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이자?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의 삶에서 결코 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다보니 기독교인들에게 기도는 마치 능력이며 신앙의 수준을 가름하는 기준이며 영적인 비교로까지 확대된것입니다. 누군가의 신앙을 분별할 때 그가 얼마나 기도에 열심이며 기도에 열정적인가를 따져 봅니다.

그리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조국 교회의 문화는,분위기는 기도가 최 우선적이라는데 다른 이견이 없을 정도입니다. 기도에 대하여 만큼은 이단 사이비 종파들도 뒤지지 않을 만하고 특히 기도에 대한 가치 부여를 목사라는 직분자에게 더욱 강력하게 요구되는 것이고 그것에서 낙오되거나 부적합하다면 자격이 상실되는 것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처음 신앙을 하는 교인들도 어느 정도 교회를 다니다 보니 기도하는 것에 치중을 하게 됩니다. 직분자들에게 기도하는 행위나 기도 모임의 동참은 필수입니다. 부흥강사나 간증으로 활동하는 사역자들에게도 동일한 공통점 이라면 기도에 대한 열심이 특심하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면 할 수록 안하고는 못배깁니다. 그리고 영적인 은사를 사모할 때 역시 기도가 빠져서는 말이 안될정도입니다.

제가 왜 이렇게 기도에 대하여 잔소리를 하는가 하면 솔직하게 저는 개인적으로 기도에 열심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뭔가 틀에 매여서 혹은 어떤 의무감이나 기독교인의 특징처럼 되어버리는 기도행위에 대하여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식사전에 기도하는 것도 아직도 익숙하지 못해서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는 중입니다.

"기도를 빼먹다니 원" 하고 혀를 차면 머쓱해져서 기도를 합니다만 사실 어떻게 해야할지 아직도 자신이 없습니다.  기도하고나면 무슨 기도를 그렇게 빨리 하느냐고 핀잔 줍니다. 그러면 식기전에 감사함으로 먹어야지 하고는 냅다 밥을 한술 뜹니다.

아마도 기도에 큰 은혜를 받으시는 분들이 저를 보면 한심하다고 혀를 끌끌 찰것입니다.
솔직하게 고백하건데 기도하는 대부분이 식사기도라든지 이러 저러한 이유를 들어서 기도할 때 형식적으로 중언 부언할 때가 더 많은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신지 모르지만 저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도의 행위나 형식보다는 순간 순간 말씀을 통해서나 심령안에서 주님께 질문하거나 말하는것을 저는 기도라고 변명해 봅니다.

기도는 대화입니다.

주님과의 대화입니다. 무슨 말이든 하고 듣는것입니다. 소소한 것까지 나의 감정 하나 하나 까지 주님께 말합니다. 어쩔때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뭔가 억울하고 답답하고 분이 나는 경우가 있을 때 '주님께 일러 바쳐 버려" 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내가 공감을 하는 눈치입니다. 재미나기도 하면서 언젠가는 '주님께 일러버렸어" 하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잘했군' 그러면 되는것이지 하고 웃어 버립니다.

기도는 호흡이라고도 합니다.

영적인 대화요 숨쉬기 입니다. 우리는 호흡이 중요함을 압니다. 모든 운동분야나 음악가들에게 필수입니다. 숨쉬기를 잘하지 못하면 큰일납니다. 가수에게도 호흡법이 중요하듯이 스포츠 선수들에게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통 일반인들이 따로 호흡법에 대하여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문가들에게나 중요하지요. 만일 그런식이라면 우리는 갓난 아이때부터 호흡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갈 때 자연스럽게 호흡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특별한 질병이나 원치않은 사고 때문에 호흡이 스스로 할 수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부분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는 것에 대하여 너무 어렵다거나 강사에게 훈련을 받아야 한다든지 기도에 대한 가르침과 프로그램이라는 형식과 틀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조국 교회에서 기도에 대한 여러가지 관행들에 너무 치중할 필요가 없다는 참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대하여 들으시기도 하고 응답을 해주시지만 그렇다고 이미 정하신 뜻을 변개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아니하신다' 합니다.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시면 돌이키시지 않으십니다. 물론 의인의 간구를 들으시고 잠시 늦추시기는 하시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뜻데로 행하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를 본받아서 중보기도를 하자고 합니다.

믿는자들이 합심하여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신다고 말합니다. 부르짖으라고 하며 통성으로 하자고 하며 무슨 일이든지 기도로 아뢰어서 응답을 받자고 가르칩니다.  기도하면 모든일이 형통한다는 듯이 죽으면 죽으리라 기도로 승부하자고 합니다. 이것이 지나치면 기도해서 하나님의 손발을 묶어서 기어이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자는 것으로 갑니다. 조국 교회 만큼 기도에 열심인 교회가 세계에 또 있습니까?

