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체의 본모습과 하나님 은혜 !!!

조회 수 960 추천 수 58 2007.01.15 11:12:33
  
  김교신                                              다복한 베드로  

  
마가복음 16장 1~8절
참조: 마태 28:1~8, 누가 24:1~12, 요한 20:1~18


위의 4복음서 본문을 한번 읽어본다면 그 공통의 큰 뜻은 누가 보아도 명료하다.   즉 여인들이 예수의 부활한 무덤에 가보았던 사실을 기재한 것이다.   대체로는 4복음서가 비슷하지만 세부적으로는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예를 들자면 천사를 보았다는 것은 같지만, 마가에는 ‘한 소년’, 누가와 요한복음에는 ‘두 천사’라 하였고 마태에는 그 수를 밝히지 않고 다만 ‘얼굴이 번개처럼 빛났고 옷은 눈같이 희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소한 차이점이 있음은 오히려 당시에 그 비상한 광경을 목도한 자의 흥분한 심정을 그대로 전해서 기록한 것이라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부활의 시간에 대하여는 마가에 의하면 ‘안식일이 지나자 .... 안식일 다음날 이른 아침 해가 뜨자 ... ’ 이어서 정확한 시간을 알기 어렵다.   마태복음에는 ‘안식일 저녁, 주일 첫 날 여명에’라고 하였다.   (한글 성서 마태 28장 1절에 ‘안식일 이튿날 새벽에’라고 한 것은 의역이고 충실한 원문 번역은 아니다.)   요컨대 4복음서를 종합하여 보면 시간은 일요일 새벽 햇발이 처음 비추기 시작할 때 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부활 자체의 문제는 지금 여기에서 논할 바가 아니므로 성서에 기재된 사실대로 취하고 제7절의 제자들 및 베드로와 부활한 예수와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7절의 천사의 말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가 있다.   첫째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라고 한 것은 제자들의 대표 또는 수제자의 의미로써 베드로의 이름이 적혀 있으나 이것은 베드로를 특별히 지시한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라는 데에 중점을 있다는 해석.   둘째 해석은 베드로를 특별히 지적하였고 또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다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그 필요는 무엇인가.

12사도는 모두 특별하게 선임되었음은 두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세베대의 아들 요한과 시몬 베드로는 주 예수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던 것을 볼 수 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소생시킬 때에 함께 갔던 것도 그들이었고(마가 5장), 변화산에 올라가 예수의 얼굴이 백설같이 변하는 것을 본 것도 그들이었고(마가 9장), 겟세마네의 기도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보고 들은 것도 그들이었다(마가 14:33).    예수가 제사장에게 잡혀갔을 때에 그 문 안에까지 따라간 것도 베드로와 요한이었다(요한 18:15).

이처럼 남다른 사랑과 신임을 받았고, 또 주를 열심히 사랑했던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당하여 남보다 훨씬 더한 실망과 특별한 비통에 빠졌으리라는 것도 추측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베드로는 최후의 만찬을 마친 뒤에 주 예수께 대한 굳은 결심을 고백한 바 있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비록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말을 잘 들어라.   오늘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는 더욱 힘주어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주님을 모른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장담하였다. 다른 제자들도 다 같은 말을 하였다.” (마가 14:29~31)

베드로는 자신의 진심을 토로하는 동시에 모든 제자들의 마음속의 소원을 표시한 것이며(14:31), 또한 2천 년 후 오늘까지의 모든 신도들의 간절한 정성을 대신 말하여 준 것이었다.   크리스천으로써 누가 베드로를 경애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베드로에 대한 예수의 예고는 너무도 빨리 적중하여 버렸다.   우선 베드로는 스승이자 주님이신 예수께서 일생 최대 위기를 앞두고 겟세마네에서 기도할 때 같이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누가 22:44) 할 때에도 한 시를 깨어 있지 못하고 짐승과 같이 본능이 지배하는 대로 잠에 빠졌었다.   그러니 예수께로부터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는 동정의 말씀을 안 들을 수 없었다.

