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말1:8~9)





매주 수요예배에는 여호수아를 연속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어짜피 제 아내 혼자 앞에 앉혀놓고 더위에 연신 흐르는 땀을 부채로

식히면서 곤욕스럽게 하고 있습니다만,

지난주에는 여호수아 4장 1~7절을 본문으로 나눴습니다.

참고로 저는 저녁에 야간 근무하러 가야 하기에 오전 11시로 시간을

정해서 드리고 있습니다.



인간의 기억력이 그리 좋지 않다는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건널 수 없는 요단강을 기적적으로 건넜습니다.

언약궤를 어께에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에 들어서자 물리끊어졌습니다.



마른 땅처럼 길이 열렸습니다.

홍해를 말리우신 그 능력이 여호수아와 함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앞에

거짓말처럼 펼쳐진 것입니다. 알다시피 이전 홍해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뿐입니다. 지금 세대들은 광야 세대입니다.

오직 부모로부터 홍해를 건넌 기사를 흥미진진하게 전해 들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들에게 보고서도 믿을 수 없는 신나는 일이 현실적으로

펼쳐진 것입니다. 더 놀라서 정신을 잃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리고성에서 내려다보는 사람들 말입니다.

흘러넘치는 요단강물이 거짓말 처럼 끊어지고 수 백만명의 이스라엘백성들이

육기같이 환성을 지르며 건너오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정신을 차릴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을 하십니다.

이스라엘 매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둘을 택하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어깨에 멜 만한 돌을 각각 가져다가 유숙할 곳에 놓으라고 하십니다.

훗날에 누가 묻거든 이 돌들이 무엇이냐고 어린 자녀들이 후손들이 묻거든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었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 하라(수4:7)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바로 그런 기억함을 위하여서돈 반드시 하나님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이 자신을 성결하도록 제단앞에서 말씀을 통해 씻겨져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계속적인 은혜를 공급받게 되며

잊지 않고 바르게 직분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 개개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원리입니다.

기억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계속 꾸준히 말씀을 묵상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를 전심으로 찾는 자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사랑하십니다.



당시의 제사장들은 어쩌다가

말라기 선지자의 준엄한 경고의 말씀을 듣게 되었을까요?

결국은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기에 게을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의 선지자들의 공통적인 선언에서도 알수가 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경고를 얼핏 들으면 마치 무엇인가를 하나님앞에 열심으로

행해야만 하는것으로 오해아닌 착각을 하게도 들립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원하시는데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인가를 알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신다고

여러분은 생각하시는지요? 다른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것입니다.

이것을 이스라엘은 수 백년동안 하지 못햇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역시 사울 왕에게 어떻게 증거합니까?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이말씀은 결국

말씀을 잘 듣는것이 곧 순종함에 이르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왜 순종을 주저 할까요?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자꾸만 다른것에 집중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의 실패는 그것때문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의 실패는 그것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성도들의 신앙에 힘이 없는 것은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열두 사도가 제자들을 모두 불러서 말했습니다.

“음식을 나누어 주는 일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햏6:2)



우리는 기도하는 일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겠습니다.”(행6:4)



성도의 신앙과 믿음의 본질입니다.

행함은 그 후에 저절로 나타납니다.

듣지 않고 어떻게 전하며 보낸자가 없이 누가 떠나겠습니까?

듣는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패하고 타락하게 된 원인을 살펴 보십시오.

말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면 보이는 것에 집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과거 중세기에 그랬습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니까 보이는 권위를 세우려고 엄청난 건축을 동원합니다.



개혁자들이 무엇을 외쳤나요?

성경으로 돌아가자 아닌가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의 교회들은 과연 말씀을 집중합니까?

말씀을 집중하고 말씀으로 풍성하면서 왜 자꾸만

다른것으로 만족을 채우려고 할까요?



속이 비어있으면

겉을 화려하게 치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더 화려하고 더 웅장하고 더 자극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이슈가 되는 무슨 사도 운동들도 안봐도 보입니다.

말씀이 없으면 자꾸만 현상에 환성을 지르는 것입니다.



말라기 선지자의 호통을 듣는 제사장들이 왜 그렇게 엄청난 죄악에 빠졌을까요?

말씀을 듣지 않고 제사 행위에만 열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차츰 익숙해지니까 번잡스러운 것입니다.

