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잔치의 비유(마22 :1-14)

조회 수 1723 추천 수 35 2009.01.22 21:59:34
혼인 잔치의 비유

예수께서 다시 여러 가지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마22 : 1)

오늘 본문의 시작은 많은 비유 가운데 천국에 대한 내용입니다. 하늘 나라가 어떤 곳인가를 설명하기에 사람의 언어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천국의 실제이시며 주인이신 주님께서 사람들과 같이 되시고 함께 먹고 마시며 살고 있지만 도무지 천국에 대하여 설명하자면 난감한것입니다. 인간의 정서와 문화와 지식에 알맞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비유로 말씀을 하시지만 아무도 그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것입니다.

사실 요한 계시록에서 증언하는 천국에 대한 묘사 역시 가장 뛰어난 방식으로 가르치고는 있지만 그것도 온전하게 천국에 대하여 이해 하기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다만 인간이 생각하는 그 시대에서의 최고의 존귀함과 최고의 가치로 밖에는 설명 불가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주님은 천국의 모습이 마치 혼인 잔치 하는것과 같다고 합니다. 혼인 잔치야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기쁘고 즐겁고 풍성함입니다. 모든 나라와 족속들의 문화가 다르다해도 혼인 잔치에 대한 기쁨은 동일할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을 그런 즐거운 잔치가 베풀어지는 곳임을 이해하는것은 중요합니다. 이 땅에서의 즐거운 잔치는 한시적이며 모두에게 동일한 잔치가 될 수 없지만 천국의 혼인 잔치는 매일이며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주님께서는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시는것일까요?

지금제가 사용하는 성경은 표준새번역입니다만 개역개정판에서는 약간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번역이냐에 따라서 방향이 다르게 갈수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참고하며 비교해야합니다.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렇게 누군가에게 대답한 것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주님께 질문을 하였고 그가 누구냐에 따라서 혼인 잔치의 비유가 설명이 될수 있습니다. 결국 혼인 잔치의 비유가 나오게 된 원인을 따라 가자면 21장으로 거슬러 가야 합니다. 대략적으로 그 내용을 서술해보면 이렇습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 이후에 예수께서 많은 민중들에게 새로운 선지자로서 환영을 받게 되었습니다. 요한의 강력한 사역에 당시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서기관및 바리새인과 사두개파를 포함-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의 입장이 곤혹 스러워졌습니다.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라고 두려워한 것입니다. 요한 스스로 광야의 외치는자의 소리라고 이사야서를 공공연하게 인용하였고 실제로 요한의 가르침은 권세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세례를 받고자 따랐던 것입니다. 더구나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거침없이 책망 하였기에 그들로서는 굉장한 대적을 만난것입니다. 결국은 헤롯에 의하여 감옥에서 죽임을 당했고 그들은 한숨을 쉬었었는데 갑자기 나사렛에서 등장한 선지자 예수때문에 바짝 긴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요한보다 더 강력한 권세와 표적을 행하는 주님을 보고서 그들은 매우 놀라워 합니다. 이상한것은 상식적으로도 죄가 없으시며 행하심과 가르침이 하늘에서 온자가 아니면 도저히 행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완고하게 주님을 거절한 것이며 대적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자 모든 백성들이 '호산나' 찬양하였고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 안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다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고 분노하셨습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성전의 본질을 가르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시에는 보이는 성전의 역할이 있었기에 성전을 정결하게 하셨고 후에 성전이 무너짐은 바로 그 성전이 타락했기 때문임을 보여준 사건이며 영적으로는 참된 성전이 주님이시며 오늘날의 성전은 주님을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믿고 고백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한 무리들의 모임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 안에서 거룩한 성전된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다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 같은 강도의 소굴이 있다면 주님은 결코 간과하지 않으시며 어떤 식으로든 거룩하게 만드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계속해서 스스로 정결함을 위하여 투쟁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거룩한 성령은 더 이상 함께 있지 않으시며 떠나실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며 각자가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성전에서 행하신 소문을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분하게 생각하며 틈을보아 죽이려고 엿보고 있었습니다. 이로보건데 전혀 회개하거나 뉘우칠 마음이 없는 것이며 그들은 결국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세상의 권세와 부귀와 명예를 섬김이며 그것은 필연적으로 사단을 섬김이 되는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그리스도임을 알았지만 거절한 것입니다. 짐짓 거절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자 청년 처럼 많은 재물을 포기하고서 주님께 돌아올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포기할수 없기에 결론은 대적하며 죽이고자 한것입니다. 진리안에 거하지 않으면 진리를 피하던지 무시하던지 대적하던지 할 뿐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자세하게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는 주님께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다가와서 말하기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합니까?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습니까?" 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를 물어 보겠다. 너희가 나에게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겠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서 왔느냐? 하늘에서냐? 사람에게서냐?" 그러자 그들은 자기들끼리 의논하며 말하였다. "'하늘에서 왔다'고 말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요, 또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자니, 무리가 무섭소. 그들은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 "모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도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이러한 대화가 오고간 후에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오늘 혼인 잔치까지 나온 동기입니다.

