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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나타
| 現代文보기 | 原文보기 | 성서조선 第 110 號 (1938年 3月)
고린도 전서를 끝마칠 때에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면서 의외의 중대한 진리 한 구절을 삽입하였다. “만일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거든 저주를 받으라. 주께서 강림하시느니라” (16:22).
여기에서 ‘주께서 강림하시느니라’ 는 것은 의역이요 본래는 마라나타 () 라는 간단한 단어이다. 문법적으로 보자면 ‘주께서 강림하시느니라’ 라고 미래형으로 번역할 수도 있고 ‘강림하셨다’ 라고 과거형으로 번역할 수도 있는 히브리어의 특성이 있기때문에,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할 때에도 이 단어만큼은 원래의 발음대로 옮겨 적기만 하고 번역하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 벌써 관용적으로 널리 쓰이는 말이 되었기에 ‘마라나타’라고만 하면 기독교 신도들 사이에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강렬한 의미를 전하는 단어였다.
그래서 그리스어로 쓰여진 바울의 편지에도 이 단어만큼은 마라나타(MARANA THA)라고 발음대로 적었다. 기타 유럽 각국의 번역이 모두 그렇다. 부활 후에 나타나신 주 그리스도의 현림(現臨)과 장차 실현될 재림(再臨)을 동시에 표현하는, 주 예수의 재림이 눈 앞에보이는 듯한 생생하고 강렬한 신앙의 단어이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에서 한 인물을 택하라면 그것은 틀림없이 모세일 것이요, 신약에서 또한 한 사람을 택하라면 주 예수를 제외하고는 바울을 추천하기에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새 시대의 역사학자인 H.G.웰스(Herbert George Wells, 1866.9.21~1946.8.13)는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천지가 개벽한 이래 인류 가운데 제 1인자에 나사렛 예수를 꼽을 수밖에 없었다 하는데, 그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데 생명을걸고 신약에 나타나는 인물이 있으니 그가 곧 천막을 만들던 다소 출신의 바울이다.
신약성서 가운데 그 양으로 보아서 50% 이상이 바울과 그를 따르던 이들의 손에 쓰여졌을 뿐더러, 그 내용, 정신, 사상, 신학의 체계, 구성 등으로 보아서 학자들이 예수의 종교와 바울의 종교를 구분하고자 노력하리만큼 바울이라는 인물은 다른 사도들에게 비하여도 탁월하고 출중한 존재였다. 그 학식은 가마리엘의 문하에서 수련한 것이요, 그 기개는 천하를 삼키고야 말 대장부였다.
이런 쾌남아 바울의 근본사상, 기반신념은 무엇인가? 곧 ‘마라나타’ 이다.
고린도 교회에 대한 많은 권면의 설교, 때로는 신도간의 분쟁과 파당에 대해 꾸짖어 가르치고, 때로는 그들의 패륜행위를 경계하며, 처녀는 처녀대로 과부는 과부대로 살기를 권면한 것도 모두 ‘마라나타’ 때문인 것이다.
권리가 있는 사람도 없는 듯이, 타인의 이익을 위하여 아가페의 생애를 살아야 할 것은 ‘마라나타’ 인 까닭이다.
‘주께서 강림하신다.’ 이 한마디가 모든 문제해결의 열쇠이다.
비록 바울이 간 지 2,000년이라 할지라도 신앙이 신앙일진대 우리에게도 오늘 ‘마라나타’ 이다. 이미 당한 어려운 문제들도 앞으로 일어날 모든 근심과 고통들도 모두 ‘마라나타’ 로써 재단(裁斷)할 것이다.
그리고 바울의 뇌세포의 건전성을 의심하는 이는 스스로의 뇌수(腦髓)를 다시 한 번 어루만져 볼지어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