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바라봄의 법칙

조회 수 926 추천 수 28 2010.05.03 21:31:09
영어 비젼(Vision)의 원뜻은 단순히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눈이 없으면 볼 수가 없습니다. 내 비젼의 도구는 나의 눈입니다. 그래서 시력(視力)을 영어로 Eye-vision이라고들 합니다. 즉, 시력은 눈으로 보되 얼마나 잘 볼 수 있느냐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척도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예수님도 눈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셨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마6:22-23)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의 눈은 빛을 통해서 봅니다. 빛이 없으면 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과학적으로 얘기하자면, 우리의 눈은 빛이 비춰주는 모든 것을 다 볼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눈의 한계이지요. 빛이 보여주는 것 중에서 가시광선(可視光線)만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빨주노초파남보의 7가지 색깔의 빛만 볼 수 있지, 빨간색 바깥의 적외선이나 보라색 바깥의 자외선은 우리 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 뿐인가요? 우리 눈은 너무 크거나, 너무 작아도 보질 못합니다. 매크로의 세계로 우선 가볼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는 볼 수 없습니다. 우리 눈의 한계에 비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지구가 속한 태양계, 나아가 태양계가 속한 은하계, 그 무수한 은하계로 이루어진 우주 전체를 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1초에 30만km를 가는 별의 속도로 몇 천년을 가도 도달못하는 별들이 부지기수입니다. 태양과 같은 별들이 우주 전체로 몇 십억개나 된다고 하니 우리 눈의 한계는 분명합니다.

마이크로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작아도 우리 눈으론 볼 수 없지요. 물속의 작은 생명체인 플랑크톤, 그보다 더 작은 박테리아를 보기는 불가능합니다. 현미경으로 보면 되지 않느냐고요?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인 분자는 어떻습니까? 이 분자를 더 쪼개면 원자핵과 그 주위를 도는 원자들이 있습니다. 현미경으로도 볼 수가 없습니다. 원자의 세계는 물질의 세계가 아닌 에너지의 세계라고 합니다. 신비함으로 이루어진, 진동과 파장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물질세계가 이럴진대 영의 세계는 어떠할까요?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이것에 대해 또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 도마에게 못자국난 손과 옆구리를 확인시키신 후에 하신 말씀입니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20:29).” 오늘날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성령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여기에서 ‘새로운 눈’ 또는 ‘제3의 눈’을 봅니다. 이를 통상적으로 영안(靈眼) 또는 ‘믿음의 눈’이라고 부르지요. 같은 이야기이지만, 저는 좀 더 구체화시켜 ‘비젼의 믿음의 눈’ 또는 줄여서 ‘비젼의 눈’ 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을 좀더 확대시키면, ‘육신의 눈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비젼의 눈으로 보고 믿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히브리서 11장에서 힌트를 얻어 ‘바라봄의 법칙’이라고 명명하고 싶습니다.

현재적 비젼의 눈은 밑그림을 보는 눈입니다. 어떠한 사건이나 사실을 살필 때,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보는 눈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얘기할 비젼의 눈은 미래를 보는 눈입니다. 미래의 소망과 소명을 비젼화 시키는 눈입니다. 미래를 ‘당겨 바라보는’ 바라봄의 법칙이지요.

비젼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히11:1).
누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일까요? 누구의 비젼일까요?
내가 그냥 바라는 것들? 나의 비젼?
그가 그냥 바라는 것들? 그의 비젼?
그것이 아니고, 주님이 바라시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나아가, 주님이 내게 주신 나의 비젼입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나의 비젼은 주님이 나를 향해 바라시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비젼은 선물거래(先物去來)와 같습니다.
현재의 시세(時勢)가 아닌 특정시점에 대한
미래의 시세가격을 매도자와 매수자가 미리 약정하여
그 가격으로 오늘 현재에 거래하는 것이 선물거래입니다.
즉, 미래의 일을 ‘당겨서’ 팔고 사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는 매도자 절대 우위의 세계입니다.
내가 매수자라면, 주님은 매도자가 되십니다.
매도자되신 주님은 선하시고 정직하신 분입니다.
매수자에게 가장 좋은 길을 미리 예비하셨습니다.
매수자는 매도자의 배려하심대로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이 바라봄의 법칙이자, 바라보는 자의 행복입니다.

비젼의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에 되어질 일,
미래에 일어날 주님의 뜻하심과 계획,
미래에 주님이 바라시는 그것들을
내가 오늘 현재의 시간으로 끌어당겨 오는 것입니다.  

미래에 주님이 설계하신 것들을
‘미래의 창’으로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간으로 당겨와서
‘현재의 비젼’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바라봄의 법칙입니다.

바라봄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나를 바라볼 때에 절망과 애통함이 나옵니다.
이어 해결자되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봄으로 갈망이 나옵니다.

나를 바라봄은 현재적 바라봄입니다.
절망의 바닥과 눈물의 애통이 있은 후에야
비젼의 믿음이 태동합니다.
미래적 바라봄은 나의 현재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여
해결자되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은
주님의 설계하심 속에 담겨진
청사진을 꺼내어 미리 보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현재적 고백 속에서
주님이 하실 일을 미리 당겨 보는 것입니다.

