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의 편지

조회 수 1117 추천 수 51 2009.05.21 21:52:06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거룩히 구별하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존하시며 부르신 자들에게 편지하노니<흠정역>


신약성경의 한권의 책인 유다서입니다. 비록 간단한 서신서이기는 하지만 매우 중요한 복음과 거짓 교사들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으며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속지말고 오직 소망을 예수 그리스도께만 두라는 권고를 하고 있는 복음서중의 복음서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또한 신약성경의 요한 계시록이 신구약의 마지막 결론에 해당한다면 유다서는 사복음서와 서신서의 마지막이라 해도 좋을것입니다. 그러므로 표현이 극단적일 정도로 분명하여서 미혹의 시대요 어둠의 시대인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정확한 이정표로서의 가치가 풍성한 서신서라 생각합니다.

성경에 유다라는 이름이 많이 있기에 약간의 혼동이 있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 본서의 작성자는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중에 막내인 유다로 봅니다. 아래 참고성경.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닌가? 그는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이 아닌가? 또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와 같이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를 달갑지 않게 여겼다.(막6:7)표준새번역.

유다가 자신을 누구라고 말하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이라고 분명하게 자랑스럽게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는 아담안에서 주인이 누구였습니까? 아담이 불순종 하여서 선악과 열매를 먹기 전까지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형상이었습니다. 좀더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이었으며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이 아담의 주인이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주인과 종의 관계라는 말이 아니라 창조주와 피조된 사랑의 관계라는 것이었고 아담은 그러나 모든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구의 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표로서 에덴동산을 관리하고 다스리고 보호하는 엄청난 특권을 누리는 존귀한 신분이었다 그말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하와를 통해 스며들어온 사단의 전략에 속아서 그의 모든 신분이 박탈을 당해버렸습니다. 신약의 성경은 이러한 것을 가리켜서 '죄에게 지면 죄의 종'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사단의 속임에 넘어갔으니 아담은 이제 사단의 종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담안에서 태어난 모든 인생들의 주인이 누구라는 것입니까? 바로 사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주인이 누구라는 것입니까? '사단' 입니다.

사단은 하늘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반역하다가 그 불의가 들어나서 내어 쫒김을 당한 것입니다. 하늘에 있을 곳이 없으니 우주공간을 떠돌아 다니다가 이 땅을 삼킨 것입니다. 아담이 원래 이 땅의 대리자로서 위임을 하나님께 받았었는데 그 위치가 뒤바뀐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함으로 땅이 저주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던 아담과 하와가 그 형상을 잃어버린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해야할 거룩함을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이 오염되고 파괴됨을 그대로 방치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예가 그것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은 잃어버렸던 아담의 형상을, 하나님의 형상을 도로 찾으시기를  원하셨고 그 유일한 열쇠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만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사단으로 인하여 들어온 죄를 못 박아 버리심으로 온 인류를 사망으로 몰아간 죽음의 세력을 깨트려 버린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것이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믿음으로 믿는 모든자들에게 다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사단의 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옮겨졌다는 것입니다. 애굽의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를 통과하고서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전에는 애굽왕 바로가 주인이었으나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온 천하 만국에게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선택받은 민족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거룩해서도 아니고 의로워서도 아니고 숫자가 많아서도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일방적으로 약속하신 "언약"에 의하여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베푸신 은혜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구원을 받은 이유가 우리의 어떠한 공로나 의로움이나 댓가가 아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피값으로 거저 주어진 선물이며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믿어짐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고 믿기지를 않는 자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해당이 안되지만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유다는 편지 인사말에서 어떻게 자기를 표현하는지 주목해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유다' 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입니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다의 정체성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표현하시겠습니까? 자기 이름을 넣어서 한번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종 □□□ 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러한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안에서 바울과 베드로와 스데반과 여러 사도들과 함께 종된 형제들이라는 것이 믿어지시는지요? 바울의 서신서를 보십시오. 그는 실라와 디모데를 형제라고 표현합니다. 또한 아나니아가 사울이 바울되기전에 부활하신 예수의 빛때문에 눈을 뜨지 못하여 고통중에 기도할 때 그에게 가서 '형제 사울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로 보게하신다' 하며 말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안에서 모두가 형제요 자매요 그리스도의 몸에 있는 존귀한 지체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누가 높고 천하고 낮고 이런 것이 전혀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나 여자나 민족이나 신분이나 구별이 없이 그리스도의 피로 산 귀한 형제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존귀한 신분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복음에 참여한 자들이 바로 형제들 입니다. 그리고 유다는 이러한 자랑과 긍지를 듬쁙 담아서 누구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것일까요?