포도원 농부와 두 아들의 비유를 듣고서 그들은 자기들을 말하는것임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잡고자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선지자로 믿고 있었기에 함부로  할수가 없어서 속으로 분을 삭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진리의 말씀이 들려지면 보이지 않게 으르렁 거리는 사단과 그에 속한 세력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숨어있는 불의함을 만천하에 들어내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심판의 일차적인 것이"너희는, 남에게 보이려고 의로운 일을 사람들 앞에서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네 앞에서 나팔을 불지 말아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네 상을 이미 다 받았다."(마6:1-2) 로 나타납니다.

중요한 것은 저들은 비유가 의미하는바를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었기에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대적하는 모습으로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몰라서 믿지 못한다고 변명하지만 알아도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몰라서 못지킴이 아니라 알아도 못지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사람의 것이 아니며 구원도 모두의 것이 아니며 영생도 모두의 것이 아니며 복음도 모두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은혜 안에 거한다는것을 자랑하기에 앞서서 감사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진리의 지식에 대하여 몰라서 주님을 거절함이 아니라 알아도 거절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러저러한 문제들과 대안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정작 들어야할 대상은 전혀 듣지 않고 개혁할 생각도 없습니다. 몰라서 그런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알아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결국 대안은 개혁을 생각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말씀을 듣고 진정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런 공동체가 세워져야 하고 그런 공동체의 리더는 사람이 하면 또다시 빗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시며 우리의 영원한 리더는 성령이십니다. 그분께 온전히 맡길 때 진리 가운데 인도하실 것이며 낮아지게 하시며 진정한 주님의 본을 행하는 섬김이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부름을 받은 사람들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임금이 자기 종들을 보내서, 초대받은 사람들을 잔치에 불러오게 하였는데,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은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시며 자기 종들은 구약에 보낸 천사들과 선지자들이며 오늘날의 복음전도자들입니다. 성경은 어제와 오늘과 내일에 대한 비유이며 예언한 말씀이며 이미 이루어진 역사와 이루워질 역사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은 선지자들이 보냄을 받아서 왔지만 그들은 거절하였습니다. 그들이 누구일까요? 구약의 이스라엘입니다. 언약공동체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구약성경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오직 택한 족속이었던 하나님 나라의 장자였던 이스라엘,선민 이스라엘이 고집을 부리고 완강하게 초청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들은 계속 자기 길을 고집하였습니다.

다시 부르시는 하나님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초대받은 사람들에게로 가서, 음식을 다 차리고,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아서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잔치에 오시라고 하여라.'

이제 다시 부르시는 은혜의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한 것을 완전하게 준비를 했으니 마음을 돌이키시고 와주시기를 부탁하였습니다. 잔치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풍성하게 준비를 마쳤으니 와서 함게 기뻐하며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자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준비할게 없으니 그저 오시기만 해달라는 간청입니다. 잔치 자리를 흥겹게 즐겨주시고 함께 누리기를 간절히 원하신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제는 일대일로 초청을 하실 만큼 하나님은 다급해 진것입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테니 오기만해주십사 통 사정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시는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초대받은 사람들은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떠나갔다.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가고, 한 사람은 장사하러 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임금이 보낸 종들을 붙잡아서, 모욕하고 죽였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자존심을 포기하시며 간곡하게 타이르며 돌아오라고 사정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불같은 사랑입니다.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렇게 불렀건만 초대받은 사람들은,부름받은 사람들은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잔소리로 알아들었습니다. 귀찮아 했습니다.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가고, 한 사람은 장사하러 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임금이 보낸 종들을 붙잡아서, 모욕하고 죽였다. " 각자 자기일 하기에 바쁘다고 무시하였습니다. 하도 귀찮게 하니까 종들을 붙잡고 모욕하고 죽여버렸습니다.

