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이니 저의 신앙관 관점에서 그냥 나눠보려고 합니다.
예전 이 곳에 질문에
"배우자기도는 특별하게 여기면서 다른 가족기도,친구기도 등과 다르게
그 부분만 굳이 굳이 집중하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
라는 댓글을 달았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과거 몸담았던 교회의 담임목사님께서 저술하신 책을 읽으면서 배우자기도에 대해 생각을 완전히 정립했습니다.
곧, 매일매일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기도가 곧 배우자기도이기에 굳이 배우자기도 라는 거창한 '슬로건식 기도'가 불필요하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911 테러당시 엠파이어 빌딩의 90층 화장실을 사용한 자는 사망했지만 3층 화장실을 사용한 자는 살았습니다. 화장실을 선택한 두 사람은 자신의 작은선택이 삶과 죽음이라는 큰 결과를 가른다고 여기지않았을것입니다.
그걸 선택하기위해 '화장실기도'를 하며 선택하지는 않았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3층 화장실을 쓰려다가 생각이 바뀌어 2층 화장실을 사용하러 갔는데 거기서 우연히 동창을 만나고 그게 인연이 되어 결혼한 신자 부부 케이스도 있습니다 (책에서 소개한 실제 예시)
이 사람도, 자신의 배우자 선택을 위해 '화장실 선택기도'를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우리는 매일 식사에서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기도하면서 선택하지 않습니다. 신자는 자유의지에 의거해서 그것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면서 나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누리면서 즐겁고 감사하게 선택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그것은 '작은 선택과 작은 결과'라고 여겨지기 쉽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위의 예에서 봤을 때 결국 우리의 인생에서 인간의 기준에서 중대하다고 여겨지는 일들도 사실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거대한 기도를 하기보다는 어떠다가 발견한 재능, 자신의 소견대로 하는 작은 선택에서 비롯됩니다.
뭐 당장 저 부터도, 지금의 직장을 갖고 이쪽 업계로 투신할거라고는 작년 6월까지만 해도 평생 상상도 해본적 없는데 우연히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된거니까요 ㅎㅎ
곧, 우리에게 '점심식사선택' 같은 작은 영역에서의 자유의지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반대급부로 '결혼과 진로, 삶과 죽음'의 영역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로운 선택권을 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작은 선택과 문제가 하나님께는 작은 것이 아닐 수 있으며
우리 인간에게 큰 선택과 문제가 하나님께는 큰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의 현재의 모습으로 이끌어온 것은 우리가 삶을 살아오며 했던 작은 선택들의 연속이며 총합입니다. 제가 작년 우연히 블로그를 하지 않았다면, 제가 블로그에서 우연히 친해진 블로그이웃의 글을 클릭하지 않았더라면 꿈꾸지 못할 직업을 저는 하고 있는데요. 제가 인터넷 게시글 하나하나 클릭하기 전에 하나님께 매번 기도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일상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있을 하나하나의 작은 선택들에 있어서, 현명하고도 사려깊은 선택을 해야겠죠.
성격이 급한 사람은 섯부른 선택을 할 확률이 높으며 성격이 진중한 사람은 현명한 선택을 할 확률이 높겠지요. 결국 매일매일에서의 현명하고 진중한 선택을 하는 것이 10년 20년 30년을 돌아보면 나의 결혼, 나의 진로, 나의 삶과 죽음까지 이어지는 것이라는 논리가 됩니다
곧, 내가 오늘 하루 매번의 선택에 있어서 현명한 선택을 해야하는데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에서 나 스스로가 현명하고 진중한 품성을 갖게 다듬어나가야한다는 것이죠
그것을 위해 우리는 매일매일 예수님의 품성을 닮아가기위해 기도해야합니다. 그 분은 온유하시면서 불의를 보면 악에 있어서는 당당히 욕을 하면서 맞서셨고, 무리가 핍박하고 당대의 지혜자로 여겨지는 율법학자들이 논리로 밀어붙여도 전혀 밀리지않으시고 당황하지 않으시고 현명하고 좋은 성품으로서 오히려 받아치셨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품성을 닮아가게 매일매일 기도라는 것이,
작아보일지라도, 때로는 전혀 관계없어 보일지라도,
그것이 곧 인생의 큰 결정이라고 여겨지는
배우자기도가 되는 것이요
가족 전도 기도가 되는것이요
복음 전도 기도가 되는 것이요
진로 선택 기도가 되는 것이요
나아가 나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매일매일 예수님을 닮아가는 기도를 한다는 것이 중요하지,
특정 인생의 중대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저에게는 크게 의미가 사라졌습니다. 결혼 진로 같은 부분에서요
특히나 이 곳에 크리스천 청년분들도 많을거 같아서
제 생각도 나눠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