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경 책은 오류가 있습니다

조회 수 2231 추천 수 350 2006.08.08 05:08:11

   모든 사본은 조금씩 다르다..

  원본은 ? 없읍니다 !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원본이다.

  번역본들은 어떤가 ? 다 다르다. 즉 다 틀리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신데 조금씩은 다 틀린 성경들을 인간들에게 읽게 하시고 계신가 ?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마음을 지으셨고, 마음을 주장하셔서 이끌어 가고 계신다.
      때문에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시라"
      이것은 천국에 들어갈 자들이나 지옥에 들어갈 자들에게나 동일한 말씀이시다.

  모든 성경이 조금씩 다 틀린 이유는
     첫째 천국에 들어갈 자들에게는 그들의 안에 계신 성령하나님이 틀린 것을 알게 하시므로 올바른 것을 찾아
            믿게 하시며
     둘째 지옥에 들어갈 자들에게는 틀린 것을 옳다고 믿게 만드시어 지옥에 들어 가게 하시는 것이다.  이들을
            예수님은 마귀가 심은 가라지라 하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성경책이 다 조금씩 틀리더라도 창세전에 예정하시고  성령하나님이 거하시는 참 성도는
         충분히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귀있는 자들은 들을 지어다.
귀는 다 있지만 귀구멍이 막힌 자들은 들을 수 없다.

김유상

2006.08.09 04:13:30
*.170.40.27

이준 목사님, "모든 성경이 틀리다"란 말씀은 잘못 쓰신 것이 아닌지요? 혹시 "다르다"와 "틀리다"를 같은 말로 혼용하고 계시지 않나 생각 드는군요. 모든 역본은 서로 조금씩 다릅니다. 하지만 모든 역본이 (성경이) 틀리지는 않지요. 물론 원본은 없고 사본만 있지만 그 사본들에서 발견되는 오류 (틀림)는 거의 무시할 정도이며, 그나마도 기본적인 교리의 의미에는 하등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반기독교인들은 성경이 틀리다고 주장합니다. 틀리므로 믿을 수 없다는 거지요. 그런 주장에 동의하실 리는 없을 것이니, 그 말을 잘못 표기하신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김 계환

2006.08.09 18:37:28
*.41.229.41

목사님께서 요즘 제가 고민해오던 문제를 제기해 주셨네요 저의 의문은 분명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전하시다고 하셨는데(시 12:7 ) 왜 scribal errors를 허락하셨는가 하는 점이었지요 많은 고민과 research끝에 목사님과 유상집사님이 말씀하신것과 비슷한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계속 고민중에 있습니다 textual criticism을 거친 많은 신학자들의 노력의 결과로 우리는 현재의 성경을 가지고 있지만 manuscripts에는 분명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Greek texts만 보더라도 5300개 이상의 manuscripts가 현존한데 이중 majority text인 Byzantine texts(현존하는 것들의 약 95%차지) 사이에서 만도 1800여 가지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King James Bible 이 번역된 Masoretic Text와 Textus Receptus만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보존된 것들이라고 주장하기고 하고(KingJamesOnlyMovement) 하나님의 영감으로 보전된 copy는 theological circle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이집트와 영국의 museum에서만 발견된다는 이야기도 있고 ...
저는 이렇게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결론은 잠정적입니다 왜냐하면 검증되지않은 제 개인적인 research를 거친 제 자신의 소견이기 때문입니다
우주가 하나님으로 창조되었다는 성경의 선언은 과학적으로 분석해보아도 진리임이 분명합니다(이에 관한 많은 서적과 인터넷의 웹싸이트는 잘알려져있습니다) 열두 제자들의 변화된 모습으로 증명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성경의 증거가 다른 어떠한 종교의 가르침보다 superior하며 성경만이 진리임을 너무나 확실하게 웅변합니다(세계관을 분별하라-안점식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성령의 가르치심으로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지만 늘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이 시험은 말씀을 통하여 오기도 합니다 다시 말씀드려 한 구절의 성경말씀이 두가지 이상으로 해석이 가능하도록 기록하셔서 우리의 마음이 어느곳으로 향하는지 시험하신다는 말임니다 그래서 우리는 관련된 모든 성경의 말씀을 조화시켜서 한 결론을 내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과 성경말씀을 비교하여(고전 2:13) 교리를 정립함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하신 scribal errors로 인하여 이것의 한계를 두셨습니다 우리가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뜻의 큰 줄기는 잡을 수 있지만 모든 부분에서의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은 숨겨놓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인간은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도록 창조된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구체적인것까지도 안다고 하면 우리는 극단(이단)으로 흐르게 됩니다 성경의 말씀이 perspicuous(명료)하다는 말에 동의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귀가 없으면 우리는 성경을 이해하지 못하며 순종할 수는 더욱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수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또한 구원은 성경말씀을 이해함(깨달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들음에서 온다는 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위로가되는 말씀입니다(롬 10:17)