하늘아, 들어라! 땅아, 귀를 기울여라! 주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자식이라고 기르고 키웠는데,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저를 어떻게 먹여 키우는지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 슬프다! 죄 지은 민족, 허물이 많은 백성, 흉악한 종자, 타락한 자식들! 너희가 주를 버렸구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업신여겨서, 등을 돌리고 말았구나.(사1: 2-4)

임금은 노해서, 자기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도시를 불살라 버렸다.

임금의 초청을 계속 거절하는것은 모욕이며 멸시이며 반역입니다. 그만한 댓가를 치루어야합니다. 이 비유의 뜻을 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또한 공의로우시며 악을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것밖에는 모릅니다. 하나님의 불같은 진노에 대하여 왜 이렇게 하십니까?하고 항의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항의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항의합니다. 그것에 대하여 이사야와 바울은 토기장이와 그릇을 비유로 설명합니다. 창조주의 주권에 대하여 우리는 사실 아무런 말할 권한이 없습니다. 거기까지입니다.

분명한 것은 살인자들을 심판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동네를 불살라 버린것이 살인한자들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열명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많은 소돔성 사람가운데 의로운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과연 의로운 사람이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비록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긍휼히 여김을 받은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역시 그릇된 길로 가고만것입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았던 롯이 하나님의 심판과 경고를 경험했다면 어찌하든지 아브라함을 찾아야 하는것이 아니었을까요?

사실은 롯에게 기회가 있었습니다. 소돔성이 일차적으로 징계를 받았습니다. "아브람의 조카 롯도 소돔에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롯까지 사로잡아 가고, 그의 재산까지 빼앗았다."(창14:12) 그 때에 극적으로 살아나온 롯이 다시 소돔성으로 간 것은 뼈아픈 실수입니다. 그때가 다시 회복할수 있었던 기회였고 부르심이었습니다만 롯은 소돔의 부요함을 포기할수 없었고 결국은 베드로의 증언처럼"그리고 소돔과 고모라 두 성을 잿더미로 만들고 멸망시키셔서, 후세에 경건하지 않을 자들에게 본보기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무법한 자들의 방탕한 행동 때문에 괴로움을 겪던 의로운 롯은 구해 내셨습니다. 그것은 의인인 그가 그들 가운데 살면서 보고 듣는 그들의 무법한 행실 때문에, 날마다 그의 의로운 영혼에 고통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벧전2:6-8)

이때가 기회였습니다. 롯이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기에 기회를 허락하셨건만 롯은  그 기회를 적극적으로 잡지 못하고서 다시 소돔성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주님께서는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할 수 없을 때 환경이나 어떤 사건을 통해서 회복시키는 기회를 주시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서 더 큰 어려움을 만나면 왜 이러십니까하고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핟지라도 주께 원망할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인류를 향한 부르심

그리고 자기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사람들은 이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 그러니 너희는 네거리로 나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청해 오너라.' 종들은 큰길로 나가서,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만나는 대로 다 데려왔다. 그래서 혼인 잔치 자리는 손님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불신에 대하여 어리석다 하면 안됩니다. 아담의 범죄를 원망할 수없습니다. 믿지않는 어떤사람들의 하나님을 불의하다는 생각에 귀를 기울일 피요가 없습니다. 그들이 보는 시각이 그정도임에 대하여 비난할 이유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예전에 그들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전에는 범죄와 죄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그 때에 여러분은 범죄와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우리도 전에는 그들 가운데서 모두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바라는 대로 행하여,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로부터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엡2:1-3) 자랑할것도 없고 교만할것도 없으며 원망할 수도 없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이방인인 우리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이 넘어 온것입니다. 우리가 의롭거나 도덕적이거나 하나님 보기에 괜찮아서가 아닙니다. 뭔가 특별해서도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그것을 오해한 나머지 내가 쓸만해서 믿음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것은 아닌지요. 가만히 보면 그런 사람들 좀 있습니다. 어쩌면 저도 그들중 하나일 수있겠지요.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으로 생각했던 것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습니다. 오직 택한 선민이라는 대단한 유대민족들의 생각이 틀렸다는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복음은 그런 의미입니다. 구원이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주어진 것임을 알지 못햇습니다. 이스라엘을 부르심은 그들을 통해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 뜻을 알지 못하고 오해한 결과가 이스라엘의 역사이며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혼인 잔치