사랑하는 자들아, 공통으로 얻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쓰려고 열심을 내던 차에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너희가 힘써 싸우라고 너희에게 써서 권면할 필요를 느꼈노니(흠정역)


이 세상에 흩어져 있는 모든 사랑하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믿음안에서 온갖 불의함과 세상 정욕과 우상숭배의 문화속에서 자기를 지키려고 애를 쓰다가 때로는 넘어지기도 하며 욕을 당하기도 하며 억울함도 감당할 수 밖에 없는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편지입니다. 그리고 불의와 거짓이 판을 치고 있는 이 시대속에서 처음 구원의 말씀을 듣고 복음을 받아드렸지만 계속되는 거짓과 삯군들의 거짓 가르침 때문에 심령이 상하고 방황하는 연약한 형제 자매들을 위하여 보내는 복음편지입니다.

복음은 어려운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단 번에 복음을 듣고 예수를 구주로 믿어지는 순간에 이미 주어진 것입니다. 앞으로 하는것 봐서 주던지 뺏던지 하는것이 아니라 믿을 때에 주어진 것입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것과 교회를 믿는것과 예수를 믿는것은 엄염히 다른것입니다. 예수 믿습니까? 라는 질문에 교회다녀요 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회만 나오면 구원얻는줄로 착각하도록 만일 가르치는 자가 있다면 큰일입니다.

문제는 본 서신서를 쓴 이유는 바로 '공통으로 얻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쓰려고 열심을 내던 차에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너희가 힘써 싸우라고 너희에게 써서 권면할 필요를 느꼈노니' 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얻은 구원과 성도들이 얻은 구원의 내용이 차이가 있는게 아니라 공통적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목사의 구원과 성도의 구원이 틀리지 않다는 것입니다. 직분자의 구원얻음과 일반 성도들의 구원 얻음이 틀린게 아니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 한번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누구든지 믿는자들에게 죄사함과 예수의 부활함으로, 누구든지 믿는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믿어지는 순간에 이미 되었다는, 이미 이루워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 한번의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계속 해서 십자가에 죽으실 필요가 없이 영원히 단번에 이루신 속죄요 구원인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전파된 말씀, 즉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을 때에 우리의 운명이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옮겨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또 그는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리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요5:24/흠정역>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의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갔다.<표준새번역>


구원은 이렇게 즉각적이며 영원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이 우리가 만들어 내는 어떤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내려온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근거가, 죄사함의 근거가 의로워짐의 근거가 인간의 행위나 공로주의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도 바울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전한 것입니다. 평생을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워 지려고 온갖 계명을 살피고 가르치고 행한 이스라엘의 의로는 단 한사람도 믿음에 이르지 못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갈2:20/흠정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으며 그리스도를 얻으려고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가치 없게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주장을 과연 당시 유대인들이, 더구나 종교인들과 전문적인 율법학자들과 성전에서 거들먹거리는 제사장들에게 용납될 수가 있겠습니까? 가말리엘이라는 유명한 석학도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입니다. 사울의 스승이었던 가말리엘이 바울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성경은 침묵합니다만 대부분 사울의 비범함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바울이 예수때문에 미쳐버렸구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복음을 이용하고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수 많은 단체와 기관들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말하며 십자가를 걸어놓고 그들은 부르짖으며 성경을 말합니다. 뜨겁게 기도하며 건물 쌓기에 올인합니다. 더 많은것들을 차지하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며 예수 이름을 더럽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자기의 이익의 재료로써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씩 꺼내다가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고 말하는 자들이 우굴거립니다.