또한 베드로는 제사장의 앞마당에서 세 번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하여버렸다.   이에 대한 성서의 기사를 읽을 때에는 독자 자신의 이름을 베드로와 바꿔서 읽는 것이 가장 유효한 독서법 중의 하나일까 한다.

(1) 베드로는 아랫 마당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여종 하나가 와서 베드로가 불을 쬐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한 자로다’ 하거늘, 베드로가 아니라 하고 말했다.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마당으로 나가니 닭이 울었다.
(2) 여종이 또 보고 곁에 서있는 사람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도 저 무리라’하되, 또 아니라 하더니
(3) 조금 있다가 곁에 서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분명히 저 무리로다’ 하거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말하되, ‘네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곳 두 번째 울거늘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 하리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여 생각하고 울더라. (마가 14:66~72)

여기에서 끝에 있는 한 구절, ‘생각하고 울더라’의 원문은 매우 강한 의미인데 번역문에는 그것이 나타나지 못하였다.   kia epibalon eklaien의 원래 뜻은 ‘몸을 땅에 던져 울었다’ 또는 ‘머리를 가리고 울었다’는 뜻이다.   이것을 누가복음 22:62, ‘곧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니라’와 종합하면 ‘전력을 다하여 몸부림치면서, 큰 소리로 통곡하니라’가 된다.   이렇게 읽어야만 당시의 베드로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번 입 밖에 나온 헛말을 고집한 것이 순식간에 베드로를 악에서 더 악한 데로 떨어지게 한 것이다. (A lie once told was persisted in, and he quickly went from bad to worse.)   이러한 자아를 발견한 베드로는 처음으로 전율한 것이었다.   아아, 동정할 만한 베드로여!   분하기도 했고 또 뜨겁게 회개한 것이었다.   아, 슬프도다!   이를 갈고 혀를 끊은들 되겠는가.   두 발을 뽑고 살과 뼈를 서로 찢은들 돌이키겠는가.   베드로는 오직 ‘하늘이여 무너져라, 땅이여 꺼져버려라’하고 목소리를 다하여 울고불고 하는 것 밖에는 할 일이 없어진 것이었다.   베드로가 ‘생각하고 울더라’ 이 구절을 아무 생각 없이 읽고 지나가는 개인과 민족과 시대는 모두 그 평탄하고 잘 나가가는 처지를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그 통곡이 얼마나 중대한 의미를 지녔는지는 은혜로 말미암아 아는 이만이 알 것이다.

세례 요한이 여인이 나은 자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은 온 인류를 대표하여 하나님의 독생자를 증거했음에 있다.   시몬 베드로의 세 번 부인도 전인류을 대표하고 또 나를 대신했다는 점에서 한없이 통탄스러운 것이다.   만일 보름쓰 회의에서 루터가 굴복하였다고 가상하라.   그랬다면 우리 인류는 광부의 자식이 포효하는 ‘베드로의 통곡’을 다시 한 번 더 들었을 것이다.   그 이후의 세계사는 상상하기만 하여도 몸서리 쳐지지 않는가?   루터여 장하도다.   베드로여 분하고 아프도다.