종들은 큰길로 나가서,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만나는 대로 다 데려왔다. 그래서 혼인 잔치 자리는 손님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하나님의 계획은 취소될 수 없습니다. 계획된 혼인 잔치는 가장 화려하고 풍성하게 열려야 합니다. 아들의 혼인 잔치는 이제 준비되었습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는 시작되었습니다. 모든것이 준비 되었고 잔치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처음 부름을 받았던 이스라엘이 거절한것이 이제는 모든 이방인들에게로 초청이 확산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조건도 필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부르신자에게 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원함이 아니라 부르심입니다. 그렇다면 부름을 받은 자에게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준비한 예복

임금이 손님들을 만나러 들어갔다가, 거기에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는 것을 보고서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을 입지 않았는데,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는가?'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 때에 임금이 종들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의 손발을 묶어서, 바깥 어두운 데로 내던져라. 거기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하였다.

혼인 잔치에 많은 손님들로 가득하였습니다. 잔치에는 손님들이 가득해야 합니다. 천국의 잔치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기뻐할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임금이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반가움에 손님들을 영접하러 연회장으로 들어갑니다. 초청을 거절하지 않고 와준 고마운 사람들을 보고자 말입니다. 아들의 혼인 잔치를 기쁨으로 축하해주려고 온 고마운 사람들이니 얼마나 예뻐 보였을까요? 사람들과  인사를 하던중에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보았습니다. 임금이 그를 보고 말합니다.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을 입지 않았는데,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는가?'

그 때에 예복을 입지 않은 그 사람은 아무런 말도 못했습니다. 할 말이 없었던 것입니다. 갑자기 초대를 받고 와서 경황이 없었을 것입니다. 일하다가 급히 오느라고 작업복을 갈아 입지 못해서 그냥 혼인 잔치에 참석했을 것입니다. 원래 오려고 작정한것도 아니고 하도 부탁을 하니까 와 준것입니다. 그런데 임금이 '이 사람의 손발을 묶어서, 바깥 어두운 데로 내던져라. 거기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하고 내어 쫒은 것입니다.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오라고 해서 왔는데 옷이 더럽다고 괄세를 하다니요?

그러나 이사람은 분명히 고의적으로 임금을 멸시한것입니다. 그것은 혼인 예복으로 준비된것을 거절한 것입니다. 임금이 종들을 시켜서 급하게 대려온 사람들이 당연히 예복이 없을것을 몰랐을까요? 혼인 자리에 합당한 예복을 넉넉하게 준비했을 것이며 종들을 시켜서 예복을 갈아 입도록 도와주었을 것입니다. 혼인 잔치에 합당한 예복을 입고 들어가야하는 것입니다. 초대 받은 사람은 그것을 감사함으로 입고 들어가야합니다. 임금의 호의에 감사하면서 말입니다. 부름받은 사람들은 많지만 준비한 예복을 거절한것입니다. 그러기에 버림을 당한것입니다.

바깥 어두운 데로 내던져라

내던진다는 것은 끊어짐을 의미합니다.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가지에 붙어있지 못한것이 심판입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끊어짐이 심판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붙어있으라고 합니다. 부름을 받아서 왔지만 부르심에 합당한 옷을 입지 않는다면 그는 아무런 할말이 없는 내어 던져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잔치에 상관 없는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복은 성도의 옳은 행실이라 합니다. 그리스도의 뜻에 합당한 삶을 예복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한자들입니다. 반석위에 집을 짓는자는 말씀을 듣고 행한자들이며 좁은길과 좁은 문으로 가기를 힘쓴자들입니다. 주의 이름을 믿는자로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하여 고난과 핍박을 견디며 사는 자들입니다. 주여 주여 입으로만 부르고 나중에 도무지 모르는 불법을 행한 자들이라고 내어버림을 당한 자들이 아니라 알곡이 되어서 추수한 곡식입니다.

