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 군의 세계 마라톤 제패
| 現代文보기 | 原文보기 | 성서조선 第 92 號 (1936年 9月) 김교신
8월 10일 이른 아침에 베를린으로부터 ‘손기정 군 마라톤 일등’이라는 전파가 다다랐다. 이 순간부터 끓어 오르기 시작한 온 조선의 기쁨은 각 신문에서 가장 큰 활자로 그 공을 기리며 감사를 나타냈다. 각종 잡지도 새로운 영웅을 그리고 또 그렸건만 아직도 다 하지 못한 바 있으니 이 감격의 높은 물결도 당연한 일이다. 올림픽 경기의 유래를 아는 이는 마라톤 우승이 곧 그 대회를 정복하는 일인 것을 잘 안다.
“올림픽에서 마라톤을 우승하는 것처럼 화려한 일은 없다. 마라톤을 이기면 올림픽을 정복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손 군은 정말 행복하다.” -- ‘오오사카 마이니치(大阪每日), 난부 쥬헤이(南部忠平)’ 라는 대로이다.
이와 같은 일반적 의의의 기쁨과 자랑과 칭찬은 세상 평론으로 충분하다고 하고, 우리는 우리의 특수한 감상 두어가지만 말하고자 한다.
첫째로 나도 일찍이 동경-하코네(箱根) 간 역전 경주의 선수여서 마라톤 경주의 고통과 기쁨을 체험한 자다. 우리 학교 학생인 손 군이 작년 11월 3일 동경 메이지 신궁 코스에서 2시간 26분 41초로 세계 최고 기록을 작성할 때에는 함께 있었다.
“선생님 얼굴이 보이도록 자동차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앞서 모세요” 라는 손 군의 요구에 ‘설마 선생 얼굴을 보는 것이 뛰는 다리에 힘이 될까?’ 하면서도, 이때에 제자는 스승의 심장 속에 녹아서 하나가 되어버렸다.
반환점인 육향교(六鄕橋)부터 종착점까지 차창에 얼굴을 내밀고 응원하는 교사의 두 뺨에는 그칠 줄 모르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 시야를 흐리게 했다. 이는 스승과 제자가 하나가 되는 화학적 변화에서 발생하는 눈물이었다. 그 결과가 세계기록이었다. 이런 처지에서 베를린의 소식을 들으니 감격이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둘째로 올림픽 우승의 일화로 보도된 바에 의하면 “작전에 있지 않고 정신에 있더라”는 체험을 손 군은 고백하였다. “오만은 패망에 앞선다”(잠언 16:18)는 것은 성서의 교훈이요, 하나님이 개인과, 민족과, 국가와, 제왕을 향하여 주시는 중요한 가르침이다.
지난번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아르헨티나의 자바라(Juan Zabala) 군이 아주 함부로 행동 하다가 무참하게 패망하는 광경을 똑똑히 본 손 군이 “승패는 작전과 체력에 있는 것이 아니요, 정신의 겸허함에 있더라” 는 진리를 체득하여 전세계에 입증한 일이 큰 일이다.
셋째로 “양정학교의 그 건물과 그 운동장이 이런 세계 일등의 선수를 내었다면, 우리 조선이 영원한 경주장에서 승리의 관을 쓰게 될 것을 더욱 두텁게 믿게 됩니다” 라는 함석헌 군의 축하장 내용이 새로운 희망이다. 세상 사람은 입만 열면 시설과 환경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 선진국들은 그만 두고라도 조선 안에 어느 학교, 어느 교실이 양정보다 깨끗지 못하며, 그 강당과 그 운동장이 양정보다 넓지 못한가.
넷째로 하나님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마라톤에는 엄청난 체력을 요한다. 그러면 조선인보다 체력이 우월한 국민이 없던가. 있다.
유한한 근력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분배하여 사용하는 것에는 과학적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면 과학적 연구에 우리보다 나은 나라가 없는가. 있다.
마라톤에는 무엇보다도 인내력이 제일이다. 그러나 조선인이 인내력으로 세계 제일이라고는 세계의 강대국들이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손기정 군에게 우승의 영예가 돌아왔나. 생각할수록 커다란 의문이다.
이때에 하늘에서 말씀이 있으니 가로되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저의 심사에 교만한 자를 흩으셨고…..높은 것을 낮추시고 낮은 것을 높이시며, 강한 자를 꺾으시고 약한 자를 세우시느니라” (눅 1:51~53).
이것이 하나님의 속성이시다. 손 군의 우승은 우리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말씀하고 있다.
손기정 옹이 우승하는게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말씀하는게 맞는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