김 계환

2006.08.09 20:17:16
*.41.229.41

"모든 부분에서의" 의 모든 은 "작은 가지"의 의미입니다(제 글쓰기가 서툽니다)

김유상

2006.08.09 23:19:51
*.170.40.27

김계환 형제님, 제가 공부를 더 해보겠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고자 일부러 중의법을 사용하여 말씀을 하셨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말을 애매하게 해놓고선 너가 어떤 식으로 해석하나 보자란다면, 이건 좀 심술맞고 어딘가 비뚤어진 사람같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선 때로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험은 우리를 골탕먹이고 혼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온전히 따르게 하기 위한 연단이고, 우리로 하여금 우리 신앙의 수준 즉, 말씀에 대한 순종의 수준이 어디쯤 와있는지 스스로 점검케 함으로써 더욱 말씀 순종에 정진케 하기 위함이라 믿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하나님께서 당신 말씀에 함정을 파놓았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물론 일견 이 말씀인지 저 말씀인지 분간키 어려운 말씀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선 의도적으로 아무나 알아 듣지 못하도록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시기 위해 그리 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는 그 비유를 풀어 주셨습니다. (막4:34) 즉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당신 양이 아닌 사람들에겐 그 말씀의 참뜻을 감추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 양에겐 그 말씀을 제대로 알려 주셨고 지금도 알려 주십니다. 너희가 제대로 알아 들으면 내 양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니라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들음에서 온다고 인용하셨는데,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롬10:10) 또 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17절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깨달음과 들음을 구별하시려 했는데, 이 들음은 단순한 들음이 아닙니다. 귀있는 자는 들을지어다의 들음이요 들은 것에 대한 반응이 요구되는 들음입니다. 즉 깨달음과 순종이 포함된 들음인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말씀의 본 뜻을 알고자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는 겁니다. 바른 깨달음에서 바른 순종이 나올 것이니까요.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무리에 든 자들입니다. 더 이상 우리에겐 당신 말씀을 감추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겐 자상하게 설명해 주십니다. 긴가 민가 하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물론 아직 우리의 수준이 미치지 않아 설명을 못해 주시는 말씀들도 많이 있습니다. 셈본을 알아야 대수를 배우고 대수를 알아야 미적분을 배울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일부러 성경에 오류를 두셨다는 생각, 재고하시길 존경과 사랑으로 권합니다.