* * * * *

여기서 잠깐 ‘바라봄의 법칙’을 체험한 제 경우의 짧은 간증을 하고자 합니다. 제가 롬폭에 있을 때 (목사님께 말씀드렸듯이, 갇힌자로서의 기간이었죠^^), 2006년 11/15(수)일부터 11/20(월)일까지의 일이었습니다. 11/15(수)일 딸 하영의 수능일로 저녁 금식기도를 하면서 조금 몸이 안 좋았습니다. 그날 밤 따라 숙소동의 환풍기가 고장 났는지 밤새도록 돌아갔습니다. 제자리는 환풍구를 정면으로 받는 곳이라 밤새 춥다고 느끼면서 잤는데, 다음날 아침 (11/16) 목구멍이 칼칼했습니다. 목 부근이 약간 부은 듯 했고 입천장도 따끔따끔 아팠습니다.

그래도 다른 덴 크게 불편함이 없어서 일을 하고 난 다음날 11/17(금), 목이 완전히 부어오름을 느꼈고 침을 삼키기가 어려웠습니다. 아침에 간호사를 만나 감기약이라도 타려 했지만 그날따라 못 만났습니다. 낮에 일을 할 때도 정말 힘들었습니다. 목은 점점 부어올라 저녁때는 말하기도 힘들 정도가 되었지요. 침을 삼키는 것이 큰 고통으로 다가왔습니다. 몸도 으실으실하여 저녁샤워도 거르고 윗층 제 침대에 일찍 누웠습니다.

11/18(토)일 아침에는 일어날 수도 없었고, 식사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목구멍이 양쪽으로 붙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편도가 엄청 부어올라 있었습니다. 불현듯 겁이 더럭 났습니다. 1997년 영국 유학시절 편도선염으로 한 달간을 꼬박 앓은 기억이 나면서, 그 때의 증상과 똑같음을 발견했습니다. 한국 동료 분들이 문병을 왔고 먹을 것도 가져다 주었습니다. 완전히 끙끙 앓아누웠습니다. 눈물이 찔끔찔끔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거의 종일을 제 벙크 침대에서 있으면서 물, 꿀차, 오렌지로 버텼습니다. 오후 늦게 아스피린을 누가 구해주어 잠자기 전까지 세알을 먹었습니다.

그날 저녁 아픈 중에도 히브리서 11장을 읽으면서, 비젼의 믿음과 바라봄의 법칙을 묵상했습니다. 주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치유를 요청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의 바라봄을 내 비젼으로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현재적 나의 절망과 애통을 베이스로 하여, 미래적 주님을 향한 갈망으로 이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아픈 중에도 치료해 주시는 주님의 비젼이 강하게 다가 왔습니다. 그래서, 내 자신의 아픈 현재 모습을 바라보지 않고, 다음날 아침 편도선의 붓기가 완전히 빠져 침도 잘 삼키고 말도 제대로 하는 나의 미래 모습을 당겨서 바라보도록 노력했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치료하시도록 간구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주님만이 이 고통을 치료하실 수 있는 분임을 고백하고 영광 돌렸습니다.

11/19 주일날 아침, 저는 작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전날 밤을 푹 자고 눈을 뜬 순간, 내 혀는 부었던 목구멍을 자동으로 찾아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목구멍의 붓기가 간밤의 몇 시간 사이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아, 아, 하고 헛기침을 해봅니다. 목소리가 됩니다! 침을 삼켜봅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침삼킴이 크게 무리 없이 넘어갑니다! 편도의 붓기가 70%정도 빠진 것입니다. 할렐루야! 전날 취소했던 면회 계획이 일정대로 진행되어 면회소에서 사람들도 잠깐 만났습니다. 오후 1시에는 전혀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예배를 채플에 가서 드렸습니다. 오후 늦게부터는 도서관에서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주님의 눈물을 체험했습니다 (후에 나옵니다^^).

그날 저녁시간엔 정상적으로 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습니다. 저녁이 되자 편도의 붓기는 90% 이상 빠졌고, 11/20 월요일부터는 일터에 나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간호사를 만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바라봄의 법칙을 깨닫게 해주시고 이를 적용시킴으로 감격적인 치유의 경험을 하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 * * * *

바라봄의 법칙에서 또한 중요한 것은 누구를 통하여 바라보느냐는 것입니다. 주님의 바라봄, 즉 주님께서 주시는 내 미래의 모습들을 현재의 비젼으로 바라보되, 이를 이루시는 주님을 통하여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장에서 ‘상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히11:6). 또한, 모세를 예로 들면서 모세가 ‘상주심’을 바라보았다(26절)고 설명합니다.

비젼의 믿음은
세상을 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 것, 즉 ‘아는 것’입니다.(히11:6)

바라봄의 법칙은
주님 안에서 되어질 미래의 소망의 모습을
현재의 시간으로 당겨와서
구체적으로 바라보되,
이를 이루시는 하나님은
나의 미래를 가까운 현재로 바꾸심으로
내게 상주시는 분이심을
인내로써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구름떼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갖가지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니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히12:1-2, 새번역)

결론은 이것입니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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