또한 오늘 혼인 잔치에서의 예복은 그리스도의 의의 옷입니다. 사람의 의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완전한 그리스도의 의의 옷입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자여야만 합니다. 임금은 이미 예복을 준비해놓았습니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사람들은 이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 그러니 너희는 네거리로 나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청해 오너라.' 종들은 큰길로 나가서,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만나는 대로 다 데려왔다. 그래서 혼인 잔치 자리는 손님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주님의 비유에서 핵심은 손님의 어떤 행실을 문제삼는게 아니라 임금의 뜻입니다. 혼인 잔치를 채우라는 것입니다. 아무나 이며 누구나 이며 무조건적인 초청입니다. 악한사람, 선한 사람, 만나는 대로 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초청은 누구든지 오라 입니다. 너희 모든 목마른 사람들아, 어서 물로 나오너라. 돈이 없는 사람도 오너라. 너희는 와서 사서 먹되,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와 젖을 사거라. 우리의 의로는 우리의 행실로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갈 수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부르셔야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옷입니다. 다른 옷은 아닙니다. 우리의 옷은 더럽고 낡았습니다. 위리의 손으로 깨끗하게 빨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씻을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내가 의로워 져서 선한 행실을 해서 감히 하나님앞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준비한 아들의 옷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서 뭔가를 들고 가야한다는 것입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너무 더러워졌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우리의 더러움을 씻겨주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단 하나의 조건은 혼인 예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한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죽이려할 때 수풀에 걸린 양을 준비하셨습니다. 여호와 이레입니다.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고 살펴보니, 수풀 속에 숫양 한 마리가 있는데, 그 뿔이 수풀에 걸려 있었다. 가서 그 숫양을 잡아다가, 아들 대신에 그것으로 번제를 드렸다. 이런 일이 있었으므로, 아브라함이 그 곳 이름을 여호와이레라고 하였다.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주의 산에서 준비될 것이다'는 말을 한다. 히, '아도나이 이레(주께서 준비하심)' 또는 '주께서 산에서 친히 보이신다'

이 비유를 들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끝까지 주님을 거절하였습니다.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그들입니다. 구약에 능한 자들입니다. 알지만 거절하였습니다. 왜 거절했을까요? 귀신들은 주님을 알아 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알고 두려워 떨었지만 결코 회개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타락하고 범죄한 천사, 악한 천사들은 결코 회개할 수 없습니다. 오직 멸망이 예비되었을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회개할 수 없습니다. 기회가 박탈당한 것입니다. 주님을 거절한 종교지도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이미 악한 사단에게 순종함으로 진리를 알고 그리스도임을 알았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예복을 거절한 사람과 같습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종말의 시기와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지금이 곧 그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징조가 보이거든 인자가 가까이 온줄 알라고 제자들에게 경고하십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고  말입니다. 도적같이 올것을 이르십니다. 오늘 혼인 잔치 비유는 임박할 마지막에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때 예복을 입지않은 사람처럼 바깥 어두운데 내어 버림을 당하여 슬피울며 이를 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삶의 중심과 마음에 목표가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보이는 것을 소망하는 삶일까요?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입니까? 우리는 값없이 거저 구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압니다.

부름받은 사람은 많으나, 뽑힌 사람은 적다."

주님의 탄식입니다. 모든 사람을 부르시지만 뽑힌 사람은 적다는 탄식이며 안타까움 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이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을 거절하는 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에 대한 확신보다는 구원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신학적으로 교리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구원은 영원 구원이라는 것이 분명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틀림 없습니다만 문제는 우리가 그 약속안에 계속적으로 들어 서 있다는 보장입니다. 그러한 보장과 자신감이 과연 우리에게 있을까요?

만일 그렇다면 성경과 사도들은 배도자와 타락한 자들을 거론하면서 깨어 있으며 정신을 차리라고 하며 의의 병기로 살고 불의의 병기로 사용되지 말라하며 인내하며 믿음을 굳게 잡으라고 하는것일까요? 그렇습니다. 한번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됨과 구원은 결코 취소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하게 구원을 누릴수 없는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한다면 이스라엘의 넘어짐을 거울과 본보기로 보여준것과 같이 우리도 넘어질까를 조심한다는 의미에서 구원은 취소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삶이 훨씬 지혜로운 입장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의 구원이 요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면 과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들과 기회들을 어떻게 누려야할까요? 저는 이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긴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갈5:24-25)

2009/01/23.ⓒ주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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