김 계환

2006.08.10 03:12:01
*.41.229.41

유상집사님 감사합니다 제가 내린 잠정적인 결과에 대한 구체적인 예들이 좀 필요한 듯 하네요
먼저 댓글에 대한 저의 생각을 간단하게 말씀드리지요 롬 10:10의 "시인"의 의미는 '예수님과 동일한 마음을 갖는다'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들을때 지적인 동의는 즉시로 가능할지라도 온전한 순종에 이르는 전 인격적인 변화는 금방 나타나기가 어렵지요?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계속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때에 우리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거듭남)이 선행되야 한다고 이해합니다 들을 수 있는 귀를 하나님이 주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집사님 식으로 이 구절을 해석하면 내 구원에 나의 "자유의지"가 동원되어 내가 자신의 구원을 시작시킨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의 선물로서의 구원(엡1,2장....)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이해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죄로 죽어있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응답할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선언아닙니까?(롬 3장, 엡2장 등등...) 한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좋은 예 입니다 행16:31 주예수를 믿으라는 명령도 원죄로 죽어있는 우리의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책임추궁으로서 이해 할 수가 있습니다
한가지더 예를 들어보죠 딤전3:15의 해석입니다 The pillar and ground of the truth가 교회로 해석할 수도 있고 하나님으로 해석할 수도 있도록 Greek원어가 쓰여있습니다 만약 교회라고 해석하면 천주교처럼 교회가 영적인 해석과 결정에 절대적인 결정권을 가지게되는데 그럼 어느 교회가 진짜 입니까? 당연히 하나님으로 해석해야 하지않을까요?
이러한 예는 성경에 더 많이 있습니다
또한가지 성경의 비유에 관하여 말씀하셨는데 성경에 나와 있는 많은 역사적인 기록들과 이야기들을 비유로 이해하고 해석하느냐 마느냐 이또한 참으로 어려운 말입니다 저는 비유로 보고 그렇게 이해하고 영적인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이런 식으로 성경을 접근하면 참으로 오묘한 성경의 깊은 뜻을 종종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일부러 우리를 골탕 먹이기위해 성경에 오류를 두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저는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을 그대고 받으며(scribal errors를 포함하여) 모두를 조화시켜 믿음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보존하실때 인간의 오류를 허락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메세지는 완전하게 보존하셨습니다!

김유상

2006.08.10 06:15:41
*.170.40.27

계환 형제님, 말씀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으나 옳바른 해석은 하나 뿐이라는 견해는 다행히도 우리 둘이 서로 일치하는 듯합니다. 그 옳바른 해석에 도달하기 위해 주어진 말씀을 그대로 받고 모두를 조화시켜 믿음으로 이해하자는 말씀 또한 저도 동의합니다. 제가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은--어쩌면 제가 형제님의 말을 잘못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향방을 시험하시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말씀을 모호하게 주셨다는 곳입니다. 아직 제 성경지식이 짧은 탓이긴 합니다만 그 주장의 근거를 아직 발견치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마가복음 4장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당신 백성들에겐 당신의 뜻을 정확히 알게 하실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형제님께선 깨달음에 대한 제 말을 오해하신 듯한데, 전 하나님께서 허락치 않으시면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 말씀을 깨달을 수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말씀은 깨달아지는 것이지 깨닫는 것이 아니더란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들을 귀를 주셔야만 말씀이 제대로 들리는 겁니다. 제대로 들린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명확히 알 수 있다는 말 아닙니까? 다시 말해 그 말씀이 깨달아지더란 얘기가 아닌지요? 그러니까 더 핑계 못대고 순종할 수밖에 없게 되는 거지요. 그러니까 지금 저는, 제가 제 구원을 이루려 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노라는 형제님의 지적과는 달리, 오히려 우리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겐 당신 말씀을 명확하게 깨우쳐 주실 거라고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그 때는 다를 겁니다. 그런데 제가 동의할 수 없는 형제님의 주장은--우리의 마음이 어느 곳으로 향하는지 시험하시기 위하여 두 가지 이상으로 해석이 가능하게 성경 말씀을 주셨다는--어쩌면 형제님께서 피하고자 하는 그 오류쪽으로 형제님을 몰고갈 위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깨우쳐 주시는 것이 아니라 형제님께서 그 여러 해석 중에 선택할 책임을 주셨다는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곁가지입니다만, 롬10:10의 "입으로 시인하여"란 말씀은 문자 그대로 받으심이 옳은 듯합니다. 눅9: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는 말씀과 병행하여 보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이지 않기에 핍박당할 위험이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핍박자들이 믿는 사람들을 잡아 사자밥으로 만드는 것을 알면서 입으로 주를 시인하는 것 참으로 어렵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가 주를 시인할 수 있는가란 질문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구원의 마지막 단계로 보시면 즉, 마음으로만 믿다가 당당하게 십자가로 나가는 단계에까지 이르면 그때는 우리의 구원이 대미를 장식한다는 뜻으로 받아 들이면 문제될 것이 없을 겁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때에 우리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을 거듭남이라 하신 부분입니다. 저는, 거듭남은 구원의 종점이 아니라 출발점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는 딤전3:15 말씀의 '진리의 기둥과 터'는 교회로 보셔야 할 듯싶습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기둥과 터이기보다 진리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형제님의 해석으론 "이 집은 진리의 기둥과 터인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니라"라고 번역되어져야 마땅할 것인데, 그렇게 되면 이 구절의 주체(main focus)가 하나님이 됩니다. 하지만 이 구절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라고 시작한 것으로 미루어 교회를 주체로 보아야 합니다.

