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죽음을 택한 때는 2010년 1월 25일 출근길에서였습니다. 그는 저와 동년배로, 지난 십수년 간을 같은 사업장에서 잔뼈가 굵었던 인생의 동지였습니다. 얼굴을 맛대고 회의하고, 회식 자리에선 잔을 건네던 때가 엊그제 같았었는데..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생각합니다. 고인의 죽음을 떠올릴 때면, 정말로 내 마음의 아림과 안타까움을 표현할 길이 없어, 다시금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아래 신문에 게제된 내용은 제 안타까움을 잘 대변한 글이기에 이곳에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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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서울경제신문 2010년 2월 9일, 채수종 사회부장)
제목: 李兄, 왜 그랬소
李兄, 왜 그랬소. 가족ㆍ친구ㆍ직장동료,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억겁의 인연을 남겨놓고 그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야 할 정도로 절박한 게 무엇이었소. 이형의 나이 이제 51세. 영원한 이별을 하기에는 너무 젊지 않소.
이형이 생을 마감한 지 보름이 다 돼가지만 내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럽소.
이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대학을 나왔고 당시에는 선택된 사람들만 갈 수 있던 해외유학도 다녀왔지요. 그리고는 요즘 대학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어하는 회사에서 부사장에 올랐어요. 그것도 40대 때 말이죠. 누가 봐도 '평범한 10만명을 먹여 살릴 비범한 대한민국의 인재'였습니다.
정상엔 아무것도 없었나요
재산도 남부럽지 않게 모았죠. 우리나라에 1,200여명밖에 안 된다는 연봉 10억원의 주인공 아니었습니까.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강남의 유명 브랜드 아파트에 살았죠. 그리고 보유하고 있는 주식만 80억원이 넘는다죠.
이 정도 조건이면 대한민국 상위 0.001% 범위에 들 겁니다. 직장인들의 롤모델로도 손색 없지요.
그런데, 왜 그랬소. 남들이 모두 바라는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당신이 왜 그랬소. 일면식도 없는 당신의 죽음에 이처럼 가슴이 허허로운 것은 단지 같은 시대를 살아왔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이형.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그렇게 컸습니까. 반도체 강국을 만든 당신의 열정이 오히려 당신의 목을 옥죄었습니까. 언제나 남보다 빠르게 움직이던 당신에게는 속도 조절이 그렇게 힘들었나요. 실패 한번 없이 승승장구해왔기에 넘어지는 방법을 몰랐나요.
살다 보면 넘어지고 다시 툭툭 털고 일어서는 게 다반사 아닌가요. 아이는 2,000번을 넘어져야 걷게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종이배를 물에 띄우려면 9번, 종이비행기를 하늘에 날리려 해도 9번을 접어야 하죠. 그저 펴려고만 하면 종이배도 종이비행기도 만들 수 없는 것이 이치죠.
이형은 마지막으로 남긴 짧은 글에서 업무 과다와 보직인사에 따른 스트레스를 호소했다지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을 이끄는 자리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일반 직장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모든 것을 포기할 정도로 참기 힘들었습니까.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러나 나는 이형이 그 정도 스트레스에 세상과의 이별을 결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형이 누구보다도 강한 사람이라는 것은 이형의 삶의 궤적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성공적인 유학생활을 하기 위해, 세계적 기업에서 신화를 만들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고통의 시간이 당신을 강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성공 뒤에는 상상할 수 없는 자기희생이 필요하니까요.
그렇게 걸어온 길을 왜 포기했소.
혹, 가장 좋은 직장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보니 거기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은 아닌가요.
'꽃들에게 희망을(Hope for the flowers)'이라는 책에서 주인공 애벌레가 동료 애벌레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정상에선 뒤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잖아"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저자인 트리나 폴러스는 "애벌레에서 나비가 될 때 비로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강조했죠.
한마리 나비로 훨훨 날아가소서
나는 사는 것이 힘에 부칠 때,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마다 이 책을 읽습니다.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죠. 그러면 인생과 성공과 행복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죠. 이형도 이런 작은 '숨구멍'이 필요했던 것 아닙니까.
이형의 선택에 대해 이런저런 추론을 해봤지만, 여전히 무거운 마음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군요.
