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무를 분담하리라
김교신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하라”는 교훈은 쉽게 실천하기가 어렵다. 이에 비해서 “네 오른손이 범죄하거든 오른손을 찍어 던지고 바른 눈이 범죄하거든 바른 눈을 빼어 버리라”는 명령은 어느 정도까지는 실행할 수도 있고 실행하려는 열기도 높은 것을 우리는 경험한다. 적극적으로 사랑하기보다는 소극적으로 범죄하지 않는 것이 쉬운 까닭이다.
과거 우리의 신앙 생활은 대부분이 단절하는 생활이었다.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모르는 친척들과 단절하였다. 청교도적 도덕을 지키지 않는 제자를 파문하였다. 사회의 평판이 안 좋아서 성서조선지에 누를 미치게 하는 친구와 절교하였다. 그러고도 얼마든지 똑똑 잘라 버리려고 하는 결심이 있었다. 마치 도마뱀이 꼬리를 잃음으로써 본체의 생명을 유지하듯이 우리는 이렇게 수족과 눈코를 단절함으로써 비교적 순결한 생명을 보전한다고 알았었다.
과연 우리의 주위에는 소수일망정 품행이 방정하고, 신의가 돈독하고 기품이 고결한 자 몇 사람이 남았다. 누가 보든지 대표적 조선인이요 모범적 크리스천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현상을 보고 사람들은 과연 신앙적이다,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다 하는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의 인물을 마저 끊어버리라는 격려도 해주었다. 우리는 점점 더 용기를 다하여 이 방향으로 매진할 뻔하였다.
이때에 크나 큰 모순이 눈에 띄었다. 예수의 식탁에는 세리와 창기와 죄인과 가난한 자들뿐이라고 시비를 들으셨는데 우리의 식탁에는 그렇지가 못했다. 쟁쟁한 인사들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언제 누가 보든지 이런 친구를 가졌다는 것을 자랑할 만했다. 무의식 중에 스스로 의인이라고 자처하는 무리들이요, 남들이 또한 그렇다고 인정할 만한 위인들이다. 끼리끼리 모여서 위선을 떠는 가운데 어느덧 우리는 귀족주의자요, 부르주아지요, 독선주의자로 되어 버렸다. 심히 두려운 일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사귐의 표준을 바꾸려 한다. 사람들이 생각 못하는 뜻밖의 우도(友道)를 개척하고자 한다. 친척과 친구들 가운데 신의를 상실한 형제여, 우리는 그대를 한번 다시 만나 볼 필요를 느낀다. 인생의 삼엄한 바다에서 파선하고 눈물을 뿌리는 친구여, 그대의 우정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가 있음을 잊지 말라. 우리의 친구로 행세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그대의 신분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그럴 리가 만무하겠지만) 온갖 종류의 협잡꾼들도 주저 말고 오라. 우리는 그대에게 속고 그대에게 이용 당하리라.
좋은 친구를 사귀어 명예심을 느끼고, 우리의 대외 신용도를 강화하며, 체면을 미화하려던 일을 이제는 단념한다. 오늘부터 우리는 수치심을 감추기 어려운 자를 택하여 그대의 책무와 치욕을 분담하고자 기도한다. 병자와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 예수와 함께 온갖 천한 자, 낮은 자, 추한 자 사귀기를 갈구하노라.
제가 이분의글을 올리는 이유는
이분을 높이려고 하는데 목적이있는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분을 어떤식으로 변화시키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는지 그 내리사랑을 알리는데 목적이있습니다. 샬롬!!
간혹 김교신 선생이나 함석헌 선생에 대한 거부감을 지닌 목사분들이 계신 듯합니다만,
분명한 것은 이분들은 결코 주님 품에서 벗어난 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본 받아도 잘못되지 않을 귀한 모범적인 성도들이었으며
몇 번 올려주신 김교신 선생의 주장도 오늘의 성도들이 곱씹어야 할 내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Again 1907년"을 부르짖으며
다 알만한 목사들이 나와, 무릎꿇고 회개하고 용서한다는 등
진정성을 장담하기 어려운 가식적 행위들을 보기보다는
김교신 선생의 신랄한 지적을 읽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계속 기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