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가 만난 예수(5)

조회 수 993 추천 수 37 2008.10.10 22:42:50
무능한 예수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는 예수를 따라 가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 합니다. 먼저 완전한 사람으로서 사람에 비하여 월등한  존재와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이 싸워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모든 힘과 육체와 지혜로는 감당 할 수 없는 능력이 마귀에게 있습니다. 예수는 성령에 이끌려서 광야로 갑니다. 거기서 사십을 동안 굶주렸습니다. 인간으로서 완전한 탈진 상태요 무능한 상태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시험하는 자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허락한 범위 안에서는 무엇이든지 가능합니다. 저는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서 광야에서 시험 당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하며 소름이 끼치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마귀는 사람인 예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너무 비약한것은 아닌가 생각 합니다만 왜 이 본문을 살피면서 갑자기 욥기를 떠올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욥은 알다시피 의롭고 순전하다고 인정을 받은 사람입니다.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하나님은 자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단의 참소에 의하여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받게 됩니다. 욥의 입장에서 보면 무죄한 자로서 시험을 받는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사단에게 모든것을 다 빼앗기고 심지어 엄청난 질병의 고통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가장 절친한 친구들에게도 공격을 받고 정죄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욥은 사람이 당할수 있는 최고의 고난을 받고 있는것입니다. 재산이 없어지는 것도 일반인 들에게는 견딜 수없는 고난인데 거기다가 사랑하는 자녀들을 하루에 다 잃어 버렸습니다. 이런 재앙을 당하고 살아 있다는게 기적입니다. 살 소망이 완전히 없는 것인데 정신이 온전할 수가 없지요. 아마도 십중팔구는 미쳐버릴 것입니다. 아니면 숨만 쉬고 있을 뿐 욥은 지금 죽음과 동등할 것입니다. 고난은 가중 되지만 욥으로서는 아무런 방어도 할 수 없고 변호자도 없고 위로자도 없습니다. 정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해도 누가 돌을 던질 수가 있을까요?

욥이 마지막 까지 붙들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움 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 수록 하나님은 전혀 개입하시지 않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버리셨다고 생각할 정도였고 그런 상황속에서 자기의 무죄함을 잡고 사투를 벌였던 것입니다. 아무도 믿을 수가 없는 절대적인 절망 상태입니다. 하나님이 없는듯한 최악의 상황입니다. 신자에게 가장 절망적일 때는 하나님이 없는것같을 때 아닌가요? 그것보다 더 절망적인 경우가 어디있습니까? 이것은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조롱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는 지금 아무런 신적인 능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것은 죄인들과 같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회개의 물세례를 받고 광야로 온것입니다 이제 겨우 신앙의 첫 걸음을 하는 성도들과 동일한 조건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없는 연약한 사람으로서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시험할 때 예수는 전혀 신적인 능력을 사용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상태이니까요. 돌로 빵을 만들면 지는 것이고 마귀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오로지 예수는 말씀으로만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시험

이미 첫번째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고 이기었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두번째 시험을 합니다. 순식간에 예수를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세웁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가 완전한 사람이다고 인정을 해야 합니다. 사십일을 주리고 목이마른 상태라면 아무런 힘도 쓸 수가 없습니다. 그 마음이 공황 상태라는 것입니다. 심리적으로 불완전한 상태이며 헛것을 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예수의 상태는 가장 약한 인간의 상태와 똑같습니다. 그러니 마귀는 얼마든지 예수를 농락할 수 있고 건드릴 수 있으며 유혹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예수 앞에서 마귀는 자기의 능력을 자랑합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능력으로 순식간에 성전 위에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서 속삭입니다.

그 때에 악마는 예수를 그 거룩한 도성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실 것이다.'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 너의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이다' 하였다."(마4:5-6)