이것을 교회라고 해석하면 교회가 영적인 해석과 결정에 절대적 결정권을 갖게 된다는 줄긋기는 잘 납득되지 않습니다. 저는 교회가 진리를 수호하고 전파하는 사명을 맡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형제님의 정의와 견해도 궁금하군요.

김 계환

2006.08.10 18:01:48
*.41.229.41

이토론을 통해 제가 더욱 하나님을 알고 그 분께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원하면서 유상집사님의 의견에 답을 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는 것(롬10:9-10)이 그냥 입으로 이야기한다기 보다는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그 믿음으로 화답하며 예수님을 내 구주라고 인정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이 고백이 꼭 사람들 앞이 아닐 수도 있겠죠) 자신이 입으로 선언하더라도 그 고백에 대한 믿음의 상태는 자신과 하나님만이 알것입니다 제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제가 "죄인의 기도"를 따라 했을때 내속에 진정한 믿음은 없었습니다 한참 세월이 흐르고나서야 내 속에 믿음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지더군요 여기에서의 시인은 핍박당할때의 자기신앙의 선언이라기 보다는 예수님의 구주되심에대한 마음깊은 곳으로부터의 고백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거듭남은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요 구원의 출발점이자 완성이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구원은 취소될 수 없다고 믿기때문임니다(물론 이것은 영혼의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육신의 구원은 예수님이 재림하실때 완성되겠지요)
저의 교회의 정의는 박 진호 목사님과 같습니다 헌데 한가지만 더 말씀드리면 현재의 organization으로서의 교회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있기에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딤전 3장의 교회는 organization을 말씀하고 있지요? 하나님이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될때 성경의 권위가 세워진다고 생각합니다 그 교회의 교단의 권위가 아니라 감사

김유상

2006.08.11 02:44:03
*.170.40.27

"입으로 시인"을 예수님의 구주되심에 대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의 고백이라는 형제님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 고백이 꼭 사람들 앞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공개적 고백없이도 믿음을 지니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공개적 고백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아집니다. 세례를 받는 것이 바로 그 한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례를 받지 않았다고 하여 믿음이 없다 말할 수 없고 구원을 못받는다 말할 수 없음은 형제님께서도 그리 알고 계실 겁니다.

"입으로 시인하여." 사실 굳이 입에만 국한시킬 것은 아니겠지요. 어떤 형태로든 시인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무엇으로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굳이 "입으로" 시인하여 라고 쓴 까닭은, 그 시인이 공개적인 시인에까지 다달아야 함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보아집니다. 그럼 왜 사도 바울은 공개적 시인을 강조하고 있을까요? 그것도 예수 믿는 도를 따르는 자들에 대한 핍박이 강도를 높여 가는 때에 말입니다.

