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경남 통영의 박현석 전도사 입니다.
저번에 가입했는데아이디가 생각이 안나 집사람 이름으로 재 가입하고 문의드림을 용서하세요.
잘못가르쳐진 성경 2번에 "실패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라는 글에 대한 질문입니다.
목사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중보기도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께 따지고 드는 모습이라고 보시며 기도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찾기 전에 본인이 먼저 구체적인 소원을 갖고 자발적으로 그분께로 나가야 한다.
라고 말씀하시며 아브라함의 모습이 기도라고 보기 힘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원문에 보면 23절에 가까이 나아가 할때 사용된 단어가
나가쉬 - (기본 뜻은 '어떠한 목적을 위해 접근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여기서 '경배하다', '함께 눕다'등의 뜻이 파생) 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롯을 구원하기 위해 따지고 든 모습으로만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이 목사님의 말씀처럼 아브라함 본인이 먼저 구체적인 소원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갔다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또한 Keil은 25절의 공의를 행하실 것에 대해 설명하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에만 매달려 무조건적인 사유(赦宥)를 간구하지 않고, 그분의 공의에 근거한 재판상의 공정성을 호소하였음을 보여 준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개인적인 간구 뿐만 아니라 공동체성을가지고 중보자적 입장을 취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목사님의 말씀처럼 아브라함을 참된 의인으로 살게하시고 공동체 가운데 빛됨을 잃지 않게 하시기 위함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겠지만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라는 모습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힘들지는 않는가 하는것이 부족한 저의 조심스런 생각입니다.
지식에 짧은 전도사의 부족한 소견을 용서하시고 너그럽게 답변 부탁 드립니다.