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약속대로(?) 춘삼월이 되었으므로 질문 몇가지 더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0^

성경 형성에 관한 양대 이론인 영감설과 편집설에 관한 것입니다.
이 문제는 거의 모든 신학/교리 서적과 대부분의 사이트에서도 빠트림없이 다루고 있으며
목사님께서도 이미 한번 다루어 주신 것입니다.  
저 또한 양 진영의 주장에 대해 상당부분 이해는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도 충분한 설명은 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의문이기도 합니다.

제 의문의 핵심은
성경에 기록된 몇몇 단어들(이어지는 제 견해에 나옵니다만, 단 지명/오늘날까지/여호와의 전쟁기 등등)은
영감설보다는 편집설을 강력하게 증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데에 있습니다.

따라서 잘 알려진 영감설과 편집설의 공방들은 생략하고
저만의 개인적인 의문으로 여기고 있는 아래의 몇몇 단어들을 중심으로
목사님의 견해를 부탁드려 봅니다.

좀 길지만
제 생각을 올려 드리겠습니다.


*************************************************************************8

편집설의 증거(?)(1) - ‘단’ 지명에 관하여.

  ○ 성경 형성론은 크게 영감설과 편집설로 나뉩니다. 복음주의계열은 영감설을 받아들이고 있고, 자유주의계열은 편집설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 신학적으로 영감설과 편집설은 나름대로의 주장을 제시하고 있으며 중요한 쟁점들은 웬만한 신학/교리 서적을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신명기 34장으로서, 모세가 오경을 기록했다고 한다면, 모세 자신이 자신의 죽음 이후를 기록한 것이 되어 대단한 모순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잘 알려진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성경난제’를 다룬 참고서적들이 많으므로 참고하시면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성경대로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성도라면 당연히 영감설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우리의 기대와 달리 편집설의 우세를 보증하는 듯한 묘한 부분들이 제법 있습니다. 기대와 다른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사실 성경연구에 제약을 받는 평신도가 영감설/편집설을 제대로 알아본다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며 최선을 다해 살펴보는 것까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간 성경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의문시되었던 몇몇 부분들을 정리해 보고 나름대로의 이해를 도모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써 단(Dan) 지명(地名)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 우리나라를 표현할 때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라는 말을 사용하곤 합니다. 이 말은 백두산으로부터 한라산까지가 대한민국 국토에 포함된다는 뜻이며 상징적으로는 한민족 자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 성경은 이스라엘을 지칭할 때도 이와 비슷한 표현을 씁니다. “단부터 브엘세바까지”라는 표현이 그것입니다(삿20:10, 삼상320, 삼하3:10 등). 단은 이스라엘 최북단 국경이며 브엘세바는 최남단 국경인 것입니다.

  ○ 성경에서 지명 ‘단’이 최초로 나타나는 곳은 창14:14절입니다. 가나안 제국들에 의한 국제전쟁으로 인하여 롯이 포로로 잡혀가자 아브라함이 자기가 기른 사병 318명을 이끌고 여기까지 추격하여 조카를 구출해 내었다는 내용입니다. “단까지 쫓아가서”
   - 이곳에 기록된 단이라는 지명이 문제가 됩니다. 아브라함 시대에는 ‘단’을 ‘단’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뭔가 다른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브라함이 단까지 쫓아갔다고 기술함으로써, 성경이 후대의 편집일 가능성을 상당히 높여주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하겠습니다.
   - 이 사건은 아브라함이 몇 살 때 일어났을까요? 정확한 연도는 추론할 수 없으나 개략적인 시기는 추정해 낼 수 있습니다. 즉, 이때는 아브라함이 75세에 가나안 땅에 정착한 다음, 기근 때문에 애굽으로 피신했다가 아내 사라 문제로 시험 당하고 다시 가나안으로 복귀한 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아울러, 86세 때 애굽여인 하갈을 통해 육신의 아들 이스마엘을 낳기 전의 사건입니다. 한마디로 75세에서 86세 사이에 일어난 사건으로서, 편의상 80세에 발생했을 것으로 간주하도록 하겠습니다(어떤 학자는 84세 때의 일로 보기도 합니다).