베드로는 십자가 사건 이후에 실망과 비애에 빠졌었다.   이것은 베드로나 요한이나 다른 제자들이 다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 위에 세 번씩이나 주를 모른다고 했다.   자기의 비겁과 불신을 느꼈을 때에 다시는 주 예수를 뵈올 면목이 없음을 알고, 가능하면 주를 멀리 하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런 심정은 우리들의 일상 경험으로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시몬 베드로가 그물을 던져 의외의 많은 고기를 낚았을 때에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누가 5:8) 한 것도 같은 심리 상태였다.   시조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후에 ‘동산나무 사이에 숨어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고......내가 동산에서 주의 소리를 듣고, 나의 몸이 벗음으로 두려워 숨었나이다’(창 3:8~10) 한 것도 또한 같은 이유인 것이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대로 우리를 대접하지 아니 하시고 우리의 불의대로 우리에게 갚지 아니하실’(시 103:10) 뿐더러, 주 예수는 일곱 번을 일흔 번이나 용서하시고 자기를 세 번이나 모른다 했던 베드로를 먼저 찾아서 위로하시고 격려하셨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그럴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누가복음 24:34, 고린도전서 15:4~5절의 기사와 함께 읽어보면 예수가 부활 후에 각별히 베드로를 만나신 것과, 또 그 필요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 21:1절 이하에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세 번씩이나 기탁하시고 새로이 신임하시는 것을 보면 베드로의 복 많음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베드로의 통곡’이 온 인류와 또 나 자신의 통곡이었던 것처럼 나도 또한 다복한 베드로인 것을 깨달을 것이고 감사할 것이며, 부러워할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사실이다.


오직 십자가 !!
오직 예수!!!!
오직 성령님 은혜 !!!!


조인구

2007.01.16 02:35:01
*.91.112.215


그러나 ‘베드로의 통곡’이 온 인류와 또 나 자신의 통곡이었던 것처럼 나도 또한 다복한 베드로인 것을 깨달을 것이고 감사할 것이며, 부러워할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사실이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워 아멘




국중후

2007.01.16 10:43:32
*.163.7.190

다시한번 주님의 은혜를 생각합니다...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진짜 이유” 중국어번역본이 준비되었습니다. master 2023-09-20 1149
공지 신입 회원 환영 인사 [1] master 2020-10-06 1549
공지 (공지) 비영리법인을 설립했습니다. master 2020-05-15 2699
공지 E-book File 의 목록 [3] master 2019-08-23 1958
공지 크레딧카드로 정기소액후원하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file master 2019-07-04 5916
공지 소액정기후원회원을 모집합니다. [18] master 2019-02-19 1998
공지 글을 올리려면 로그인 해주십시요/복사 전재하실 때의 원칙 [16] 운영자 2004-09-29 6056
390 맨발의 천사 최춘선님의 선배 김문수 2007-01-18 995
» 우리 전체의 본모습과 하나님 은혜 !!! [2] 김문수 2007-01-15 960
388 헝그리맨을 다듬으시는 하나님 [1] 김문수 2007-01-13 995
387 하나님관점으로 움직이는 헝그리맨 !! [3] 김문수 2007-01-12 1066
386 ‘나는 나’ 다.!! 헝그리맨의 변화 [3] 김문수 2007-01-10 1156
385 광야의 헝그리맨의 거듭남 [2] 김문수 2007-01-07 1172
384 골통중의 골통사부의 기도 !! [4] 김문수 2006-12-25 1409
383 2006 년 성탄에 file 허경조 2006-12-25 1280
382 머리가 나빠서 이해가 잘 안되니 답답 합니다 이준 2006-12-19 1345
381 자전거 할아버지의 고통 김문수 2006-12-15 1123
380 살떨리는 기도 (우찌무라 간조) [2] 국중후 2006-12-14 1361
379 가슴아프기도 하고 궁금한 일 [2] 손은민 2006-12-08 1293
378 찬양 반주 드럼 레슨합니다. 한혁 2006-12-07 1299
377 엘에이 대형교회에서 일어난일 이정윤 2006-12-04 1754
376 11-30-2006 file [2] 허경조 2006-12-01 1226
375 #죽고나서 심판대에 서야 옳고 그름을 알겠지요? 손은민 2006-11-29 1113
374 이해가 안되는 하나님 사랑과 은혜!! [4] 김문수 2006-11-28 1197
373 # 새벽기도 손은민 2006-11-27 1141
372 판도라의 상자? [2] 손은민 2006-11-25 1252
371 두들겨맞는게 오히려 다행인 것을 [5] 손은민 2006-11-23 1425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