나라와 민족과 교회를 위하여 뜨겁게 기도하자는데 누가 반대를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바꾸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먼저 알려 달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뜻에 나의 소원이 머물기를 간절히 원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가신 주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절망해서 교회를 찾았습니다.
의지할 곳 없어서 교회를 찾았습니다.
실패했기에 교회를 찾았습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병이 나았고 사업이 성공했으며 자녀들이 대학 합격하였고 관계가 풀어 졌으며 직장에서 승진했다 하였기에 나도 한번 그렇게 살아보리라 하여서 교회를 찾았습니다.

기도하면 이렇게 원함이 이뤄진다해서 열심으로 기도합니다.
오만번이나 응답 받았다는 책도 읽었고 소망이 보였습니다. 기도하면 성공한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킨다. 내가 시험에 들고 실패하고 절망한 것은 기도가 약하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기도하자 설교를 듣고 미친듯이 기도하기로 하였습니다.
기도에 회의가 들만 하면 초청 간증자의 집회에서 다시 기도에 불을 붙혀서 믿음의 끈을 졸라 맵니다. 내가 응답을 받지 못한것이 정성이 부족해서였구나...

새벽기도 해야 겠구나
수요기도 해야 겠구나
금요 철야기도 해야 겠구나
금식기도 해야 겠구나
무슨 기도원에 가서 하면 응답을 받는다고 수 많은 사람들이 가던데
거기를 안가서그런가? 교회에서 하는것으로도 부족한가보다...
아무게 권사님이 지난번에 같이 가자는 소문난 기도원에 작정하고 가리라

이렇게 기도하면 다 된다고 하는 분위기에 기독교인들이 빠져서 말씀앞에 서는 시간을
잃어버립니다. 오로지 기도와 아멘입니다. 뜨거운 기도.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인다는 기도. 에스더의 기도 엘리야의 기도 등등 기도 기도 기도로만 나아갑니다.
자기 소원을 실컷 풀어놓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서기를 얼마나 반복하는지...

물론 기도에 긍정적이며 응답을 경험한 사례들이 무수합니다.
저는 부정적인 면을 살핀것입니다. 세상에서 일등은 한 명이듯이 주식으로 성공한 사람도 천에 하나 만에 하나입니다. 모두가 다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기독교의 형편은 기도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뭐든지 양적으로 계산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마져도 양적으로 계산합니다. 얼마의 시간을 투자했는지...물질에 인색한것은 아닌지...

아브라함이 소돔성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창세기18장의 내용입니다. 다시한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소돔을 멸하시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기록된 성경이 없었기에 직접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성경을 기록하게 하시고 보존하시고 누구든지 볼 수 있도록 계시(열어서 보여줌)하셨습니다. 성경이 우리 손에 들려져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고 다시 살리시고 부활하시고 성령을 보내주신 이상으로 특별한 은혜요 선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물을 달게 받으면 복이 되지만 잘못 받으면 독이 되며 자기도 멸망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멸망하도록 인도하는 무서운 책입니다. 말씀을 받고 전하는 자에게 이러한 두려운 책임감과 함께 선하게 감당하면 상급이 되며 영광이지만 불의하게 감당하면 심판과 멸망밖에는 없습니다. 말씀앞에 얼마나 순전함으로 서야 하는지 두려움을 느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성을 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소돔성을 향하여 가는 두 천사들이 멀리 가자 주님앞에 나아갑니다. 소돔성을 위하여 기도하는 아브라함입니다.

소돔성은 하나님 앞에 이미 악한성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악하지 창세기19장에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미 소돔의 죄악상에 대하여 이렇게 증거합니다.

13 소돔 사람들은 악하였으며, 주를 거슬러서, 온갖 죄를 짓고 있었다.(창13장)

12장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 때에 함께 따라온 조카 롯이 서로의 재물이 풍부함으로 동거 하기가 불편할 정도까지 되자 아브라함이 말합니다.

5 아브람과 함께 다니는 롯에게도, 양 떼와 소 떼와 장막이 따로 있었다. 6 그러나 그 땅은, 그들이 함께 머물기에는 좁았다. 그들은, 재산이 너무 많아서, 그 땅에서 함께 머물 수가 없었다. 7 아브람의 집짐승을 치는 목자들과 롯의 집짐승을 치는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곤 하였다. 그 때에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도 살고 있었다. 8 아브람이 롯에게 말하였다.

"너와 나 사이에, 그리고 너의 목자들과 나의 목자들 사이에, 어떠한 다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한 핏줄이 아니냐! 9 네가 보는 앞에 땅이 얼마든지 있으니, 따로 떨어져 살자.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 10 롯이 멀리 바라보니, 요단 온 들판이, 소알에 이르기까지, 물이 넉넉한 것이 마치 주의 동산과도 같고, 이집트 땅과도 같았다. 아직 주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기 전이었다.

