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교회 김교신
성서조선 第 92 號 (1936年 9月)
사람들이 나에게 권유한다.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 씨의 무교회주의는 그 시대와 사회에 대한 일시적 필요로 생겨난 것이지 결코 영원히 있을 것이 아니다. 그러니 너는 하루바삐 우리 교회에 참가하라.”
“우치무라 씨는 영웅이었다. 그런 영웅적 기백을 가진 자가 무교회주의를 제창할 때는 얼마쯤 효과도 있었지마는…….… 너는 어서 우리 교회에 협력하라.”
“무교회주의란 것은 교회를 맹렬히 공격하는 것이 그 본연의 사명이다. 너도 좀 더 적극적으로 기성교회를 폭격하든지 그렇지 않거든 어서 우리와 협조하여 교회사업을 하자.”
“우치무라 씨가 살아 있을 때에는 무교회주의도 성할 듯하더니 그의 별세 후로는 그 제자들은 부진하고, 교회측의 신학연구가 대성황이다. 소장학자들도 교회측에 오히려 많더라……너도 어서 교회인이 되라”
그 밖에도 성심껏 하는 충고가 부지기수.
이런 친구에게 제일 먼저 요구하는 것은 ‘나는 나’ 라는 것을 알라는 것이다. 나는 물론 우치무라 간조가 아니다. 영웅이 못 되어도 ‘나는 나’ 다. 신학의 설이 변해도 ‘나는 나’ 다. 선생이 이랬으니 너도 이래야 쓴다는 논법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못 된다.
이제 우치무라 간조의 전집 20권을 펼쳐 놓고 쪽마다 고증하기도 성가신 일이다. 해 봤자 우리 영혼에는 별 수 없는 짓이다. 그러므로 무교회를 따지든지, 신앙을 말하든지 먼저 ‘나는 나’ 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 주기를 바란다.
첫째로 우리를 우치무라 선생에게서 무교회주의를 전공한 사람인 줄로 아는 이도 있으나 이는 대단한 오해다.
근래에 공산당 러시아에서 훈련을 받은 청년들이 공산주의를 선전할 사명을 띠고 국경을 넘고 들어오고 있다. 또 군관학교에서 교육받은 청년들이 침입하여 어떠한 운동에 헌신한다는 보도에 놀란 경험을 가졌을 것이다. 우리의 무교회도 곧 그렇게 미루어 짐작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10년에 걸쳐 우치무라 선생에게 배운 것은 무교회주의가 아니다. ‘성경’ 이었다. ‘복음’ 이었다. 설령 우치무라 선생의 내심에는 무교회주의란 것을 건설하고 고취하려는 심산이 있었다 할지라도 내가 배운 것은 무교회주의가 아니요, 성서의 진리였다.
그래서 무교회주의에 관한 왈가왈부의 변론이 있을 때는 우리는 대개 유구무언이다. 무교회주의는 우리가 전공한 분야가 아닌데, 따지는 쪽은 훨씬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다음에 무교회주의는 기성교회를 공격하는 것이 본연의 사명이라고 하나, 나의 무교회는결코그렇지않다.
요즈음 조선 기독교계의 쌍벽이라고 할만한 장로교와 감리교는 적극단(積極團) 문제가 생긴 이래로 자멸을 목표로 분쟁 또 분쟁이다.
성결교는 성결치 못한 문제로 탈퇴 성명과 법정고발이 이어지니 이 역시 자멸할 때까지 서로 치고 받을 것이다. 무슨 독한 마음으로 이 싸움에 끼어 들겠는가.
교회 안에 경애할 만한 성도가 있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교회 전체로 볼 때에는 희망을 두지 못하겠다. 현재 교회 지도자들의 마음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개혁 운운의 일절의 생각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오직 성서의 진리를 배우며 스스로 채찍질 하여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려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이래도 무교회주의라고 부르고 싶거든 부르라.
"예수 믿는 자들의 삶을 보거나 예수를 전하는 목사들의 말을 들으면 도저히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는데,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 속의 예수님을 만나면 그분을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천년도 훨씬 넘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는 구호에 대한 논쟁을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교회나 목사를 중심으로 신앙생활하는 것(우상일 수 있지요)에서 벗어나서,
오직 주님(성경)만으로 신앙생활하는 시대가 오기는 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