  ○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단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족장시대도 지나고, 애굽생활도 벗어나고, 광야생활도 마치고, 여호수아에 의한 가나안 정복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이제 바야흐로 사사시대가 도래된 시점에 가서야 겨우 ‘단’이라는 지명이 명명되게 됩니다. 12지파 가운데 하나인 단 지파가 자신들의 기업을 북쪽으로 확장하면서 새로 정복한 마을에 붙인 지명이 바로 ‘단’입니다. 이때까지 가나안 사람들은 이곳을 “라이스”(삿18:7, 14, 27, 29). 또는 “레센”(수19:47)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무튼 ‘단’이라는 지명은 상당히 후대에, 원래의 ‘라이스 또는 레센’을 개명한, 새로운 이름입니다.

  ○ 그러면, 성경에 단이라는 지명이 최초로 기록된 시기(아브라함 시대)와 실제 지명이 명명된 시기(가나안 정복시대 후기)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시차가 날까요? 위에서 추정한대로 롯의 포로사건이 아브라함 80세 때의 일이라면, 이는 야곱이 애굽으로 이주하기 210년 전입니다(이삭을 낳기까지의 20년 + 이삭과 야곱의 나이 차이 60 + 야곱의 나이 130). 여기에다 애굽 종살이 430년과 광야생활 40년을 더하면 총 680년이라는 시차가 계산됩니다. 또 여호수아에 의한 가나안 정복기간 후기, 단 지파가 이 지역을 얻어 지명을 붙이기까지 소요된 약 15년의 기간도 포함시킨다면 총 695년의 시차가 있다 하겠습니다.

  ○ 아브라함 시대의 사람들은 약 700년 후에 붙여질 ‘단’이라는 지명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단까지 쫓아갔다.”는 기록은 납득하기 어려운 표현입니다.

  ○ 혹시, 창세기는 모세가 기록했으니까 모세시대에는 단이라는 지명이 존재했을 것으로 기대하신다면, 이 기대 또한 대단히 무리한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물론 성경은 모세시대에도 단이라는 지명을 기록해 놓고는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신34:1).라는 말씀은 모세가 죽기 직전, 가나안 땅을 보여주시며 기록된 말씀입니다. 이 시기도,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단이라는 지명이 명명되기 약 15년 앞선 시기입니다. 모세는 단이라는 성읍이 있는지 없는지 알지도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마치 모세가 단이라는 성읍을 알았던 것처럼 기록해 놓고 있는 것입니다.

  ○ 나아가, 이삭이나 예수님처럼 태어나기 전에 미리 이름을 알려주신 경우와 특히 약 200년 전에 예언해 주신 고레스의 경우(사44:28)를 들어, ‘단’ 지명도 미리 알려주셨을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단’을 이와 같은 경우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 같습니다.  

  ○ 따라서, ‘단’이라는 지명만 놓고 본다면, 지명 자체가 모세 사후에 명명되었으므로 모세오경은 모세의 기록이 아니라는 주장이 일말의 설득력을 얻는다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후대의 첨가일 가능성은 있다고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 의문 : ‘단’이라는 지명으로 볼 때, 모세오경의 편집설이 더 신빙성이 높은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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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설의 증거(?)(2) - ‘오늘날까지’ 등