어짜피 불에 태워서 사라질 제물이 흠이 있으면 대수냐는 것입니다.

희생제물을 면밀하게 살펴서 흠이 있거나 불결한 것은 걸러져야 합니다.



제사장들은 그것을 귀찮게 생각한 것입니다.

누가 보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느냐는 것입니다.

이 일이 얼마나 복잡하고 까다로운가 하는 것입니다.



하도 오래 세월이 흐르다 보니 그것마져도 잊어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양심과 마음에 찔림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래도 괜찮을까 하면서 조마조마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흠있는 제물로 제사를 드렸어도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공연히 두려움에 그동안 수고 했다 생각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만 속이다가

이제는 백성들까지 대담하게 속이는 것입니다.

잘도 속아 넘어가는구나 하면서

제사장들은 자기들 잇속 차리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무조건 좋은 제물이 들어오면 빼 돌리고

가치없고 흠있는것은 제사제물로 둔갑을 시켰습니다.

이런 관행이 언제까지 였다고 생각하시나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사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서

장사하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둘러 엎으셨습니다.

진노하셨습니다.



당시에 감히

갈릴리의 목수의 아들이며 젊은 랍비인 청년 예수가

성전에서 소란을 피운 것입니다.



상식적으로라면

제사장들과 당시 빌라도의 군병들에게 체포되었어야 합니다.

공의회에 끌려가서 성전 모독죄로 심문을 당해야할 판국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성전보다 더 크신 예수님이시기에 그런 것입니다.

참 성전 이시기에 그런 것입니다.

당시의 성전제도를 인정하셨기에

아버지의 집이 강도의 굴혈이 되는 것을 참지 못하신 것입니다.

이 때까지도 제사장들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너무 오래 지나니까 잊어버린 것입니다.

죄가 죄인줄도 모르고 그렇게 굳어져서 화석처럼 단단해진 것입니다.

죄란 그렇게 우리의 심령을 단단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이렇게 가는 것입니다.

적나라하게 제사장들의 죄를 지적하고 있지만 못알아 듣습니다.

너희들이 언제 여호와를 멸시했느냐고 항의 하는데 이런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제사를 멸시했다는것에 있는것이 아닙니다.

이미 제사장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한 것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셔서 사람에게 무엇을 받는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하나님께서는 만유를 창조하시고 붙드시고 모든 생명을 공급하시는 베푸시는

분이시지 무엇을 바라시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신은 우상뿐입니다.

목석으로만들어진 허상들  말입니다.

사람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신을 만들어서 하나님이라 부르는 헛된 신말입니다.

그 우상뒤에서 사람들이 욕심을 부리고 사람들을 속여서 빼앗고 착취하는 것입니다.

종교와 신앙, 즉 종교와 기독교의 근본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기독교의 모습이 영낙없이

우상이나 이방종교를 따라가고 있다는것을 아십니까?

여러분들의 눈에는 안 보입니까?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제사장들은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습니다만

선지자들은 말씀에 목숨 걸었습니다. 말씀을 잘 듣는 선지자들은 죄를 보는데

제사장들은 죄가 안보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 입니다.

말씀과 성령의 감동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뻔히 보이는 것이

저들에게는 안보입니다.

아무리 말씀을 외쳐도 귀가 막혔으니 못알아 듣습니다.

예수께서 하시는 진리의 말씀을 듣고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당시 제사장들은 못 알아 들었습니다.



성경에 명백하게 계시 되었고 밝히 기록되었는데도

그 말씀을 듣지를 않으니까 눈 멀어서 앞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본다고 하는데 전혀 못 보면서

보려고 하는 자들까지 걸려 넘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누가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말1:8~9)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앞에 대면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경험들과 지식을 내려 놓고 겸손하게 말씀앞에 나와야 합니다.

파숫군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간절하게 주의 말씀을 기다려야 합니다.

새벽을 깨워서 주의 말씀을 기쁨으로 듣기를 소원합니다.

말씀을 청종하는 것을

모든 제사와 기름보다 더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2008-08-15.주님과함께

조재춘

2008.08.15 02:39:36
*.113.73.168

아멘! 아멘! 아멘!
귀한 말씀 고맙습니다.

죄는 심령을 단단하게 한다.....그러기에 죄가 죄인줄 모르는 시대......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아니함이요. (요16:9)
예수님! 당신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롬14:9)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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