신구약을 통틀어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공개적인 믿음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하니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당신의 애정을 공공연하게 표현하셨고, 우리 또한 당신을 공공연하게 믿고 따르라 하십니다. 설령 조롱과 핍박과 환란과 심지어 죽음이 따를지라도 그렇게 하라 하십니다. 그리하면 당신께서 후일 우리를 부끄러워 아니 하실 것이며 우리를 높이실 것이며 우리에게 영생을 주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에 따라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고 그의 후손들인 이삭과 야곱과 이스라엘 민족이 그리 했습니다. 베드로가 이 "입으로의 시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세 번이나 놓치고 대신 세 번의 부인을 한 유일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으나, 우리 모두 아는 바대로 후일 그는 마침내 주를 입으로 시인함으로 죽임을 당합니다.

바울은 스데반의 죽음을 결코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야고보의 죽음도 전해 들었고 자신과 동료들도 몇 차례나 죽음의 문턱을 넘나 들었습니다. 로마서가 쓰여진 시기는 아직 기독교인에 대한 핍박이 극에 달하기 전이긴 하나, 믿음으로 인하여 고난받는 제자들의 얘기도 전해 들었을 겁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정말이지 죽기로 작정하지 아니 하고는 할 수 없는 일이란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 그가 지금 로마 교인들에게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 하리니"라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도 바울이, 우리 믿음의 수준이 거기까지 가야 한다, 그러니 그 자리, 그 수준에까지 자라 가라는 강한 권면으로 이 말씀을 받고 있습니다. 예, 참 힘든 주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선 이보다 더한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셨습니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5:20)

거듭남은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요 구원의 출발점이자 완성이라는 형제님의 말씀은 하나님 쪽에서 보면 이의가 없습니다. 하나님으로선 시작이 곧 마침이니까요. 하지만 시공의 제약을 받는 우리 쪽에서 보면 출발점과 완성점 사이엔 과정이란 것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 지금 형제님께서 거듭나자 마자 우리의 인격이 바뀌고 완성된다고 주장하고 계시진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신약 서신서들의 대부분은 거듭난 우리가 어떻게 자라가야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훈계와 교훈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형제님께서 모르실 리는 없으니까요.

제가 알기엔 성경에서 여러 종류의 교회를 말한 적이 없고, 성경에 언급된 교회는 모두 한결같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모임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예수님을 머리로 한 유기체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몸된 교회를 이루는 각 구성원들 즉, 성도들은 각 지체에 비유되고 있고요. 그러므로 교회란 organization(유기체)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형제님의 말꼬리를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어휘를 정리하여 생각을 명확하게 하고자 함입니다.)

그런데 교회엔 예나 지금이나 가라지가 섞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교회 생성기엔 그런 위험이 적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성령 충만한 사도들의 영분별력이 여간 뛰어 나지 않았고 말 한마디로 거짓말 하는 부부를 그 자리에서 죽게 하기도 했으니까 함부로 끼어들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욕심으로 또는 음해하려 끼어든 가라지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여 초대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 노릇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오늘날 우리들이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부르짖을 정도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디모데 서신은 디모데에게 교회를 (에베소 교회일 겁니다) 어떻게 목회할 것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쓴 것이고 딤전3:15는 교회를 이야기 하고 있는 부분이지 성경의 권위에 관한 것은 전혀 아닌데, 왜 느닷없이 이 부분을 성경의 권위에 연결시키고 계신지 의아합니다. 교단의 권위란 말로 대비시킨 것으로 미루어,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 하면 (A) 교단에게 권위를 부여하게 되고 (B) 그렇게 되면 성경의 권위가 부인된다는 (C) 논리 전개가 있는 듯한데, 전 그러한 논리 전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좀 아둔한 편입니다. 인내심을 부탁드립니다.) 제 생각엔 A와 B, 또 B와 C 사이엔 상당한 비약이 있는 듯합니다.