  ○ 오늘은 편집설의 우세를 보여주는 것처럼 생각되는 부분에 대한 2번째 검토로써, 몇 가지 단어들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 먼저, 성경에 기록된 “오늘날까지”라는 단어를 살펴보겠습니다.
    - 성경에는 ‘오늘날까지/오늘까지/이제까지/지금까지’라는 표현이 약 100여 회 나오는 것으로 검색됩니다(구약 95여 회, 신약 10여 회 등). 물론 이 숫자는 정확한 회수는 아니고 단순 검색한 결과일 뿐입니다.
    - 문제는 이러한 단어들이 기본적으로 어떤 사건이 발생한 이후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경우라야 사용될 수 있는 단어라는 점입니다. 즉, 사건발생 당시에는 사용하기가 적합하지 않은 표현인 것입니다.
    - 창세기는 필연적으로 모세가 편집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창22:14; 26:33; 32:32; 35:20절 등에 나오는 ‘오늘까지’라는 단어는 어느 정도 이해의 여지는 있을 것입니다.
    - 그러나 신34:6 및 수7:26절에 나오는 ‘오늘날까지’는 쉽게 이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죽은 이후의 어느 시기를 말하는 것인지, 아간의 돌무덤이 생기고 난 이후 어느 시기를 말하는 것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는 말인 것입니다.
    - 결국, ‘오늘날까지’라는 단어는 사건발생 당시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만, ‘정확히 얼마 후의 기술이냐’의 문제가 쟁점입니다.
    - 한마디로, ‘오늘날까지’라는 단어의 의미로 미루어 본다면 사건발생 후의 일정 시간이 경과한 시점에서 기록한 것으로 보는 것이 논리적이므로, 편집설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듯 합니다.

  ○ 다음은, 책 이름과 관련된 사항입니다.
    - 민21:14절에 “여호와의 전쟁기”라는 책이 나옵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오래 전에 실전된 책으로서 아마도 ‘적군과의 싸움에서의 승리를 축하하는 노래를 모아놓은 책’일 것으로 추정됩니다(수10:13절의 “야살의 책”도 비슷한 종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 문제는 이 책의 저술시기입니다. 민21장이 기술되는 시기는 가나안 정복전쟁의 전초전격인 아모리(시혼 왕)와의 전쟁(민21:21)을 치르기 전이었습니다. 이 전쟁 이전에 아말렉과의 전투를 경험하기는 했지만, 아직 본격적인 전투를 많이 경험한 시기는 아니었습니다. 비록 홍해사건에 관한 모세와 미리암의 찬송시(출15:1, 21) 사례가 있다고는 하더라도, 겨우 두세 차례의 전투경험을 가지고 “여호와의 전쟁기”라는 승전가 모음집을 만들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차라리 “여호와의 전쟁기”는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기를 망라한 승전가 모음집으로 보는 것이 훨씬 논리적이며, 그렇다면 이 책들은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대의 저작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는, 이러한 추정이 맞는다면, 민수기는 모세의 저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후대의 저작임을 증거 한다는 것입니다. 즉, 모세가 아무리 예지능력을 지녔다 하더라도 수십년 또는 수백년 후에 발간될 노래책의 이름까지를 인용하여 민수기를 기록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결국, 민수기에 기록된 “여호와의 전쟁기”나 여호수아서에 기록된 “야살의 책” 등은, 민수기와 여호수아서가 모세나 여호수아의 기록이라기보다는 후대의 저작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후대의 첨가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임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민36장은 슬로브핫이라는 사람의 다섯 딸들에 관한 기사입니다. 슬로브핫은 아들없이 광야에서 죽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기업배분에서 제외되었으나, 슬로브핫의 딸들이 모세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모세는 탄원의 타당성을 인정해 줌으로써, 땅을 분배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민27:1-11).
    - 딸들에게 땅을 분배한 것은 모세가 죽기 직전이었으며(약속 차원) 이때 당시 딸들은 분명 미혼이었습니다. 그런데 36:12절은 “…시집 간 고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민27장과 32장을 연이은 기록으로 볼 수도 있는데, 곧이어 ‘시집갔다’는 표현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5명 모두 시집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 표현은 모세 사후, 그것도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대의 기록으로 보는 것이 논리적일 것입니다.  
    - 또 12절은 “…그 기업이 그 아비 가족의 지파에 여전히 있더라.”라고 설명되고 있습니다(약속의 실현 차원). ‘여전히’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단어는 현재시점에서 미래를 표현할 때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현재시점에서 과거를 향하여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인 것입니다. ‘여전히’라는 단어는, 슬로브핫의 딸들이 모세로부터 땅 분배의 약속을 받고 수십 년이 흐른 후, 결혼도 하고 땅도 후손에게 넘겨주었을 때,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그런 단어인 것입니다.
    - 위 내용을 분석해 보면, 상황발생 당시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 기록한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며, 결국 이는 민수기의 저자는 모세가 아니라 후대의 사람일 가능성을 제기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출16:34절의 “증거판 앞에 두어”라는 말씀도 무척 곤혹스러운 표현입니다. 편년체식 기록법으로 본다면, 출20장에 가서야 십계명을 받게 되고 이를 보관할 언약궤는 출37장에 가서야 제작됩니다. 따라서 출16:34절은 기전체식 표현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편년체식 개념으로는 이때는 아직 증거판이 없었습니다. 이 구절도 편집설의 우세를 증거하는 구절이 되는 것 같습니다.

