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조회 수 1161 추천 수 51 2008.07.03 19:39:38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요한복음의 이 장면은 언제나 저를 감동시킵니다.

물론 요한의 이 진술은 처음부터 예수의 제자사랑

을 알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 부분은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비로소 그의 삶의 여정 가운데

확인한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그 당시에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한때 대중적으로 많이 유행한 노랫말이

있었습니다. '있을 때 잘해'



그렇습니다. 우린 너무 미련하여서 무엇이 소중한지

무엇이 귀한것인지를 모를때가 많습니다.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고서 가슴을 치며 후회를 하곤 합니다.

지금 나와 함께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깊게는 혈연으로부터이며 다양한 이유와 여러가지 이유로 얽히고 설키는 관계속에서 어떤 관계는 보기만 해도 생각만 해도 맘이 좋은 관계가 있으며 그 반대로 생각하기조차 싫은 관계들이 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세상사라는게 빛과 어둠이 있듯이 상대적인 관계에서 자유로울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관계를 어떤 자세와 가치관으로 지혜롭게 풀어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으로 나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부분에서도 관계란 매우 치명적입니다. 이런 관계를 사실 사람의 의지와 노력과 방법론적으로 어느정도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상대적이고 이해관계에 따라서 변질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결코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무조건 적인 사랑의 관계가 존재하는 것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그 관계가 바로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이며

이것을 천륜이라고 하지요. 천륜에서 파생되어진 관계가 인륜의 관계입니다.



여기서 또 마땅히 순수하게 맺어져야할 관계가 있다면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특히나 복음서에서의 예수와 제자들과의 관계는 인간적인 관계를 초월하는 신비로운 관계라는것을 먼저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때에도 역시 세상에서의 살아가는 처세라든지 인간적인 도덕과 윤리적인 차원에서의 교훈서로만 본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수 없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본래 의도하는 본질과 전혀 무관한 길로 가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와 제자와의 관계는 사실 구약으로 부터 도출되는 신묘한 관계라는 것을 이해하셔야 정확한 관계가 될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본질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그의 피조된 백성과의 관계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놀랍게도 선택한 이스라엘 민족을 향하여서 내 백성이라 하였고

내 자녀라 했고 내 딸들이라 합니다.



좀더 발전해서 내 벗이라 하였고 호세아서에 보면 하나님을 남편이라 하였고 이스라엘을 아내 라고까지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마치 이스라엘이 굉장히 거룩하고 특별하고 우수한 민족이라서 그런것으로 오해를 합니다만 선지자들을 통해 설명된 구약백성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역한 패역한 백성들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버리지 아니하시고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구원에 대하여서도 사람이 뭔가 쓸만해서 거룩해서 믿음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쁘신 뜻과 예정하심으로 인함이며 사랑하심 때문이라고 하는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관계를 살피고서 오늘 요한이 기록한 이 말씀을 볼 때 번번히 감동할수 밖에 없는것은 우리는 비록 알지 못하고 늘 제 갈길로 죄악의 길로 행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신 다는 것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께서 때가 된 것을 아셨습니다. 제자들은 몰랐겠지만 이제 십자가의 길로 가셔야 할 때가 이른것을 아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 사랑하시는 자 였던 요한도 몰랐습니다. 베드로도 몰랐습니다. 삼년동안 그렇게 쫓아 다녔던 제자들이 전혀 몰랐는데 우리가 알수 있을까요?



제자들이 그 사실을 안 것은 훨씬 후에 알았습니다.

그것도 제자들이 똑똑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성령의 깨닫게 하여 주심으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이 없이 사람의 의지나 지식으로 성경을 아무리 깊이 분석해도 정보로서나 기능적으로는 많이 알수 있을지는 몰라도 성경이 본래 우리에게 하시는 영적인 부분은 전혀 알길이 없습니다.



성경을 수백번을 읽고 연구를 한 학자들이 결국은 예수를 믿음의 대상으로 알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율법사들이나 바리새인들이 당시 종교주의자들이 종교적 전문가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알지 못한 이유가 그들이 멍청해서가 아닙니다.



사실은 이사야서에 이미 예언하고 있는 내용이 성취된것일 뿐입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제가 이 말씀때문에 벅찬 감동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요한의 증언입니다. 단지 이 기록 목적이 그 당시 초대 교인들을 로마의 위협과 유대인들의 박해가 너무 심해서 고통당하는 성도들에게 힘을 주기위해서 라고만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물론 그럴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겉으로 들어난 부분을 볼 때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사실이기도 하구요.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서 오늘날 예수를 진정으로 믿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넉넉하게 적용이 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시대에는 물론 로마시대처럼 박해를 당하는 그런 시대는 아닙니다. 아직도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국가에서는 아마도 그렇게 위험을 감수하면서 신앙하는 성도들이 분명 있다는것을 압니다. 오지에서 선교하시는 분들의 소식을 통해서 종교의 자유가 억압된 나라안에서는 지금도 초대교회의 상황 못지않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는것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에게 이 말씀이 큰 위로와 소망이 될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너무나 편안함속에서 신앙하는 우리들이 결코 그들보다 안전한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영적으로 더 심각한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이 되었다는것을 아시는지요. 세상은 너무 살기 좋아졌고 평온합니다. 아무런 걱정없이도 잘 살아갈 조건과

안전장치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이렇게 살기 좋은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과연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과연 얼마나 절실하게 신앙하고 있을까요? 이런 조건속에서 그래도 순수하게 신앙하고 절실하게 신앙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개인적으로 절박한 상황을 견딜수가 없어서 신앙하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예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사회에서도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세리들과 죄인들과 병자들과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배척을 당하거나 소외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가깝다고 하셨던것을 근거로 말입니다.



우리는 전혀 눈치 채지못했지만 예수께서는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실패와 절망과 좌절가운데서도 우리를 결코 포기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말을 오해 하지는 맙시다.



예수 믿으면서도 자기 맘대로 자기 뜻을 고집하며 즐겨하며 방탕과 패역으로 치닫는 자들까지 끝가지 사랑하신다는 것으로 오해하지는 맙시다.



분명히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 하신다는 것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분명 자기 사람들이라고 하십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나니 예수의 사람들은 예수의 계명을 사랑합니다. 그의 말씀이 곧 영생임을 알고 즐겨 순종합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예수의 말씀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내가 정말 예수를 믿고 예수 아니면 안된다는 고백이 있다면 내 마음의 중심에 무엇이 충만한지를 살펴야 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때문일까요? 내가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자녀들에게 투자하는 이유가 무엇때문입니까?



내 삶의 모든 행동과 목적의 목표가 무엇을 위하는 것일까요? 그 끝자락에 과연 누구와 만나기를 고대하십니까? 그 끝에 예수를 만나기를 소망하십니까?

정말로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고 노래할 자신이 있을까요?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라는 욥의 고백을 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우리의 삶이 곤고해도 이 말씀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어떤 조건이 있는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하시는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예수의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랑을 받을 조건도 없고 자격도 없지만 예수께서 그 십자가로 화목시켜 주시고 해결하시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의 십자가로 우리속에 부어졌다는 확증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십니까?



그에 대하여 그의 십자가로 확증하셨고 그의 성령으로 보증하셨다고 바울은 선언하였습니다. 우리가 언제나 소망 가운데 기뻐할수 있는 이유가 우리의 잘남이나 성공이나 믿음의 수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랑에 여러분들이 부름을 받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중이랍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기를 바랍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008-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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