사실 전 아무래도 좋습니다. 진리의 기둥과 터가 교회를 수식하든 하나님을 수식하든 여기서 전혀 문제될 거리가 없다 여겨지니까요. 제가 궁금한 것은, 형제님에겐 이것이 문제거리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내가 뭘 놓치고 있나 잘못 읽고 있나, 답답한 겁니다.

이준

2006.08.13 21:08:12
*.107.126.19

의견에 감사합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성경을 읽는 사람들 중에는 마귀가 심은 가라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가라지들의 죄를
결단코 사하여 주시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지요. 이 가라지들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시지 않기 위하여 비유를 사용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한국 성경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천국을 침노하는 빼았는다"고 번역되었으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반대라는
것입니다. 즉 틀린 성경입니다. 이것을 "참 성도"는 틀렸다고 말하지만 "가라지들"은 옳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참 성도들" 은 성령님에 의하여 틀린 것을 알지만 "가라지들은 하나님께서 알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장성철

2006.08.29 10:30:34
*.186.160.6

예수님께서 씨뿌리는 비유를 얘기하시고, 제자들이 어렵다고 질문을 하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풀이해 주시면서 저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만약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면 모든 사람이 이해하도록 비유로 하실 필요가 없으셨을텐데요
또한 마7:22에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많은 권능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냈으나 예수님께서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우리 인간이 믿음을 가졌다고 스스로에게 확신을 한다고 해서 가진 것이 아니요, 구원받았다고 확신해도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요,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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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소액정기후원회원을 모집합니다. [18] master 2019-02-19 1982
공지 글을 올리려면 로그인 해주십시요/복사 전재하실 때의 원칙 [16] 운영자 2004-09-29 6042
323 공평하신 하나님 10부 [7] 김문수 2006-08-11 1230
» 모든 성경 책은 오류가 있습니다 [10] 이준 2006-08-08 2231
321 아주 훌륭한 "바보같은 질문"들 [2] 김유상 2006-08-07 1139
320 완악하고 교만한 것, 변케하여 줍소서[#1] [8] 김형주 2006-08-05 1140
319 [바보같은 질문 #8] 식사기도에 대한 질문입니다 김형주 2006-08-05 1072
318 [바보같은 질문 #7] 우상숭배에 대한 질문입니다 김형주 2006-08-05 832
317 목사님^^ secret [1] 박명한 2006-08-04 5
316 공평하신 하나님 9부 [4] 김문수 2006-08-03 915
315 [바보같은 질문 #6] 교회라는 용어에 대하여 [2] 김형주 2006-07-29 851
314 [슬픈 고발] 궁색한 너무나 궁색한 변명을 들으면서... 정순태 2006-07-29 1282
313 [바보같은 질문 #5] 교회밖에 구원이 있다는 주장과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3] 김형주 2006-07-28 1360
312 교회와 대사관의 비유가 적절한 것인지요? [3] 김형주 2006-07-28 1657
311 [re] 교회와 대사관의 비유가 적절한 것인지요? [1] 운영자 2006-07-29 1504
310 [바보같은 질문 #4] 모든 예배는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나요? 김형주 2006-07-28 1326
309 "말씀에 순종하라" 고 말하는 것은 어떤 말씀에 어떻게 순종하라는 말인가 ? 이준 2006-07-27 1199
308 공평하신 하나님 8부 [3] 김문수 2006-07-26 1596
307 목사님. 히브리서의 문제를 제기하여 봅니다. 이준 2006-07-25 1513
306 [re] 목사님. 히브리서의 문제를 제기하여 봅니다. 운영자 2006-07-27 1428
305 안녕하세요. 목사님.. [3] 건이엄마 2006-07-24 1386
304 교회개혁에 관한 소고. [2] 허경조 2006-07-2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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