그러나 그들의 열매를 보면 예수와 사도들의 열매와는 전혀 다른 것을 우리는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구분이 안된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구분이 안되는 이유는 당신이 개을러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읽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당신은 구원 받은게 확실하다고 착각할 수는 있어도 그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분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직무 유기라는 말입니다. 당신이 구원 얻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과연 그러한가? 하고 자세히 주의하여 살펴보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모습이 어떤지 구분할 줄 모른다면 큰일입니다.
아무리 세상적으로 아름답고 인간적인 사랑이 넘쳐나고 풍성한 성공과 사람들의 칭찬과 인기가 있다해도 성경에서 말하는 열매와 비교할 줄 모른다면 당신의 영적인 눈이 어두움에 있거나 예수 그리스도와 전혀 상관 없는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은 성전이 있었고 제사장들이 있었고 예배가 있었습니다. 율법도 있었고 계명도 있었고 서기관들같은 전문적인 성경박사들도 있었습니다. 해마다 절기마다 드리는 제사와 의식들로 풍성하였습니다만 시대 시대마다 나타난 선지자들(예언자들)은 이상하게도 이스라엘을 향하여서 질타하였습니다. 그러한 모든 행위들이 가증한 것이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며 우상 숭배하는 패역한짓을 당장 멈추라고 고발하였습니다. 왜그랬을까요?
당시 이스라엘의 왕들과 거짓 선지자들과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선지자의 소리를 듣기 싫어하였을 뿐만 아니라 멸시하며 핍박하며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자기들의 행위를 규탄하는 선지자들이 미쳤다고 생각했지 자기들이 미친행위를 하고 있다는것을 꿈에도 몰랐던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열심으로 섬기는 자기들을 대항하는 불의한 자가 선지자들이라 착각한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와 재물을 원치 않는다는 호세아 선지자의 지적에 그들은 코웃음을 치면서 사단아 물러가라 하였습니다만 모든 선지자들이 예언처럼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는 언어를 쓰며 자비와 긍휼이 없는 난폭한 이방나라들에게 짓밟히고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던 성전은 무너졌고 하나님이 떠나버린것을 그들은 인식하지 못한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오셨을 때도 똑같았습니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히4:12/흠정역>


말씀이 일하십니다. 사람은 다만 도구로 쓰임을 받을 뿐입니다. 당신이 정말 구원얻은 백성이라면 말씀이 당신을 이끌어 갈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풍성하게 될 때 모든것을 구별할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과 깨달음이 주어집니다. 미혹당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시는 유일한 방편이 성도들이 스스로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사랑하고 간절함으로 묵상하면 열매가 무엇인지 알 수 있으며 내가 속한 공동체나 교회나 단체가 과연 성경에서 말하는 열매와 예수께서 따라오라 하신 좁은 길로 가는가를 구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구별이 될 때 여러분들의 선택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결정하는 기준이 말씀입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이 말하는 진리가 당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나 교회나 단체안에서 발견되고 그 진리를 추구하며 그 진리의 열매가 구별이 된다면 그곳은 참된 의미에서의 교회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명백한 그리스도의 말씀, 즉 진리에 의한 열매와 진리의 가르침대로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면 어쩌시렵니까? 그곳에 그동안 맺어온 인간적인 관계들도 있으며 사랑도 있을 것이며 의미있는 많은 관계들이 있다해도 말입니다. 어느날 당신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부담같은 것이 분명 발생할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심령이 여러분의 밖에 있는 모든 관계들과 충돌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사울의 눈을 가리고 있던 비늘같은 것이 성령에 의하여 벗겨지자 새로운 인생으로 돌아간 것을 기억하십시오.

바울이 자랑하던 로마 시민권과 정통 유대인으로서의 자랑과 모든 학문과 인생의 목표가 다 부질없는 허상임을 알았을 때 그는 미련없이 포기하고 그러한 것들로부터 탈출하였습니다. 오히려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그동안 박해하고 멸시했던 십자가에 죽임당한 예수를 전하였습니다. 오직 율법으로가 아니라 오직 예수 이름으로 그의 십자가를 자랑하며 그의 삶을 따라 좁은길로 걸어간 것입니다. 그동안 바울을 보호하고 있었던 유대교의 울타리를 걷어버리고 새로운 울타리인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피한것입니다.