이형이 왜 그렇게 급하게 떠나야 했는지는 내 마음속에 영원히 의문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그냥, 이형이 '한 마리 나비가 돼 훨훨 날아갔다'고 생각을 정리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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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종 기자께서 인용한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은 1980년대에 제가 가장 좋아했던 책 중의 하나였습니다. 혹시 읽어보지 않았던 분들께는 강추를 드립니다. 그림 동화책이라 10분이면 쭉 읽을 수 있지요. 그러나 이 책이 주는 감동은 잔잔하면서도 진했습니다. 그러기에 기자가 쓴 것처럼, 저도 이따금씩 이 책을 다시 들여다 보게 됩니다.
아무튼, 스트레스가 고인을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저는 여기서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는가? 라는 주제를 붙잡습니다. 많은 직장인들의 숙명과도 같은 스트레스.. 이를 이길수 있는 비법이 있었다면, 벌써 그 책은 밀리언 셀러가 되었겠지요? 저는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에도 그 방안이 어느 정도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최후의 비법은 말 안해도 다 아시지요?^^ 이제 제가 생각한 세가지 각각 다른 방법을 따라가 보시지요. 이른바 “스트레스 탈출의 3단계”입니다. 마지막 3단계에 있는 내용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제 나름의 비법(!)입니다.
1단계는 외적 해결책입니다.
내게 주어진 스트레스를 외부의 힘으로 해소해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스트레스가 그만큼 과중한 것이기에 나 자신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 보입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외부의 힘과 능력을 이용하자는 것이지요. 외부의 힘이라니까 추상적이지요? 일례를 들어 볼까요? 기호식품- 차, 커피, 삼계탕, 보신탕(?) 등, 음주가무- 회식 자리, 술, 춤, 노래(방) 등, 여타 각종 액티비티- 잠자기, 식탐, 운동, 쇼핑, 도박, 술, 담배, 섹스, 각종 약물 투여 등.. 이같이 외적인 힘을 이용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셀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운동 같은 긍정적인 것도 있고, 마약 같은 부정적인 것도 있습니다. 개인의 상황과 처방에 따라 효과도 많습니다.
외적 해결책의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대표적 사례가 중독 현상입니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어떤 일을 계속 하다보니, 어느 순간 그 일에 내가 중독되어 있는 모습을 보게되는 것이지요.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흔한 중독이 알콜 중독입니다. 본인은 느끼기 어렵지만, 주위 사람들은 대충 누가 알콜 중독자라는 것을 압니다. 일주일에 두세번 술이 ‘땡긴다’면, 알콜 중독자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 외에도 수 많은 중독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타이거 우즈가 걸렸다는 섹스 중독을 비롯하여 성 도착, 마약, 도박, 포르노, 인터넷 게임 등의 폐해는 이미 알려져 있지요. 쇼핑 중독, 일 중독, 운동 중독 등도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고통 당하기는 매 일반입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시작했던 액티비티가 거꾸로 중독적 피해를 주는 경우입니다.
2단계는 내적 해결책입니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나의 내적 영역을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스트레스 받은 ‘내 마음 추스리기’라고나 할까요? 정신 치료, 최면, 명상, 요가, 기(氣) 치료 등 세속적인 수단은 이미 보편화가 되어 있지요. 교회 내에서도 ‘내적 치유’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 있는 ‘쓴뿌리’를 없애기 위한 노력을 경주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음이 밝혀 졌습니다. 사실 우리의 정신은 우리의 육체를 지배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내 스트레스의 양도 달라진다는 얘기입니다.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의학계에서 발견한 엔돌핀(Endorphin)은 우리에게 여러 함축적 의미를 줍니다. 1단계 외적 해결책 중 가장 강력한 약물이 모르핀(Morphine)입니다. 모르핀은 진통제이면서 최음과 환각 효과도 있어 마약류로 분류됩니다. 그런데 엔돌핀은 모르핀보다 200배의 효과를 내는 강력한 호르몬입니다. 우리 몸 속에 스스로 분출하는 강력한 에너지인 셈이지요. 그래서 부작용도 전혀 없습니다.