예수는 지금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외에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희노애락과 오감을 느끼며 두려움과 공포와 아픔을 아는 것입니다. 그 높은 성전에서 내려다 보는 세상은 어지러울 만큼 정신 없습니다. 이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라니 죽으라는 소리입니다. 그래도 마귀는 뛰어 내려 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니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오늘 마귀에게 시험 당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본질을 가르쳐 준다고 생각 합니다. 예수가 당하는 시험이 오늘 우리들에게 동일하게 적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를 이해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마귀에게 시험을 늘 당합니다. 그래서 자주 걸려 넘어지고 실패하고 조롱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가끔식은 하나님께 항변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왜 이렇게 당하도록 보고만 계시는가 하고 원망합니다. 마귀에게 시험 당할 때 기도하면 즉시 응답을 해주셔서 통쾌하게 승리하도록 왜 안도와 주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섭섭하다는 것이지요.전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왜 자녀들이 세상에서 억울함을 당하고 박해를 당해도 모른척 하시는가 말입니다. 로마의 대 박해때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세상이 볼 때 정말 미련하고 무기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도대체 저들을 지키는 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단 말인가? 저들이 신앙하는 전능자는 왜 당장에 하늘에서 불을 내려서 악한 자들을 심판하지 않는단 말인가? 자기를 따르는 백성들의 고통을 돌아 보지 않는 신을 왜 그렇게 믿으라고만 하는가? 증거를 보여주면 믿겠다고 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고 사는 이들 가운데 말할 수 없는 어려움에 보기에도 안쓰러운 이들이 참 많습니다. 세상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당장 죽을 수 밖에 없는 형편인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전혀 원망이나 불평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극단적으로 마지막 선택을 스스로 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이 당하는 시험에도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가 전혀 대항할수 없는 연약한 상태와 똑같은 처지 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믿음으로 기도해서 성령의 능력을 동원해서 모든 어려움을 멋지게 이기고 악인들을 두둘겨 패주고 주님을 모욕하는 자들을 혼내주고 싶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과 상관 없는 자들에게 굽신 거려야 하고 조롱을 당해야 하고 사정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퇴사를 당하지 않으려고 눈치를 봐야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알아 주지도 않습니다. 똑같은 승진 기회에서도 번번히 낙오 됩니다. 양심껏 회사를 위하여 충성했지만 결과는 예수쟁이라고 기도모임이나 성경 공부 모임좀 했다고 불이익을 당합니다. 이것이 현실 입니다.

믿음으로 기도 했다고 당장에 현실이 영화에서 처럼 반전이 되어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어렵고 비난을 당하고 모욕을 당하면서도 끊임없이 시험이 옵니다. 내가 예수 믿는다면서 왜 삶은 그모양이지? 왜 맨날 돈 때문에 궁상을 떠는가? 그러게 주일에 일하면 될것을 왜 사서 고생을 하는가? 그렇게 믿는다고 뭐가 달라졌는가? 보라구? 세상에서 제일 욕을 먹는곳이 교회라는게 안보이나? 니가 믿는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 이렇게 도전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뛰어 내려라?

믿음으로 못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오직 믿음 하나 잘 간직하면 승리 한다고 성공한다고 말합니다. 마귀는 얼마나 교묘한지요? 예수를 향하여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 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이며 소금이니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사회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와 안락을 제공해야 한다고 합니다. 구제도 압장서야 하고 모든 분야에서 교육이나 경제적으로나 두각을 나타내야 하고 모범이 되어야 하고 서비스를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교회를 보고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믿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해야 할 일을 교회보고 하라고 부추깁니다. 그래도 교회가 희망이라고 합니다. 교회가 유일하게 하나님의 목적이며 관심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교회에 올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피 값으로 사신 교회를 위하여 충성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다른것은 다 잃어 버려도 교회만은 잃어버리면 안된다는것입니다. 믿음하면 교회중심이 최고랍니다. 그것을 강조하다 보니까 무조건 교회 안에만 있으면 안전 하다고 속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별 볼일 없어도 교회안에서 인정받고 집사요 장로요 권사요 성가대원이요 하면 하나님께서 다 지켜 주시고 형통하게 한다고 합니다. 염려 없다고 말입니다.

일단 교회에 믿음으로 충성하기만 하면 당장은 복을 못 받아도 후대가 잘된다고 합니다. 내가 지금 믿음으로 봉사하고 헌금하고 기도로 심으면 자녀들에게 열매가 맺어진다며 독려를 합니다. 기복주의를 타파해도 시원찮을 교회가 압장을 서서 조건과 거래로 신앙심을 유발하는 것입니다. 믿음만 있으면 은혜만 받으면 뛰어 내려도 안다친 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실 것이다.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 너의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이다"

시험하라?

마귀의 소리에 절대로 반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이용하지 마십시오. 그 신분은 우리가 마음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동원해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해서 우리의 원함을 이루워 내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닙니다. 사단 마귀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믿음으로 뛰어 내리라고 종용합니다만 그렇다고 혹 뛰어 내리지 마십시오. 말씀에 기록되었다고 그대로 믿고 뛰어 내리지 마십시오. 마귀가 얼마나 영악한지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가 반응을 보이니까 즉시로 말씀으로 시험하지 않습니까?

