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일전에 Tim님이 자유 게시판에 올렸던 글입니다만 누구나 다시 한번 꼭 음미해야 할 것 같아서 운영자가 다시 올립니다.
[과학으로 세상보기] 그림자 인생
물체에 빛이 비치면 항상 그림자가 생긴다. 누구나 어릴 때 두 손으로 하던 그림자놀이, 늘 자기를 졸졸 따라다니던 그림자 등의 경험이 있다. 그런데 그림자는 스스로 존재하지 않으니 실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뭔가 눈에 나타나 보이므로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기에 그림자는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의 중간 상태다. 그림자를 다 모아도 빛이나 흑암이 되지 않으므로 그림자는 빛과 흑암 사이의 중간 상태인 것이다.
인간이 사는 세상도 빛과 흑암이 늘 교차하며 겹쳐 있는 그림자 세상이다. 땅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피조물은 다 그림자인 것이다. 그러기에 이 땅의 삶은 천국도 아니요, 지옥도 아닌 그림자 삶일 뿐이다. 인생에서 아무리 좋은 것들만 다 합쳐 놔도 천국이 될 수 없고 나쁜 것들을 다 모아 놓아도 지옥이 될 수 없다. 단지 천국과 지옥의 그림자가 늘 교차하는 스크린일 뿐이다.
그림자는 인간이 땅에서 사는 동안, 즉 흙을 입는 동안만 생긴다. 빛을 받을 수 있는 육신(肉身)이 없어지면 그림자도 없어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림자를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그림자들을 쫓게 된다. 뭔가 진짜인 줄 알고 다른 그림자들을 조합하여 좀 더 크고 멋진 그림자를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아 보이는 그림자들을 다 모아도 실체를 만들 수는 없다. 여전히 시간과 공간 안에서 변하는 또 다른 그림자일 뿐이다. 인생은 결국 육신과 함께 그림자가 사라지게 되는데, 그러기에 흙으로 그림자만을 상대하고 수고한 인생에는 마지막에 무(無)만 남게 된다. 즉 하늘과 땅이 창조되기 전의 상태인 공허와 흑암을 결국 누구나 느끼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땅의 본질은 바로 무라는 스크린에 빛이 비쳐서 나타난 영원한 하늘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그림자다. 그래서 인생의 모든 문제는 결국 그림자의 문제다. 그림자의 크기가 작거나, 모양이 일그러졌거나, 윤곽이 희미한 것 등이다. 그런데 이러한 그림자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오직 그림자의 근원인 빛을 상대하는 것이다. 흑암이나 그림자로서는 처리되지 않는다. 예컨대 빛과의 거리나 밝기에 따라 그림자의 크기와 선명도는 달라진다. 그리고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그 모양도 달라진다. 따라서 모든 그림자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인생의 끝은 허무가 아니다. 무는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라 출발점일 뿐이다. 아무것도 없이 이 땅에 왔기에 그것에서 시작하면 된다. 날마다 빈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빛으로 채워 가는 것이 인생의 참된 지혜다. 솔로몬이 깨달은 지혜도 바로 이것이다. 모든 그림자를 다 거느려 봤던 그였지만 모든 것이 다 변하므로 하늘 아래서는 새것이 없음을 고백했던 것이다.
그림자 인생은 빛을 상대하므로 온전하게 된다. 빛을 상대한 인생은 흙과 그림자가 없어져도 결코 공허나 흑암이 되지 않는다. 빛은 그림자를 있게도 하지만 동시에 에너지를 공급하기에 흙이 있는 동안 빛으로부터 받은 따스함, 즉 사랑이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그림자로 사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사랑으로 살도록 창조되었다. 물론 '나'의 그림자를 위한 자기중심적 사랑이 아니라 '너'를 향해 '나'의 그림자를 벗어난 사랑만이 계속 남게 된다. 그러기에 먼저 빛을 상대하므로 내게 있는 그림자를 없는 것같이 여길 수 있는, 그래서 날마다 무에서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하자. 하늘의 영원한 빛(사랑)으로 우리 주위의 일그러진 그림자를 채워 주고 반대되는 그림자도 품어 줄 수 있는 무공해 인생이 되자. 흙이 없어지기 전에, 그림자에 속아 인생의 쓰레기가 더 이상 쌓이기 전에 미리미리 하늘의 빛으로 그림자 인생을 처리해 가자.
제원호 서울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