롯이 선택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강제로 등을 떠밀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어쩌면 평소부터 소돔성을 동경했을지도 모릅니다. 소돔성의 풍요로워 보이는 삶이 롯을 이미 사로잡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삼촌 아브라함에게 주도권을 내어주고 조언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제는 당당하게 자기 길을 가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리더십에 대하여 마땅치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결정하는 아브라함이 이해가 되지 않았겠지요. 답답했고 미련해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를 거슬러 행하는 소돔사람들이 롯에게는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롯은 결정적으로 돌이킬 수 있었던 기회를 스스로 거절하였습니다. 소돔성에 정착하였을 때 전쟁이 나서 그만 모든 재물과 가족들이 포로로 잡혀갑니다. 이미 죽은것이나 다름 없었고 아무런 희망도 없었는데 기적적으로 아브라함에 의하여 구출이 된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강력한 도움이었지만 롯으로서는 죽었다가 살아난것 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소돔성에 머물렀습니다. 그곳에 애착이 있었다는 것이며 충분히 그곳 사람들의 문화에 젖었다는 것입니다. 한번 죽다 살아 났으면 뒤도 안돌아 보고 나와야 하는데 거기 그대로 머물렀고 여전히 그들과 함께 살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돔성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진실로 누구를 위하여 기도한 것일까요? 언제나 주를 거스르면서 죄악의 길로 행하는 소돔성 사람들을  위한 기도일까요? 그의 기도는 롯을 위한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골육인 조카 롯을 위한 기도입니다. 직접적으로 하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기도합니다.

23  아브라함이 주께 가까이 가서 아뢰었다. "주께서 의인을 기어이 악인과 함께 쓸어 버리시렵니까? 24 그 성 안에 의인이 쉰 명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주께서는 그 성을 기어이 쓸어 버리시렵니까? 의인 쉰 명을 보시고서도, 그 성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25 그처럼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게 하시는 것은, 주께서 하실 일이 아닙니다. 의인을 악인과 똑같이 보시는 것도, 주께서 하실 일이 아닌 줄 압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께서는 공정하게 판단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창18장)

이렇게 의인 50명을 찾으시고 뜻을 돌이키시기를 원한 것입니다.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거기서계속 45, 30, 25, 10명까지 낮추면서 기도로 나아갑니다. 기도는 대화입니다.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마음으로 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들으시고 아브라함은 계속 말합니다. 처음에는 롯을 구하기 위하여 간절함으로 조건을 재시합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다급했으면 하나님 앞에 조건을 내세울까요? 그러다가 깨달았습니다.

사실 이 땅에 의인이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 있을까요? 아브라함 스스로도 티끌이라고 합니다. 감히 주께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천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형편에 의인 몇명을 말하자니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조카 롯을 아끼고 사랑하지만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결정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항변할 수 있단 말입니까?

기도로 하나님을 조종하자고요?
의인의 기도를 들으신다고요?
누가 의인입니까?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는 기도로써 하나님 앞에 무엇이든지 조건을 당당하게 내걸지 않습니까? 하나님 이번만 응답해 주시오면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선한 뜻으로 중보하오니 이번만 들어 주십사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면서 무조건 기도할테니 응답할 준비 하세요 하고 덤빕니다. 우리의 정성이 부족하니까 더욱 열과 성을 다하여 쎄게 간절히 찰야하며 굶기까지 하면서 숫자를 많이 동원해서 합심하자고 합니다.

열명보다는 백명이면 더 좋고 천 명이면 자신감이 충만하고 만명이 넘으면 이젠 시간 문제라는 듯이 흥분합니다. 그래서 뭐든지 크고 많아야만 좋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시시한것은 안받으신다고 합니다. 목사 혼자 하는것보다 수 천명이 모여서 하는 기도가 응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건물도 웅장행야 하고 성가 대원들도 최소한 성악대 출신이어야 하고 오케스트라의 규모로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간절한 기도도 불발로 끝났습니다.

소돔성은 불과 유황으로 멸망을 당했습니다. 겨우 건짐을 받은 롯이 목숨은 건졌지만 그가 살아있는 것이 오히려 비참하고 부끄러운 열매들만 생산했다는 것입니다. 그 딸들이 얼마나 소돔성 사람들의 음란과 성적인 타락에 물들었는지 아버지와의 관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여서 부끄러운 자녀들을 출생하였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다 망한줄 알고 대를 잇기 위한다며 아버지를 술취하게 만들고 그렇게 관계를 하여 낳은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롯이라는 것입니다.

