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신과 조선
선생은 학교 교사 노릇도 오랬동안 하셨고, 말년에는 뜻하지 않은 회사의 사원 노릇도 했으나 선생이 평생의 정성과 힘을 기울인 사업은 "성서조선" 간행이었습니다. 이제 돌이켜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저만한 기개와 큰 vital로 필사의 노력을 기울여 독자 300 정도의 인기 적은 잡지를 평생토록 간행하고 최후엔 공장 안에서 노동자들의 뒷바라지를 하다가 세상을 떠났으니 안타깝다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선생처럼 자기의 사명으로 믿는 바 일을 일찍이 찾아서 한결같이 쾌주한 분은 드물 것입니다. 매일 폐간의 태세로, 매일 임종의 결심으로 고난 많은 역사의 길을 달리고 갔으니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듭 말할 것도 없지마는 "성서조선"이 던진 문제는 결코 몇 해 있다가 없어질 만만한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필연코 날이 갈수록 해가 지날수록 기독교史에 미치는 영향이 선명해지고 커져 갈 것입니다.
선생은 해방 전년에 우연한 인연으로 함흥 서본궁에 있는 일본질소회사에서 우리 동포 5,000명의 복리를 위해 진심갈력하다가 다음 해 4월에 해방을 몇 달 앞두고 발진티푸스로 홀연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안상철 의사, 박춘서 의사들이 자기 생명을 돌보지 않고 구호하기에 노력한 것은 우리를 감격하게 하는 미담으로 길이 남아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옷깃을 바로잡게 할 것입니다.
선생의 나라를 사랑하는 진정, 사람을 두려워 않는 용기, 하나님을 섬기는 지성, 친구 사이의 깊은 의리, 거짓 없는 인격으로 구름 같은 간증자들 앞을 달린 쾌주의 생애를 우리는 바라볼 수가 있었습니다. 온 세계가 지금 잘못된 유물 문명 앞에 떨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참 기독인은 온 세계보다도 귀중하고 그의 하루는 그대로 영생입니다. 오늘의 위기에 있어서 이 참담한 조국을 파멸에서 구원하는 길은 오직 참된 기독의 정신뿐입니다. 김교신 선생은 45년의 짧은 생애로 요절한 것 같으나 그의 할 일을 다하고 그가 던질 문제를 다 던지고 간 것입니다. "김교신은 김교신의 사명을 다했으므로 이 세상을 떠났다"라고 나는 믿는 것입니다. 그는 종교 개혁자로, 참된 애국자로 한 알의 밀이되어 이 조국의 땅 속에, 우리들 가슴속에 묻힌 것입니다.
류달영(柳達永) :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