이 엔돌핀은 1970년대 이상구 박사가 한창 외쳤던 화두라 기억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엔돌핀은 우리가 웃을 때, 즐거울 때, 사랑할 때, 상쾌할 때 몸안에서 만들어지는 호르몬이라고 합니다. 기분이 아주 유쾌하고 행복할 때, 엔돌핀은 용솟음칩니다. 즉, 행복하게 살 때 엔돌핀이 생성됩니다. 그러기에 건강 전도사인 이상구 박사와 이후 황수관 박사는, 좋은 음식 섭취 이전에 행복한 엔돌핀의 삶을 살도록 권했습니다. 그래서 엔돌핀을 다른 말로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웁니다.
3단계는 하나님이 주신 해결책입니다.
엔돌핀에 이어, 1990년대 후반에 우리 몸 안에서 만들어지는 더 강력한 물질이 미국 의학계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이 다이돌핀(Didorphin)이라는 호르몬입니다. 다이돌핀은 엔돌핀 대비 4천배의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이돌핀은 모르핀보다 80만배(!)의 초강력 효과를 낸다는 계산이 되네요. 다이돌핀이 분출될 때, 우리 몸은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전혀 반응이 없던 호르몬 유전자가 활성화 되어, 안 나오던 엔돌핀, 도파민, 세로토닌 등 아주 유익한 호르몬들을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이 호르몬들이, 우리 몸의 면역체계에 강력한 긍정적 작용을 일으켜서 암을 공격합니다. 대단한 효과이지요. 그래서 기적이 일어 난다고 합니다.
그러면 다이돌핀은 어떻게 생겨날까요? 바로 마음이 감동 받을 때입니다. 좋은 노래를 듣거나, 아름다운 풍경에 압도 되었을 때, 지적 능력을 초월하는 기적을 접했을 때,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을 때, 엄청난 사랑에 빠졌을 때 등 감동의 순간이 있을 때마다 다이돌핀은 분출합니다. 그래서 다이돌핀을 달리 ‘감동 호르몬’이라 불리웁니다. 따라서 다이돌핀은 내 머리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내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이라야만이 생성되는 것입니다.
제가 다이돌핀에 대한 정보를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것은, 믿음과 사랑의 비밀이 이제야 의학적으로 검증이 되고 있구나..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일부분이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는 신앙의 영역, 믿음의 영역입니다.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옮아갈 때 생기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감사와 사랑의 영역입니다. 자원하는 심령에서 나온 섬김과 봉사의 영역입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으로 주시는 말씀의 영역입니다. 마음의 모든 것을 모아 드리는 찬양의 영역입니다.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의 영역입니다. 왜냐하면, 감동은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내 심령의 치료약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로마서14장17절) 그렇습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 이것이 감동의 다른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해결책으로서의 스트레스 해소법- 감동의 다이돌핀을 오늘, 바로 맛보시기 바랍니다.
다이돌핀이 가장 충만한 때는 참된 예배 가운데 임하시는 성삼위 하나님의 임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충만하심입니다. 아니, 굳이 다이돌핀이라는 호르몬 얘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주님 한 분만으로 족하고 행복한 우리 아닙니까? 다이돌핀이라는 감동 호르몬이 있건 없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매일의 감동이 아닙니까? 저는 요즘 특별히 찬양대석에서 찬양을 드릴 때 느끼는 감동의 기쁨을 누립니다.
스트레스 없는 세상, 그것은 주님이 주시는 감동과 감격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주님이 나의 모든 것 되심을 찬양합니다.. 아멘..
(후기)
언제나처럼.. 세상은 오늘도 바쁘게 돌아갑니다.
쉬임이 없는 세상.. 그것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그러나, 늘상 이곳에 오면 저는 어린 아이가 됩니다.
달콤한 사탕을 야금야금 덥석덥석 깨물며 좋아하는 어린 아이와 같이,
그렇게 목사님의 말씀의 꿀물을 빨아 먹다가 조용히 떠나 갑니다.ㅋㅋ
오랜만에 올라온 게시판에서 자살이라는 기쁨의 날들님의 화두를 발견합니다.
언제나 상냥하면서도 묵직한 김순희 집사님의 댓글도 반가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작심하고 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면서 제 최근 글들을 찾습니다.
이 글을 포함 몇 개의 글들을 여기에 올립니다.
목사님 그리고 사모님, 요즘 보약이라도 드시는지요?ㅠㅠ
생각과 말만 많고, 기도는 적은 저를 용서하소서.
독일에서, 샬롬을~
슬픔 가운데서도 이렇게 활기 찬 님을 바라보니
힘이 절로 솟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