유대교속의 전통과 문화속에서 유대인일 수 밖에 없었던 예수의 제자들과 예수를 따르던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이후로 완전히 유대교의 모든 전통과 풍습과 의식으로부터 결별을 선언하였습니다. 사도들로 부터 들은 복음을 믿음으로 그들은 유대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안의 형제요 자매들로 옮겨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이유만으로 당시 로마의 거대한 핍박과 죽음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냥 예수를 버리면 되는데 그들은 예수를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만으로 생명까지 죽음으로 내어몰렸으며 평범한 인생의 기본적인 생활마져도 그들은 빼앗김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예수를 버리지 않고 이곳 저곳으로 유리하며 도망하며 죽은것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감사함으로 소망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두었으며 안 팎으로 오는 유혹과 사험에 피흘리기까지 싸움을 싸웠습니다. 진리가 없는곳에서 그들은 모든 불리함과 억울함을 선택하였고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지금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에 비한다면 얼마나 행복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까? 지금 예수를 믿는다고 감옥에 가는 일은 지구촌의 몆군데를 빼고는 없습니다. 지금은 종교 다원주의 시대요 이단 사이비들도 당당하게 큰소리치며 살고 있는 웃기는 시대입니다. 오히려 말씀대로 살고자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상히 여김을 받는 시대입니다. 왜 우리와 다르며 틀리는가에 대하여 적으로 간주해 버리기 일쑤입니다.

성경을 말하면서도 성경이 가르치는 십자가의 길과 다른길을 가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자기들이 정통이라고만 기를 쓰고 자랑합니다. 자기들의 가르침과 틀리면 성경이 기준이 아니라 사람의 사상과 전통에 의하여 이단으로 낙인을 찍어 버리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명백하게 성경에 계시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구별이 되는것을 애써 외면하는 시대입니다.
진리의 길을 사랑하고 추구하는 자들이 배척을 당하는 시대입니다.  

유다는 말합니다. 믿음을 위해 싸우라는 권면을 할 필요가 있어서 이 편지를 보낸다고 말합니다. 믿음은 곧 진리입니다. 진리를 위한 싸움은 비 진리와의 싸움이 필연적이라는 말입니다. 거짓 교사들과의 싸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거짓은 사단이 근본입니다. 거짓의 아비가 사단입니다. 사단은 진리를 대적합니다. 그런데 대적하는 방식이 육의 싸움같은 싸움이 아니라 속이는 것입니다. 궤휼로서 아담과 하와를 속인것처럼 성도들을 속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려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대항할 수도 없습니다. 사단이 아무리 인간들에 비하여 능력과 지혜가 있다해도 감히 하나님을 속이거나 직접적으로 대항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인간을 향해 속일수는 있습니다. 욥기에 보면 사단은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속이는 자라고 합니다. 사람은 속일 수가 있습니다. 유혹도 하며 두려움도 주며 시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몸으로 오신 예수를 광야에서 감히 시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직접 대하여 대항할 수 없기에 땅으로 내려와서 사람을 향해 속이는 것이 사단이 할수 있는 짓입니다. 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며 예수를 시험하였듯이 이 세상은 마귀의 권세아래 잠시 놓여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권세를 깨트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깨트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더 이상 마귀가 주는 세상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속을 수가 없습니다.

속는자는 이미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의 성공과 부요함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치는 자들은 예수와 전혀 상관없는자들이며 사단의 종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거하는 것임을 구별하는 안목이 있다면 여러분은 정녕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토록 미워하고 화가 있을것을 말해줘도 기어이 그러한 것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은 바로 예수를 부인하는 자들이라는것을 스스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분별이 있다면 여러분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오직 예수만이 주인이며 참되며 삶의 절대적인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좁은 길을 가는것을 기쁨으로 알며 그리스도안에서의 형제들과 자매들을 위하여 서로 사랑하라는 주 예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들입니다. 예수께서 믿는자들에게 주신 새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진리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형제와 자매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사랑으로 사랑하라는 것이 새 계명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을 위한 싸움입니다.

2009-05-22.ⓒ사랑그리고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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