시 91:11-12 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 확신까지 하는 마귀 입니다. 장담하지 않습니까? 믿음으로 시험해 보라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실 것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하나님이 다 알아서 책임 지니까 너는 믿음으로 뛰어 내리라는 말입니다. 교회에서는 우리에게 그렇게 믿음을 강조합니다. 내가 처음 개척했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뛰어 내렸더니 엄청나게 은혜 주시고 복을 주셔서 교회가 이만큼 성장했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 합니다. 앞으로도 더 크게 성장 시켜 줄 것을 믿씁니다 하면서 여러분들도 믿음으로 아멘하시기 바랍니다로 마칩니다.

마귀의 교묘한 소리를 예수는 어떻게 대처 합니까? 아무런 보호자나 위로자나 상담자도 없는 예수입니다. 신적인 능력도 지금은 없습니다. 그저 배고프고 목마르고 졸리고 편히 앉아서 쉬고 싶을 것입니다만 끈질기게 마귀는 달라 붙어서 집요하게 공격을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여 왜 그렇게 고생을 자초하는 겁니까? 내가 아주 좋은 기회를 제공 할테니 자. 자  여기서, 성전 꼭대에서 한번 뛰어 내려 보시오. 그러면 천사들이 금방 날아와서 붙잡을 것이고 무사히 땅에 내려 올것이며 사람들은 당신을 하나님의 아들로서 경배할 것이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지 않소? 뭐하러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 게요? 바보 같으니라구.

나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바란다오. 나도 역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써 지금 예수를 도와주라는 특명을 받고 온것이오. 우리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워 가는 동지란 말이오. 차마 당신이 굶고 있느거 못봐주겠소. 미련하게 굴지말고 내말대로 여기서 뛰어 내려봐요. 설마하니 하나님께서 못본채 할리가 있겠소? 오늘 우리 성도들의 심령을 파고 드는 마귀의 소리가 있습니다. 믿음을 가장해서 은혜를 등에 없고 경건의 모양으로 세련되게 가르치는 소리들 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해서 믿음을 증명해 보라는 소리들 입니다. 이것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단호하고도 분명해야 합니다.

시험하지 말아라

오늘 우리는 이러한 마귀의 유혹과 속임에서 이렇게 태도를 정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가치관과 신앙과 믿음의 본질은 이런 자세입니다. 예수가 우리에게 가장 잘 보여주신 모범을 따르는 삶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주님 이라고 믿는 사람들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최종적인 주인과 권위가 사람이 아니라 전통이 아니라 신학사상이 아니라 철학이 아니라 예수입니다. 예수를 따라 가는 삶의 자세와 가치와 태도입니다. 예수가 시험을 이긴 똑같은 원리와 삶으로서만 마귀를 이길 수가 있습니다. 진정한 성령의 능력이란 말씀으로 하나님을 시험치 않는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가 완벽하게 고통과 연약함으로서 사람으로서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긴 힘이 말씀입니다. 말씀을 향한 고백만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악마에게 말씀하셨다. "또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라' 하였다."(마4:7)

우리의 삶의 모습 가운데 혹시라도 하나님을 시험한 경우는 없었을까요? 우리의 경건으로 혹은 우리의 믿음으로 우리의 선행으로 우리의 직분으로 우리의 은사로 우리의 섬김으로라도 하나님을 시험하여 뛰어내린 적은 없을까요? 예수는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며 스승이며 따라가야할 모범입니다. 어떤 것도 예수보다 더 권위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최종 권위는 오직 예수 입니다. 이 말에 동의 하시는지요?

예수께서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마28:18)

아멘.

2008-10-11.[나그네 칼럼] 제 15 호 http://cafe.naver.com/pray153/776

archmi

2008.10.14 23:11:56
*.169.111.253

연약한 인간의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이, 광야에서 그 모든 마귀의 시험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리가 무엇이었을까, 올리신 글을 읽으며 묵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사명감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 사명감의 바닥엔 어리석은 죄인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고,,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라면,, 그 분이 이 땅에서 지키고 이겨낸 것처럼,,
이땅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사명을, 나와 같은 죄인을 향한 사랑의 맘으로 지켜내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그네

2008.10.17 22:21:58
*.7.13.27

졸고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에 올리신 귀한 글 잘 읽었는데 인사도 못해서죄송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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