소돔성안에 중독이되면 세상의 기준이 소돔성일 수 밖에 없습니다.

소돔성을 벗어나면 세상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기준이 소돔성의 타락하고 음란한 문화와 가치관입니다. 거기서 태어나고 자란 롯의 딸들이 결국 생각하는 것이 죄악입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부끄러움이 부끄러움이 아닌것입니다. 소돔성에서 살면 죄가 죄로 보이지 않으니까 죄를 사랑하고 죄로 옷을 입는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의 문화가 소돔성보다 못하겠습니까?

죄악이 관영하는 세상에서 우리들도 우리의 자녀들도 그렇게 세상의 문화와 가치관이 전부인줄 알고 살아갑니다. 교회도 이미 세상의 풍요함과 성공과 번영에 물들었습니다. 구별이 없습니다. 교회는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욕을 먹고 있습니다.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는것을 부끄러워 하기는 커녕 더욱 귀를 막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서 자기 영광만을 위하여 이용합니다.

더욱 크게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것이라고 그러니까 기도하자고 합니다. 이럴때일 수록 기도해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축복의 문을 열자고 합니다. 하늘 문을 여는 기도를 하자고 합니다. 더웃 크게 기도하고 입을 넓게 열고 부르짖어야 한다고 합니다. 손에 피를 묻히고도 가난한 자들을 외면하면서도 지극히 약한 소자를 거들떠 보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니 기도로 나가자고만 합니다.

회개는 입술로만 할 뿐 그 악하고 불의한 길에서 돌아서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불의한 길이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을 본 받아서 기도하자고 합니다. 기도하면 이 나라가 더욱 평안해지고 세계선교를 감당할 만큼 물질 복도 내려 주시고 교회가 더욱 부흥한다고 기고 만장합니다.

아브라함이 기도했어도 소돔성은 망했습니다.

소돔 사람들의 죄가 그대로 머물렀기 때문에 망한것입니다. 기도하고는 전혀 상관 없이 하나님의 뜻은 실행되는 것입니다. 기도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길이 불의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길에서 돌이키는 것이 진정한 기도요 회개입니다. 롯이 살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이 백번을 기도하는 것보다 스스로가 소돔성에서 나와야만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나와야 살수 있습니다.

나오지 않고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해도 방법이 없습니다. 성은 이미 심판을 받기로 작정되었기에 그렇습니다. 기도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기도하면서 돌이켜야 합니다. 먼저 손을 씻고 가던 길에서 멈추고 돌아서야 합니다. 나오는데 죽을 힘을 다해서 멀리 도망을 쳐야 합니다. 롯의 처가 도망을 치다가 뒤를 돌아 보았습니다. 심판을 당해 불과 유황으로 타오르는 성을 보면서 뒤를 돌아 보는 것입니다.

애굽을 탈출하였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꾸만 애굽을 그리워 합니다. 기회만 주어지면 돌아가서 종으로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노예 근성이 얼마나 뿌리 박혔는지 자유가 부담스럽고 두려운 것입니다. 소돔을 나오기가 두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그렇게 살던 자들입니다. 세상에 속했던 자들입니다. 그래서 틈만 있으면 세상이 부러운 것입니다.
교회안에 있지만 마음은 세상을 염려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합니다.

몸은 기독교인이지만 생각은 세상에서 배운 그대로의 가치로 삽니다.

세계관이 전혀 바뀌질 못합니다. 그저 변한것은 오히려 더욱 바쁜것입니다. 종교적인 열심으로 교회의 행사와 짜여진 시간과 의식을 따라 가느라 시간이 없습니다. 기도도 해야 하고 예배도 때마다 참여 해야 하고 복을 받기 위하여 물질도 쌓아야 하고 적금도 들어야 하고 보험도 들어야 하고 목사님을 잘 대접해야 혹시라도 하나님이 불행을 미연에 차단시켜줄까 하여서 보험드는 마음으로 철마다 양복에 목사 자녀들 애경사를 챙기고 가능하면 목사님 가는곳마다 가이드 해드리고 온갖 정성을 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목사님 새벽마다 기도할 때 일순위가 아무게 집사라고 스스로 흐믓해하는 것입니다.

기도 열심히 믿음으로 훌륭하게 하시는 분들에게 대단히 죄송하고 힘을 빼는것 같지만 기도해도 하나님의 뜻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이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이 이미 기록한 성경에 밝히신 그 뜻을 부지런히 찾고 찾아서 각자의 삶속에 행하는 것이 살길 입니다. 구원도 하나님이 하시고 심판도 하나님이 하십니다. 모든 일을 그 뜻대로 행하시는 여호와 그 이름은 만군의 주 만 왕의 왕!

2009/06/10.ⓒ사랑그리고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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