  ○ 출16:35절의 “이스라엘 자손이 사람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40년 동안 만나를 먹되”라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만나를 먹기 시작한 당시의 정황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만나 취식 총 기간을 망라한 표현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가 모세의 저작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상황발생 당시 기록하는 방법이 아니라 사건발생 이후에 기억을 더듬어 정리하여 기록하는 방법임을 나타내는 구절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 민9:15-23절은, 성막 위에 임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백성을 인도하는 모습을 기술하고 있는데, 15절의 분위기상으로는 그 시기가 출애굽 직후(제2년차=출9:1)로 보이지만, 16-23절은 40년을 망라하여 표현되고 있습니다. 출발(출10:11)도 하기 전에, 40년간의 여정을 미리 기술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부분도 먼 훗날, 회상에 의존한 기록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위의 몇몇 구절들은 모세가 임종직전 기억을 더듬어 기록했다고 한다면 그런대로 이해되기는 하겠지만 설득력이 약하고, 몇몇 구절들은 설명 자체가 불가하다 하겠습니다.  

  ✳ 신약성경은 물론 구약성경에도 영감설을 지지하는 표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출24:4;신27:8 등등). 그러나 오늘 의문은 편집설의 가능성을 짚어보는데 있으므로, 영감설 부분은 의도적으로 배제시켰습니다. 의문해소가 목적일 뿐, 영감설의 부인이 목적은 아닙니다.    

  ☞ 의문 :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의 몇몇 단어 및 구절들은 영감설보다는 편집설을 증거 하는 것처럼 보이므로, 모세오경의 편집설이 더 신빙성이 높은 것은 아닐까요?



이준

2006.03.02 13:51:34
*.50.254.31

편집이라는 말이 창1장을 모세가 마음대로 짜집기 했다는 말인지요 ?

예컨대 다른 사람의 설교를 모아서 짜집기 하듯이 ?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지으신 분이시며, 그 지으신 마음도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시는 것 아닙니까 ? 모세가 편집
하였다 하여도 하나님의 감동으로 편집하였지 인간 모세의 마음대로 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

운영자

2006.03.02 17:36:14
*.108.165.12

이준 목사님! 질문자의 의도를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
편집했다는 표현의 요지가 모세가 짜집기 했다는 것이 아니라
후대 사람들이 여러 소스의 자료를 모아서 기록한 것이 아니냐는 뜻입니다.
모세오경 문서설에 대한 기독교의 정당한 변증을, 특별히 문제가 되는 몇 구절에 대해
듣고 싶은 것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샬롬!

정순태 집사님 조금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계시지요?

이준

2006.03.03 00:33:03
*.50.254.31

아 . 그렇군요. 베드로처럼. 성미만 급하다니까요 .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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