

2010.10.09 11:50:58
*.165.73.38

히~~야!
이렇게 또 해석이 되네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와의 비유..
정말 대단하십니다요.^^

오로지 부어주심으로서만 가능한 은혜이기에
올려드림의 감사도 올려드림의 찬양도 오직 은혜이기에
마음 조아려 엎드려 경배를 드립니다.'
울 하나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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